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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Feb 09. 2022

지금의 아빠는 젊은날의 아빠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빠의 술주정을 들으며 인생에 대해 깨닫는 것들

친정아빠는 좀 심하게 말하면 이중인격자였습니다.

타인에게는 너무 다정하지만, 집에 오면 엄마에게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후 몇 년에 걸쳐서 어머니의 몸과 마음은 많이 건강해 졌고, 그 과정을 지켜본 저는 어느 누구도 불행에 자신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걸 강하게 확신합니다.

불행은 끊어내야 하며, 내 힘으로 끊어낼 수 없다면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쳐야 합니다. 숨어야 합니다.

불행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10년 전에 재혼을 해서 행복하고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흔이 다 되어가니 이제는 편안해 지셔야죠.

제 동생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지금까지 연락을 끊고 지내지만 저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맞춰드리는 편입니다.

손주들 보고 싶다고 하면 오시라고 하고, 전화통화하고 싶어하면 그냥 통화합니다.

저도 아버지가 불편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아버지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아버지를 편하게 해 드려도 아버지는 한 순간도 편해보이지 않습니다.


"수진아, 공부를 그렇게 잘한 너의 인생을 망쳐서 미안하다"

"아빠, 나 지금 너무 잘 살고 행복해. 누가 누굴 망쳐"

"수진아, 매일 너네들을 힘들게 괴롭혀서 미안하다"
"아빠, 전부 옛날 일이잖아. 이제 괜찮아"
"정말 미안하다"

"......."


나중에는 아빠의 오열타임으로 끝나는, 매번 똑같은 대화입니다.

술에 취한 아빠를 차에 태우고 운전을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아빠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아빠의 폭력을 지켜보며 슬퍼했던 어린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는 이미 다 커버려서 어른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빠는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어린아이에게 용서를 받고 싶은데, 그 아이가 이미 없는 겁니다.

어른이 된 저는 그 은 날의 아빠에게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가족들을 괴롭힌 아빠가 잘못했다고 말해주길 바라지만, 잘못을 저지는 서슬퍼런 젊은 아버지는 사라지고, 힘 없고 말라버린 70세 할아버지가 내게 자꾸 용서를 해달라고 비니까 환장할 노릇입니다.

어른이 된 나는 지금의 아빠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서슬퍼런 젊은 아빠를 어린 아이가 용서할 수 있는지, 지금의 내가 그 젋은 아빠를 용서할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빠는 그 혼란 속에서 용서를 빌어도 마음이 해결되지 않는 지옥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저는 아빠가 젋은 날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걸, 용서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저에게 전화를 걸고 사과를 하지만, 어른이 된 아이가 아무리 아빠를 용서한다고 해도, 그 아이의 눈빛과 눈물을 기억하는 아빠는 슬퍼합니다.

아빠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에 그 젊었던 자신 때문에 매일 슬퍼했던 아이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겁니다.

시간은 이어져 있지만 사람의 기억은 썽둥썽둥 잘려서 조각조각 나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딸이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수록, 아빠는 젋은날의 자기 자신을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 깊은 괴로움 속에서 허덕입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하고 사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을 계속 쌓아 올려야 세월의 어느 부분이 조각나 버려도, 우리는 계속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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