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 곰이 같은 운동 학원에 다니는 한 살 많은 6학년 오빠에게 고백을 받았습니다. 고백받고 기분이 어땠냐고 조심스레 묻는 저에게 아이는 당당하게 "엄마, 사실은 내가 먼저 그 오빠한테 첫눈에 반했어."라고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첫눈에 반한 오빠한테 고백받아서 좋았겠네"라고 웃으며 축하해 줬지만, 다음 날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엄마는 검은색 마녀 망토를 두르고, 손발톱을 세운채, 대왕 유리구슬에 손을 올려놓고 6학년 그 오빠에 대해 수소문하기 시작합니다.
너무 바르고 점잖은 아이라며, 한 살 어린 학원동생에게 고백을 했다는 사실에 학원 선생님은 크게 놀라는 눈치입니다.
이성친구와 교제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들을 둘째에게 당부하였는데, 영어 수학학원으로 너무 바쁜 초등학생 두 아이는 서로 만날 시간조차 없습니다.
아이 팔에 걸려있는 커플팔찌를 보면서 '아직 안 헤어졌구나' 짐작할 뿐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에 김태환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반에서 인기가 많았던 한 여자친구가 생일파티를 하였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저는 선물을 준비 못했고, 그런 저에게 두 명의 친구가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처음 보는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환이가 저를 욕하는 친구들에게 "그만해!"라고 소리를 치는 거예요.
어느 날, 학교에서 자리를 바꾸는데 사소한 일로 주눅이 들어 있던 제가 고개를 숙이고 쪽지에 적힌 자리로 이동하니, 태환이가 그 옆자리에 먼저 앉아 있었습니다. 손을 흔들면서 환영한다고 웃던 그 표정이 생생합니다.
저를 무시하던 한 아이를 찾아가 "나는 내 짝을 많이 좋아해. 무시하지 마"라고 말했다는 것도 나중에 들었습니다.
5학년이 되면서 태환이와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고, 저는 처음으로 반에 친한 단짝친구가 생겨서 너무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태환이가 전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태환이네 집 앞 놀이터에 가서 며칠 동안 태환이를 기다렸습니다.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며칠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고마웠던 친구가 바로 4학년 때 만났던 태환이 입니다.
우리 둘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태환이가 많이 생각납니다. 그 시절의 내가 그 시절의 너에게 너무 고맙고, 나도 동갑내기 친구였던 너를 진심으로 좋아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의 감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오래 기억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둘째 아이가 지금 느끼는 설렘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이별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조심스럽습니다.
우리 집 5학년 둘째 곰과 6학년 오빠가 서로에게 초등학교 시절의 태환이처럼 의미 있게, 고맙게 남기를 바랍니다.
"봄아, 헤어질 때 마음 아프면 어떻게 해?"
"엄마, 그런 말 알아?"
"무슨 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게 무슨 뜻인데?"
"그냥 순리에 맞게 받아들이면 돼."
"엄마가 몰랐네, 알았어ㅎㅎㅎ"
오늘도 이렇게 아이들에게 인생의 한 자락을 배우고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