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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l 23. 2022

같은 비가 내린다

창밖의 비가 과거와 현재를 한 올 한 올 이어냅니다

수십 년 전 어린 아이가 부모님의 다툼으로 혼자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맞았던 비

어쩌면 엄마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슬프게 바라보았을 비

스무 살, 과외 알바를 하고 돌아오는 길.. 큰 비에 우산이 없어서 정류장까지 맞았던 차가운 겨울 비

혼자 떠났던 첫 여행, 보길도에서 노을지는 은빛 바다 위에 내리던 그 비..

1시간을 걸어도 사람은 없고, 눈처럼 날리는 보길도 바다 비를 보며 지구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지

27세 때 안나푸르나에서 산을 오르는 7일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비

2010년 4월, 비와 눈이 한꺼번에 내린 이상한 저녁...

그 눈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던 한 남자가 내게 우산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

결혼한 첫 해,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리며 창문으로 바라보았던 3주 간의 장마비

제주도 한라산을 올라갈 때마다 나와 발걸음을 맞추어 걷는 비

내가 항상 머무는 제주도 정원책방에 내리는 비를 차 안에서 1시간 동안 바라보았지

제주도 바다에 내리는 비는 나의 시간을 멈춰 세우는 힘이 있지

이름 없는 오름을 찾아다니다가 도착한 어떤 공동묘지, 그 묘지에 내리던 비는 정말 슬프더라

얼마전 여의도 호텔에서 캐비어 요리를 먹는데, 창 밖에 내리는 큰 비가 자꾸 내 마음을 두드렸다

일어나서 창문으로 다가가 화려한 호텔 유리창에 부딪쳐 흘러내리는 그 비를 만져보고 싶었다

오늘 양양 해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리는 그 비...

그 많은 비에 젖고도 나는 반듯한 어른이 되었고 모든 게 바뀌었는데 계속 같은 비가 찾아온다

비가 너의 본질은 똑같다고, 너는 너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고 이야기 건네는 걸까

창 밖에 내리는 비의 그 냄새가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린 나를 깨운다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6월 6일 서해 여행을 가는 길에 내리는 비


6월 29일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 내리는 비
6월 30일 과천 마이알레 까페에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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