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어이없는 사건
때는 7월 31일 목요일 저녁 7시.
래브라도 리트리버 오레오와 함께 개운산 산책을 마치고 고려대학교 교우회관 쪽으로 내려와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
그날은 정말 더워도 너무 더운 날이어서 저와 오레오 모두 지쳐 있었고, 둘 다 느린 걸음으로 이동했죠.
제 귀에는 커다란 헤드셋이 있었고, 저는 음악까지 크게 틀어서 주위의 소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거예요. 얼어붙은 저는 옆을 돌아보았는데, 무슨 슬로 모션처럼 오레오가 순간 옆으로 쓰러지더니 눈을 감는 겁니다. 바로 그때, 몸길이 20센티미터의 갈색 푸들이 목줄도 없이 오레오에게 달려들다가, 쓰러지는 모습에 놀라서 주인에게 뛰어가더군요.
저는 순간 오레오가 죽은 줄 알고, 헤드셋을 던지고 오레오를 부르고 흔들었습니다. 갈색 푸들 견주가 저에게 와서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왜 목줄을 하지 않았냐는 고함도 나오지 않고, 오레오를 깨우는 데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마침 가방에 들고 간 얼음물을 오레오 입에 넣어줬고, 잠시 후에 오레오가 눈을 뜹니다. 그런데 오레오 다리가 풀려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주저앉는 거예요.
저는 물린 상처를 찾기 위해 혼비백산하는 와중에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행인 한 분이 저에게 상황 설명을 하시네요.
"제가 처음부터 다 봤는데요, 물리진 않았어요. 그런데 리트리버가 너무 순하다 보니까 미니푸들이 뒤에서 갑자기 공격하니까 많이 놀래서 소리도 못 내고 기절했어요."
저는 그분의 말씀이 믿기지 않아서
"물리지 않았는데 기절을 했다고요? 그럴 리가요!"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는데, 정말 물린 곳은 없었습니다. 그 행인분들 증언대로 30 킬로그램이 넘는 오레오가 미니푸들에게 너무 놀라서 정말 기절을 한 거예요. ㅠ.ㅠ
오레오 다리에 힘이 돌아와서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아빠를 만난 오레오는 다시 기분이 좋은지 수달꼬리를 힘차게 흔들어 댑니다.
사실 저는 그날의 충격으로 며칠 동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네요.
가끔 오레오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입마개를 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래서 입마개를 하고 나가면 왜 순한 리트리버에게 입마개를 했냐고, 입마개 하는 견종이 아닌데 그건 동물학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또 만납니다.
대형견은 참 불쌍합니다.
특히 오레오를 키우면서 얘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순한 건지 답답할 때도 많습니다.
네 발 달린 동물 안에 동물의 본성을 넘어선 절제와 통제가 있다는 게 유전자와 훈련의 힘이 놀랍기도 하고, 그러니까 안내견을 하겠지 라는 생각도 하다가, 그럼 얘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지키지?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날을 생각하면 속상합니다. 그 푸들과 견주에게 매운맛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리트리버 오레오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려줬어야 했는데, 솔직히 오레오는 다음에 누굴 만나도 같이 싸울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한 번만 으르렁 거려도 다들 무서워할 텐데, 오레오는 그냥 하늘이 내린 무한한 천사견, 안내견입니다.
다음에는 엄청 순한 오레오 뒤에 말 못 할 정도로 네 발 달린 동물보다 사나운 아줌마가 있다고, 다시 한번 리트리버 오레오가 순하다고 만만하게 보면 큰코다친다고 제가 아주 두 팔을 걷어 올려야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또 하루하루 드센 아줌마가 되어 갑니다ㅎㅎ
- 맘디터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