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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n 22. 2022

누군가에게 미안할 때, 함께 가면 좋은 까페

12년 동안 친구의 600시간, 나의 6시간

2011년에 첫 아이를 출산하고 우울증이 왔습니다. 호르몬의 변화였던건지 갑자기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가슴 오저에서 올라왔고, 길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 친구 거북이(친구 별명)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거북이는 제 이야기를 묵묵하게 들어주었는데, 그 이후부터 제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저를 불러내는 게 아니라 저를 만나러 옵니다. 거북이의 집은 수서, 우리 집은 강북입니다. 수서에서 3호선을 타고 6호선으로 갈아타고 오면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입니다. 그 장거리를 제가 큰 아이를 출산하고 지금까지 12년 동안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와 주었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내 친구 거북이가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고, 오늘 저는 거북이를 만나러 정말 수년만에 친구네 동네에 방문하였습니다.

  

저 멀리서 친구가 내려오는 데 갑자기 '미안해'라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세 아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친구를 만나러 먼저 발걸음을 옮긴 적이 거의 없다는 걸 이 골목 앞에 서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먹먹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친구를 차에 태우고 최대한 말을 짧게 하면서 마이레라는 식물까페를 방문하였습니다. 예전에 회사 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왜 오늘 이 카페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와 식물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그냥 무작정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같이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까페 마이올라의 초입

조경회사에서 운영하는 카페 마이알레는 거대한 정원을 갖고 있는 식물까페입니다. 음료와 음식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원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이 까페 마이알레의 모든 시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까페 마이올라의 온실
정원의 중간 중간, 구석 구석마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습니다.
저 길 끝의 어느 테이블에 앉아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안개나무가 더운 6월 말의 하늘을 온 몸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까페 마이올라의 식재료로 활용되는 블루베리 나무
까페 마이올라의 정원
3층의 리빙샵
짚으로 만든 대형전등
3층 공간 어딘가에 놓여진 연못 사진들

정원까페에서 식사-산책-티 타임-산책을 반복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전에 영화 미술팀에서 일했던 친구는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또 오해영을 보다가 배우 서현진의 작품 세계에 빠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최근에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밤을 가슴 먹먹하게 표현한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화 끝에 나는 "무심해서 미안해.. 나를 만나러 와 준 너의 모든 발걸음에 고마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친구가 너무 당황할 거 같아서 그 말도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나의 초라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실망스러웠을텐데, 그 친구는 12년 동안 무거운 등껍질을 매고 느릿느릿한 발걸음을 옮겨주었습니다.

친구가 나를 만나러 이동한 600시간(한달에 4시간*12개월*12년)의 거리와 제가 12년 동안 친구를 만나러 이동한 6시간의 거리.

 

"아까 말이야.. 우리 로즈마리 풀의 향기 맡으면서 감탄하고, 수국 예쁘다고 감동하고, 블루베리 열매 보면서 입이 쩍 벌어졌잖아. 안개나무도 검색해보고, 나무에서 떨어진 매실 보면서 웃었어. 그런데 말이야.. 사실은 그 모든 나무와 식물보다 내 눈에는 네가 더 아름답고 소중하고 감동적이야.."

언제 꽃피울까 때를 기다리는 꽃봉오리들
친구와 헤어지고 귀가하는 길.. 강남대로, 성수대교, 내부순환도로 전 구간이 막히는 고단한 귀가길. 고마운 내 친구..


과천 정원까페 마이알레에서....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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