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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May 28. 2022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나의 해방일지2

소주를 각 두 병 마시고 친구를 택시타는 곳까지 배웅하고 집에 귀가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아빠 옆에서 곤히 잠들고, 래브라도 리트리버 오레오는 저를 반가워합니다.

사실은 친구와 노래방에서 노래도 불렀는데 오늘따라 노래 가사들이 파도처럼 저의 마음에 밀려 들어왔습니다. 

편집자는 저자의 글을 도마위에 올려 놓고 요리조리 고민을 합니다. 가장 알맞은 길이로 자르고, 적당한 온도의 물에 문자를 마구 담구어 냅니다.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휘이휘이 젓가락으로 저어, 제일 좋은 글들을 건져 냅니다. 저자의 글을 가장 빛낼 수 있는 디자인의 그릇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글을 올려 놓고 스스로 만족합니다. 저자보다도 그 글에 더욱 애정을 가지는 직업이 에디터이기도 합니다. 남의 글이 빛날 수 있게 요리하는 일은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부터 에디터로 일하면서 저는 눈치 9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공간이 편합니다. 어떻게 하면 글이 빛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저의 마음을 술술 써 내려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몇 년째 같은 꿈을 자주 꿉니다. 꿈에 반복해서 나오는 그 사람을 찾아가서 내 꿈에 나타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런 미친 짓은 제 정신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드라마 작가나 소설가가 되어 그 꿈을 어떤 장면으로 공개하면 내 무의식이 부끄러워서라도 그 꿈을, 그 사람을... 바로 놓아줄지도 모릅니다. 


몇 달 전에 한 선배님이 종암동에 찾아와서 밥을 먹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선배 입장에서는 무슨 문제만 일어나면 스스로의 잘못을 찾아내려고 하는 저의 습성이 거슬렸을지도 모릅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선배님이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전부터 말하고 싶었어. 이제는 너무 노력하지마. 그 동안 너무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어. 이 이상 잘할 수도 없어. 설령 너의 인생에, 너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제는 절대로 너의 잘못이 아니야."

"선배님 그런 멋진 말을.... 올~~~~~~~"


선배 차에서 내리고 손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길. 월곡역 한복판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선배 차가 사라진지 5초 만에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졌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었습니다. 수십년동안 온 힘을 다해서 몸에 힘을 꽉 주고 서 있는데, 갑자기 그 순간 온 몸의 힘이 풀어진 듯한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이었는지, 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몇 마디의 말이.. 이유도 없이 온 몸에 힘을 꽉 주고 서 있는 저를 풀어 헤쳤습니다. 


사실 막내 아기곰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을만큼 행복합니다. 내 인생 전체를 지지해주는 남편과 그와의 여행이 행복한 나, 강하고 지혜로운 아기곰들.... 그렇지만 제 자신조차 다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도 엄연히 저의 인생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의식적인 행복은 행복대로 느끼고, 무의식적인 욕망과 고통도 그대로 읽어 내려가면 될 일입니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해방일지 두 번째 페이지를 이렇게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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