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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n 19. 2022

엄마와 12세 소년의 자전거 산책

자전거를 타고 너와 함께 하는 시간

아침에 12세 소년에게 자전거를 타고 정릉천에 다녀오자고 말했습니다.

엄마곰의 말을 듣고 사춘기곰은 한참동안 고민합니다. 아마 귀찮고 가기 싫었겠지요.

그래도 무슨 생각인지 천천히 엄마 곰을 따라 나섭니다.


하늘이 흐렸지만 비 예보가 없어서 안심했는데 정릉천에 진입하려고 하니 비가 오네요.

할 수 없이 자전거를 돌려서 집으로 가는데 사춘기곰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답니다.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을 왜 먹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말을 삼키고 함께 가게로 향합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정말 새빨간 매직으로 칠해놓은 듯한 하드를 사서 한 마디 말도 없이 먹네요.

흐린 하늘을 말 없이 바라보는 우리집 사춘기곰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 사이에 비가 멈춥니다. 같이 정릉천 자전거 도로에 진입해서 힘껏 달립니다.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데 저 멀리 노모의 휠체어를 밀어드리는 중년 아저씨의 뒷 모습이 보입니다.

한참 뒤에는 중픙으로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걸음 연습을 하고 계시네요. 아이 입장에서는 자전거 도로에서 방해가 되는 거로 느끼진 않을까 걱정되어 살짝 뒤를 돌아보니... 아들곰은 자전거 속도를 줄이고, 그 분들의 걸음에 방해되지 않게 조심히 비켜서 옵니다. 자전거 도로지만 그 분들을 배려하는 게 맞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춘기곰에게 잔소리처럼 들릴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춘기 곰에게 엄마보다 앞에서 먼저 가라고 말했더니 싫다고 합니다.

한바퀴 돌아서 오는 길에 알게 되었는데, 잠깐 동안 저를 앞지른 아기곰이 자꾸 뒤를 돌아보며 엄마 곰의 위치를 확인하는 겁니다. 이제 엄마곰보다 빨라진 아들곰이지만 자신을 따라와야 하는 엄마곰을 배려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뒤에서 자전거 벨 소리가 들립니다. 고속 자전거가 비켜달라고 하는 소리여서 얼른 옆으로 비켰더니 사춘기곰이 엄마곰을 보며 깔깔 웃습니다.

"엄마 놀리니까 미있냐?" 한 마디 했네요.


생각해보니 1년 전에 자전거로 10키로를 달려 한강에 갔을 때, 따라올테면 따라와 보라는 식으로 전 속력을 다해 달리는 엄마곰을 보며 아들곰은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지쳐 버린 엄마 곰 뒤에서 아들곰은 그 긴 시간 동안 불평 한 마디 없이 천천히 따라왔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되게 잘난 줄 알았던 엄마곰은 성적도 성격도 친구관계도 평범한 첫째곰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내가 내 운명과 세상과 사회에 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나의 꿈과 욕망을 심어주는 것도 너무 두려웠습니다. 하얀 도화지같은 아이의 내면과 인생에 나의 펜을 들고 칠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럴만한 그릇도 안 되고 용기도 없습니다. 아이를 휘두를 바에는 차라리 나를 두들겨 패자고 정했습니다. 인생의 깊이에 대해 고민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이 세상에서 진짜 나의 방패가 되어주는 건 직업이나 환경이 아닌, 강하고 바른 마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첫째곰은 퍼스트 어벤저의 방패를 가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오빠와 엄마를 넘어서는 똘똘한 둘째곰에게 이리저리 치이지만, 우리집 사춘기곰의 바다같은 마음을 엄마곰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엄마곰은 벌써 우리 첫째곰 마음 속의 바다에서 헤엄도 치고 노을도 바라보면서 그 바다의 넓이와 깊이에 감동하고 또 감사하고 있습니다.

식탁에서 한 숨 쉬고, 가끔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동생들과 툭탁거리고, 시험 볼 때 덤벙거려서 야단도 많이 맞지만, 마음 속에 바다를 간직한 우리 아기곰을..

엄마곰이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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