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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n 03. 2022

12세 사춘기 소년의 멋짐을 방해하는 가족들에 대하여1

12세 사춘기 소년의 첫 노래방 나들이

우리집 사춘기 첫째 곰이 친구들과 노래방을 간다고 합니다. 더군다가 그 4명 중에는 우리 아기곰이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제가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 까마득했습니다. 아이가 중고생이 된 동네 언니들, 그리고 교직에 있는 친한 선배에게 상담을 했는데, 너무 당연한 현상이라는 말에 조금 안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입니다. 아이를 막을 수 없다면 노래방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들을 세심하게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들곰과 그나마 통하는 아빠곰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신체적인 접촉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거에 따라서 죄가 된다고 알려줘."

"예절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줘. 예절을 지키는 사람은 화려하지 않아도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줘"


몇 가지를 남편에게 신신당부하였습니다. 남편은 노래방 사용법과 예절을 잠깐이라도 알려주고 오겠다며 현충일 저녁에 아들을 데리고 노래방을 갔습니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거라는 예상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카톡~' 잠시 후에 저에게 사진 한 장이 도착합니다.

뭐지? 노래방 의자 중앙에 왜 제 조카가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카톡~' 잠시 후에 사진 한 장이 또 도착합니다.

조카 옆, 사춘기곰 그리고 그 옆에 왜 저희 친정엄마께서 박수를 치고 계실까요?

정말 황당했습니다. 제가 남편한 부탁한 노래방 교육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사춘기곰 아빠곰 조카곰 할머니곰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실시간 동영상이 계속 도착하고, 이 무리는 거의 2시간이 지나서야 각자 집으로 귀가하였습니다.

제가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ㅎㅎ 그나마 마음 한 쪽에서 평소에 장모님와 툭탁거리는 남편이 많이 불편했겠다 싶어서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불편함 따위는 1도 없고, 아빠곰도 노래를 멋지게 뽐내더랍니다.
첫째 사춘기곰의 멋짐을 표현하기 위한 노래방 교육은 그냥 그렇게 대충 넘어갔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날입니다. 아침에 눈을 뜬 사춘기곰이 소리를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엄마! 나 어떻게 해 ㅠ.ㅠ 목이 쉬었어!!! 일요일에 노래방 가서 노래 잘 못 부르면 어떻게 해 ㅠ.ㅠ"


어제 2시간 넘게 노래방에서 놀다오는 바람에 목이 팍 쉬어버린 것입니다. 좋아하는 여자친구한테 멋지게 보이려고 사전답사를 간 노래방에서 너무 신나게 놀다가 목이 팍 쉬어버린 우리 사춘기곰 ㅜ.ㅜ

아빠곰의 말이 예술입니다.


"자기야 그런데 말이야... 코인 노래방인데 왜 지폐를 넣는거지?"

"그게 중요하냐 지금??!!!!!!"

----

epilog

현충일에 춘천 여행을 가는 길

남편이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합니다.

"애들 보면서 벤치에 앉아 있는데 옆에 어떤 아빠가 앉아 있었어. 그 아빠 아이가 7세 정도 되겠더라고. 애가 갑자기 울먹이면서 아빠한테 오는 거야. 저 쪽에 있는 (12세로 보이는)형아가 자기한테 3만원을 갖고 오라고 했대. 정말 큰일난거지. 그 아빠가 핸드폰을 내려 놓더라. 그 애를 쫓아갈 거잖아. 그런데 그 아빠가 뭐라는 줄 알아?"

"뭐라는데? 신고한대?"

"자기 애더러 그 형아한테 가서... 3만원 없다고 전하래."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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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이렇게 아빠곰탱이들의 엉뚱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 별의 어딘가에도 아빠 곰탱이들이 엄마곰의 눈치를 살피며 아기곰들과 엉뚱한 장난을 치고 있을 거예요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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