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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n 30. 2022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 마리포사 식사후기

"지금까지 인터뷰한 모든 직업 중에 어떤 직업이 제일 좋은가요?"

저는 직업인들을 인터뷰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좋은 인터뷰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하고, 어떤 결실 없이 그냥 좋은 인터뷰로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2016년부터 했으니 지금까지 만난 직업인만 수십명이 되겠네요.

저는 오늘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 김기섭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호텔리어라는 직업에 대해 장시간 인터뷰 하였는데, 사람들에 의해 깎여지고 다듬어진 5성급 호텔의 대표님은 지금까지 인터뷰했던 그 누구보다 겸손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이끌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서로에게 강렬한 의미가 되는 일인 게 분명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 29층의 마리포사라는 레스토랑을 갔습니다.

저는 사실 소비에 대해 민감한 편입니다. 물건 사는 걸 극도로 꺼리는 편인데, 내가 이 물건을 사면 지구 어딘가에서 이 물건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게 너무 공포스럽습니다.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는 물건들을 지구 를 파괴하면서 만들어 내는 게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입는 저의 잠옷은 거의 찢어져 있고, 모든 살림은 13년의 세월을 오롯이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그나마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장점 하나가 남편이 저를 견디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직업인을 만나면 그 직업의 세계를 간접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오늘이 저에게 그런 날이었습니다. 저는 호텔 최고급 레스토랑을 통해 호텔리어의 세계를 간접체험하였습니다.


맨 처음 마리포사에서 만난 식전 빵은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프랑스 베이커 집안의 풍미 가득한 빵입니다.

 

저 동글동글한 빵은 이 세상에서 먹어본 빵 중에 제일 깊은 맛인데, 사실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빵을 먹고 느낀 점은 빵은 음식이 아니라 예술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겁니다. 최대한 자연의 재료로만 빚어낸 자연에 가까운 맛이라고 할까요?


빵 다음에 칵테일이 나왔는데 당연히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피나콜라다 맛의 술에 바카디를 마구마구 섞었습니다. 저는 술이 약하기 때문에 즐기지는 못했지만, 칵테일을 장식하는 꽃과 풀잎을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호텔 페어몬트 마리포사 칵테일
전채요리 핑거스낵

바다의 향으로 가득한 손가락 굵기의 전채요리였는데 이름은 모릅니다. 작은 요리 한 점에 온갖 바다의 향이 가득한 게 얼마나 신기한지... 겉으로 표현은 못하고 마음속에서 '아!' 감탄사만 연발했네요.

페어몬트 호텔 마리포사 캐비어 요리

캐비어 요리가 나왔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동물보호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채식을 3년 동안 했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트러플 소금만 쓸 정도로 트러플 매니아이지만 솔직히 캐비어는 반갑지 않았습니다. 상어한테 미안하다는 사과를 수백번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오늘의 자리는 개인적인 친분의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였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한 입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당황했지만, 중간에 물을 마실 때 음식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제 입에 바다의 향이 퍼지는 충격에 머리가 띵 했습니다. 트러플과 캐비어를 생각해보면 서양 사람들이 꼽는 최고의 음식이란 맛이 아니라 향에 있나 봅니다.


호텔 페어몬트 마리포사 조개스프

이 조개스프는 옥수수 맛이 나면서 조개 향이 나는 특이한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개스프의 풍미만큼이나 스프를 담아낸 그릇이 얼마나 강렬한지 모릅니다. 이 그릇을 빤히 바라보는데 왜 갑자기 제주도 오름이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투박한 그릇이 얼마나 자연을 닮았는지, 이 그릇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제주도 오름에 가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음식과 그 음식을 담는 그릇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 같습니다.

호텔 페어몬트 마리포사 양갈비 요리

저는 양갈비를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동네에 전국에서 모여드는 양갈비 맛집이 있지만 "양의 가로눈이 너무 무서워"라는 이상한 말로 남편의 비웃음을 산 게 수십번입니다. 양의 가로눈 운운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여서 담담하게 나이프과 포크를 들고 한 입 먹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부드러운 고기는 처음입니다. "양아 미안해. 오늘만 먹고 다시는 먹지 않을게." 다짐을 하며 고기를 맛있게 베어먹었습니다. 저는 오늘 내 자신이 사냥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호텔 페어몬트 마리포사 랍스터 요리

메인요리가 나옵니다. 랍스터 요리입니다. 그 동안 내가 먹은 랍스터는 랍스터가 아니라 새우였단 말인가 스스로 반문을 하게 만드는 맛입니다. 담당 서버께서 접시 아래의 콩은 육지를 표현하고, 랍스터는 바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콩의 맛은 대지의 맛이 맞는 것 같습니다. 굵고, 깊고, 감사한 그런 맛입니다.

호텔 페어몬트 마리포사 산딸기 케이크 및 아이스크림

금박을 입힌 산딸기 케이크와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나왔습니다. 혀의 세포를 자극하는 맛이 아니라 후각에 의존하는 그런 맛입니다. 오늘은 산딸기의 날인가 봅니다. 갑자기 아침에 막내곰이 산딸기가 먹고 싶다길래 "산딸기 엄청 맛없어"라고 무심하게 말을 던졌는데... 하필 오늘의 디저트가 산딸기 케이크라니ㅎㅎㅎ

한 입 한 입에 막내곰의 얼굴이 아른아른하네요.

오늘의 칵테일과 와인

우리는 호텔에서 식사를 마치고, 근처 대구탕 집에 가서 2차로 소주를 마셨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항상 제가 받는 질문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많은 직업인들을 만나셨는데, 어느 직업이 제일 좋은 거 같나요?"

"아이에게 어떤 직업을 추천해 주시고 싶어요?"


저는 웃으며 진심을 다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직업에 대해 고정관념이 깊었던 사람 같아요. 직업에 서열이 있다고 생각했나봐요. 직업인들을 인터뷰 할 때마다 하나의 직업은 하나의 세계 또는 우주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제가 인터뷰할 때마다 그 직업이 제일 좋아보여서 아이들에게 추천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게 반복되니까 이제 아이들도 별 관심이 없어요. 이 세상의 모든 직업 하나하나는 각각의 고유하고 절대적인 세계를 갖추고 있어요."  


저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화성과 목성 중에 어느 별이 더 좋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 것처럼... 타원은하와 나선은하 중에 어느 은하가 더 좋다고 비교하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은 비교대상이 아니며 각각의 고유한 세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내가 나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깨달아서 거기에 들어가면 그 뿐입니다.

오늘 인터뷰하면서 만난 호텔 대표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서빙해 주신 선생님들, 지배인님, 인터뷰어로 앉아 있던 저까지.. 우리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직업의 세계에 속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직업을 비교하는 건 목성과 토성을 비교하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같은 우주에 떠 있다는 건 나와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의미일 뿐, 어느 별이 좋다 나쁘다의 의미를 갖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당당하게 마음껏 빛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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