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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Aug 27. 2024

14세 사춘기 소년의 리트리버 사랑

리트리버 오레오야, 소년아~ 둘 다 외롭지는 않지?

중1 소년은 거의 무표정입니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있는 건지, 맛이 없는 건지. 여행을 가도 즐거운 건지 짜증이 나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학원이 힘들진 않은지 물어봐도 거의 묵묵부답입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면 수다 삼매경입니다. 시기에 엄마인 저는 소년의 의식주를 챙겨주는 동거인 정도인 같습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잠이 늘 부족한 아이는 특히 아침에 거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등교할 때 오늘 스케줄도 물어보고 싶고, 저녁에 먹고 싶은 건 뭔지 질문하지만 아이는 단답형 대답만 합니다.

그런 아이가 가장 많이 웃으면서 입을 여는 순간이 바로 래브라도 리트리버 오레오와 보내는 시간입니다.

그 바쁜 아침에도 늘 오레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한참 동안 말을 건넵니다.

"오레오야, 밤새 잘 잤니?"

"오레오야, 켄넬이 답답하지는 않았어?"

"오레오야, 외롭지는 않았다개?"

애교 넘치는 아기 때의 말투로 오레오에게 말을 건네는 아이를 보면 황당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14세 소년이 말을 건넬 때, 리트리버 오레오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오빠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그 특유의 따뜻한 시선, 굳게 다문 입으로 오빠를 바라보며 오직 눈으로 말을 합니다.

"오레오야, 외롭지는 않았다개?"


가끔 리트리버 오레오와 엄마인 저를 비교하며, '내가 말을 많이 해서 아이가 짜증이 나나?'라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리트리버 오레오 삶녹록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둘째, 셋째와 놀아줘야 하고, 늘 왔다 갔다 우당탕탕 시끄러운 대가족 사이에서 대형 수제비 귀가 쉴 틈이 없습니다. 

대형견 리트리버는 항상 잠이 부족합니다. 가끔 저녁에 가족 모두 둘러앉아 기운 없는 오레오를 바라보며 걱정합니다.

"오레오, 왜 저렇게 얌전하지? 어디 아픈 거 아냐?" 다들 양심도 없습니다.

낮에 도저히 쉴틈이 없는 오레오는 식구들이 조용해지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대형견 특유의 깊은 잠에 들어갑니다.

 

오레오의 켄넬은 둘째 아이 방과 가까운데, 언니 방에 있는 신기한 물건들을 자기 켄넬에 몰래 갖고 들어가서 완전분해를 합니다.  

남편이 만든 우리 집 슬로건 중에 하나가 "래브라도 리트리버 표정에 속지 말자!"입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특유의 착한 표정

둘째 아이는 오레오가 자신의 물건을 망가뜨린 것에 화도 내지 않고, "우리 오레오 심심했어요?"라고 말을 건넵니다. 만약 동생이 자기 물건을 망가뜨렸다면 소리치고 방방 뛰고, 동생 편든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을 겁니다. 


살림도 엉망이고, 아이들도 잘 다룰 줄 모르는 제가 대형견 리트리버를 키운다는 건 주제를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 인생을 바라보면, 제가 오레오에게 받는 도움이 너무 큽니다.

특히 아무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과 신뢰의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오레오를 보면, 늘 무언가를 지시하고 바라는 엄마인 제 자신이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14세 큰 아이는 오늘도 오레오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고 등교합니다. 

세 아이 모두 등교하고 오레오의 간식을 챙겨주며 말합니다.

"오레오야 늘 고맙다."


진심입니다. 오레오에게 무척 고맙습니다.

엄마도 다 못하는,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아이들에게 보내주는 래브라도 리트리버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오늘부터 밤에 많이 선선해진대. 엄마랑 같이 개운산 올라가자. 아이들을 믿어주고 사랑해 줘서, 늘 아이들 옆에 함께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너는 우리 집의 진정한 육아 척척 박사님이야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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