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디터 May 23. 2022

나의 해방일지

밤을 무서워하는 나의 해방일지

저는 요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 푹 빠졌습니다.

60대의 지인께서 본인이 우울할때마다 본다며 제게 추천해 주셨는데, 저는 우울감이 거의 없는 캐릭터여서 큰 기대감 없이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해방덕후가 되었습니다.

집에 tv는 없지만 본방을 사수하겠다며, 집에서 10분 거리의 엄마 집에 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무리입니다. 저는 밤에 혼자 다니는 걸 극도로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아이곰들에게도 밤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르르 쾅쾅, 으시시시 온갖 표현으로 밤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밤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아파트 단지를 건너서 엄마 집에 도착합니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를 연이어 시청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바로 옆에 누워서 잠드신 엄마의 깊은 주름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고, 드라마에 나온 주인공들의 슬픔과 고생에만 눈물을 흘리는 제 모습이 좀 마음에 안들긴 합니다ㅎㅎ

<나의 해방일지> 14회가 끝나고 나니 23시 30분이 훨씬 넘었습니다. 이제부터 고민입니다. 나는 이 밤을 어떻게 건너서 나의 집에 도착할 것인가...

인터넷 뉴스를 도배하는 잔인한 사건들과 가해자. 그 피해자가 얼마나 별 거 아닌 우연으로 마주친 사람일까 생각하니까, 엄마를 깨워서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엄마를 깨울까 하다가 이불을 덮어드리고, 불을 끄고 문을 잘 닫은 채 골목으로 나왔습니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니까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골목 밖으로 나오니 따뜻한 색의 가로등이 켜져 있습니다. 바로 앞에 연인이 팔짱을 끼고 사이좋게 걸어가고, 저 쪽에는 중년 부부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합니다. 이렇게 따뜻한 밤은..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 멀리 편의점에서 색색의 조명이 새어나오고, 버스 정류장 뒤의 담장에는 새초롬한 장미꽃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짙은 어둠과 붉은 장미, 가로등 불빛의 조화는 저의 얕은 글실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첫번째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니 경비 아저씨께서 초소 의자에 앉아 졸고 계시고, 어두운 길에는 젊은 남학생이 책 박스를 들고 힘겹게 걸어갑니다.

출발할 때와는 다르게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다 보니 밤에 더욱 생명력이 강해지는 나무들도 보이고.. 드디어 저 멀리... 우리 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저는 밤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된 것 같습니다. 내게 냉정하다고 느껴지는 무심한 밤을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건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덕분입니다. 

유독 어두운 장면이 많은 그 드라마를 통해 밤의 아름다움에 눈 떴는데 알고 보니.. 그 아름다움이 엄마 집과 딸의 집 사이에도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기곰들에게 밤의 차분함과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엄마곰의 해방일지 한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의 아빠는 젊은날의 아빠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