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면, 오래된 바다만, 오래된 우리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
여행 2일 차, 부산은 비가 내립니다. 잔뜩 흐리고 비가 내렸다 멈췄다를 반복하죠.
에너지가 충전된 저는 아이들과 함께 우산을 챙겨서 유명맛집 이재모 피자로 향합니다.
*부산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전포역
웨이팅을 각오한 우리는 운 좋게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요.
"하나도 기대하지 않으면 정말 맛있고, 잔뜩 기대하면 맛이 없다"는 후기글을 봤지만 저절로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입 먹어보고 저는 당황했습니다. 파파존스 슈퍼파파스 크러스트 피자의 고소함에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임실치즈의 담백함에 아무 맛도 안나는 거예요. 입이 오염됐구나 싶었고, 그래도 남편에게 맛 보여주고 싶어서 두 조각을 포장해서 롯데백화점 서면점으로 향합니다.
*전포역에서 롯데백화점 서면점으로 걷고 또 걷기
날씨가 좋다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비가 와서 우산을 든 상태로, 한 손에는 피자 박스를 들고, 낯선 길을 걷는 건 몇 배로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백화점에는 우리가 쉴 수 있는 푹신한 의자가 있을 거라는 예상이 빗나가고,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 딱딱한 나무 의자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아침에 계획한 과학체험관 예약을 취소하고, 아르떼 뮤지엄만 가기로 변경합니다. 비가 거세지기 시작합니다.
*2호선 서면역에서 17번 버스를 타고 영도 아르떼 뮤지엄 하차
17번 버스 안에 피자 냄새가 진동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냄새지?' 했다가 제 가방을 급하게 열어보니, 날씨가 습한 탓에 피자 박스가 습기를 잔뜩 먹어서 다 찢겨 있고, 피자는 당당한 모습으로 박스를 탈출해서 제 가방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진짜 소름이 끼치고 아이들에게 이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가방을 급하게 가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뮤지엄까지 걸어가는 길에 피자박스처럼 아이들 양말과 신발이 다 젖고, 우리 셋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렇게 도착한 아르떼 뮤지엄.
비 내리는 날 미디어 작품 전시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지쳐서 도착한 아이들도 새로운 에너지로 즐겁게 관람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시관에 도착합니다.
공간 전체가 상영관이 되어, 세계 명화들이 그들의 또 다른 명화 안에 전시되어 있고, 최백호 가수의 <부산에 가면> 노래를 배경으로 부산을 표현한 미술 작품들이 바람처럼 흘러갑니다. 눈과 귀, 코와 혀 모두 예술을 음미하는 도구가 됩니다. 일본 여행 때 갔던 나오시마 미술관과 지추미술관의 모네 작품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소품 샵에서 저는 클림트의 <아테제 호수> 작품을 발견하고, 첫눈에 반해서 당장 구입할 것처럼 작품을 들었어요. 그런데 금액을 확인하고는 금세 조용히 내려놓습니다ㅎㅎ고래 꼬리 모양을 한 푸른 장식의 머리핀 하나만 샀어요.
부산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영도면옥에서 얼큰 칼국수를 먹고, 아이들과 호텔로 이동합니다.
(물론 이 머리핀은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제가 피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분실했답니다 ㅜ.ㅜ)
*17번 버스-HJ중공업 하차- 건너편 정류장에서 3006번 광역버스로 해운대 이동
3006번 버스는 참 신기했습니다. 운전하는 것처럼 영도와 해운대를 최단거리로 오가는 노선이었죠. 얼마나 편한지 갑자기 부산 대중교통에 대한 저의 자신감을 불러일으켰어요. 그렇게 호텔에 도착해서 저는 또다시 뻗고, 아이들은 호텔 1층에 내려가서 저녁을 먹고 올라옵니다.
3006번 버스를 알게 되었으니 여행 마지막 날, 마음에서 포기하고 있었던 태종대를 가야겠다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