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겨울에 대상포진이 왔다
연달아 두 번
별거 아니라고 웃어넘기다가 옷이 스치는 부위가
마취 없이 생살이 찢기는 것처럼 아팠다
그다음부터 무서웠다
엄청 두껍고 따뜻한 유명브랜드 패딩을 샀다
온몸이 따뜻했고, 몇 년 동안 감기에 한번 안 걸렸다.
검은 패딩이 몇 년이 지나고 나니 하얗게 닳고 닳았다
대상포진이 생각나서 바로 다시 패딩을 샀다
미련한 나는 분명히 새 패딩을 두고,
낡은 패딩을 입을 것이다
딱 3초 고민하고 낡은 패딩을 수거함에 처리했다
새 패딩은 이전 패딩보다 더 두껍고 따뜻했다
나는 복슬복슬한 모자 덕분에 더 활짝 웃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허전했다
그 낡은 패딩이 자꾸 생각난다
내 손목을 꽉 잡아준 검은 소매, 거칠고 멋없는 모자털
너를 간직할 걸, 깊은 서랍에 넣어둘 걸
마음에서 너를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계절을 건너온 이 여름에도 생각한다
내 몸 위에서 나와 함께
하얗게 닳고 낡고 초라한. 그렇지만 따뜻한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