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로운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합니다.
1. <세상의 모든 계절> "혼자서 다 잘하는 내가 되자"
모든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주인공 메리가 영화 런닝타임 내내 횡설수설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호소합니다. 그 외로움은 직장동료 제리 부부를 통해 매번 위로받는 듯 하지만, 결국 메리의 실수 때문에 제리 부부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합니다.
제리 부부의 외면을 통해 메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그들이 베푼 호의가 타인에 대한 따뜻한 예의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메리가 자신은 결코 제리부부와 동등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영화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 메리는 제리부부와 아들 내외의 식사자리 한 켠을 차지하는 장식품일 뿐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타인 인생의 장식품으로 전락할지 모릅니다.
차라리 혼밥도 잘하고 혼행도 잘하고 혼자 노래방가서 노래도 신나게 잘 부르는 내가 되면.. 그런 내가 되면 나를 자신과 동등한 우주로 바라보는 타인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2. <걸어도 걸어도> "가족.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가족이지만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고 벽처럼 느껴집니다. 의대생이던 형의 기일에 가족들이 모이지만, 큰 아들의 죽음에 상처 받는 어머니, 아버지와 형에 대한 열등감으로 상처 받는 둘째 아들, 어머니의 차별에 상처받는 며느리 등 한 공간에 있는 가족 구성원 모두, 각자 다른 이유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어머니의 상처는 수십년간 봉인됐다가 노래 한 곡을 통해 지독하게 외로운 표정으로 표출되고, 며느리의 상처처는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의 상처와 방황을 목격하게 되면서 갑자기 마음 속에서 매듭을 풉니다.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은 가족들에게 상처만 주는 할아버지가 우연히 잡아 준 손이 따뜻해서, 모두 잠 든 밤.. 죽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건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우연히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가족입니다. 내 마음 속에 가족 누군가에 대한 매듭이 묶어져 았다면 굳이 풀려고 하지 말고, 그 매듭이 시간과 바람에 의해 헐거워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가장 편한 순간에 풀어내고 자유를 찾으면 그만입니다.
3. <스파이더맨-노웨이홈> "지금 함께 있어도, 멀리 있어도, 나를 잊어도 괜찮아. 내가 너를 기억하니까."
마블의 히어로는 서로 힘이 되어 주지만, 사실은 반드시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야 하는 운명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의 스타로드는 생물학적인 아버지와 진짜 아버지, 사랑하는 연인 가모라를 잃었고, <토르-러브앤썬더>에서 토르는 제인과 영원한 이별을 맞이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지구의 크리스틴, 평행우주의 크리스틴 모두와 이별을 합니다. 그래도 다른 히어로들의 이별은 저 달나라 어딘가에서 이루어지는 사건같다면, 스파이더맨 피터가 맞이하는 숙모의 죽음, 친구들과의 이별은 지극히 나와 같은 별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사건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한 이유를 들여다 보면, 내가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 깊은 곳에 들어가 있다는 걸 확인함으로서 느끼는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MJ와 네드의 기억 속에서 철저하게 지워진 피터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래도 자신이 그들을 기억할 수 있음에 슬픈 미소를 지으며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고통스러운 당신,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당신... 나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면 과연 행복할까 생각해보면, 기억이 없어져도 오히려 마음 속의 고통이 내 앞에 나타나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요?"고 따져 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없어도, 내가 기억하고 사랑하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고통의 근원을 알 수 있으니 조금 다행인 것 같습니다. 정 안 되면 평행우주 저 너머에서라도 만나게 될 지 모릅니다. 나는 존재감도 없고 누군가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긴 어렵겠지만, 내가 그 누군가를 의미 있게 기억해 낸다는 것에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고 싶습니다.
내가 그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기억해냈으며, 지금도 가끔 심심할 때 내 생각의 오징어 다리로 질겅질겅 물고 있으면 그만입니다.
오늘은 하늘을 향해 이 두 마디를 건네고 싶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다 괜찮아"
"내가 너를 기억하니까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