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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n 28. 2024

BGM 여전히 아름다운지-세븐틴

음악이 흐르는 뮤직 스토리 1

여자는 침대에 누워서 커튼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침대의 눅눅함. 늘 이래 왔을 텐데 새삼스럽게 피부에 거슬렸다. 이제 중학생이 된 둘째 아이는 이미 등교를 한 것 같다. 집 안 전체에 침묵이 흐른다.

이 집은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옆 집에서 들리는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같다.


큰 딸의 투병은 나와 아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소화기관 하나가 없었고, 우리는 무방비상태로 수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내몰렸다. 그 경계에서 삶이 우리의 팔을 잡아당길 때마다 이 세상에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이는 혈색 없이 자랐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남들의 꿈은 우리의 꿈이 아니었다.

오늘은 살아있기를, 오늘은 살아있기를. 가족의 꿈은 '오늘은 살아있기를' 딱 일곱 글자뿐이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오늘 하루를 위해 노력했다.

지독한 가난에 월세방에 살면서 아이와 일본여행도 가고, 야식으로 비싼 족발도 시켜 먹었다. 아이 몸에 이상이 오면, 제일 큰 대학병원에서 한 달씩 입원치료를 했지만 아이가 걸친 스웨터와 뼈 밖에 안 남은 발이 들어가 있는 고무 슬리퍼까지 전부 소중한 아이의 일부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흉한 것도 흉하지 않고, 선한 것도 선하지 않다. 그 모든 가치와 감정은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아이를 끌어안고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여자는 감사했다. 아이가 내 품에 있기에 가능한 실감 아닌가.


다만 엄마 아빠의 어떤 유전자가 너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을까. 여자는 매 순간 미안했다.

아가야 너에게 삶이 축복인지, 이별이 축복인지 남은 엄마는 알 수 없지만 아이의 16년은 여자의 50년, 100년 보다도 더 특별한 것처럼 느껴졌다. 삶을 지탱했던 특별한 아이의 엄마로서 여자는 하루하루 더 강인해져야 했다.


오늘은 꽃집에 들러서 아이를 위해 한참 동안 꽃을 골랐다. 시간이 흘러서 남은 가족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식탁에서 대화도 한다. 아이가 어떻게 될까 불안이 없어진 나날. 불안이 없다는 건 편안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담담해서 예전에 느꼈던 모든 감각 세포가 연기처럼 사라진 것 같다. 편안했지만 가끔 중심이 흔들리는 것 같은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런 일상 속에서 여자는 한 번씩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보며, 떠난 아이에 대한 사랑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그 이별의 깊이는 지옥보다도 더 깊고 예리했다.


누워 있을 때 베이지 커튼에 비치는 동그란 손톱 발톱, 마른 몸으로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자세, 포동한 볼살. 여자는 그럴 때마다 배를 잡고 울었다. 목소리를 낼 수 없어서 몸을 땅바닥에 굴렀다. 배가 시리고 허전했다. 몸을 말아서 무릎과 배를 감싸며 눈물을 흘리고 몸을 굴려도 뱃속의 모든 장기가 빠져나간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잘 웃었던 너. 지금도 웃고 있을까. 슬픔으로 불러내서 미안해. 아름다운 너. 내일은 꽃으로, 바람으로, 햇살로 불러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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