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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an 09. 2023

지리산 무박2일 겨울산행 스토리

차 멀미와 함께 죽다 살아난 백무동-장터목-백무동 코스

남편이 며칠 전부터 지리산 겨울산행을 다녀온다고 했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다가 눈이 쌓인 산에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저렇게 겨울산을 찾아다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남편을 따라 지리산 무박2일 겨울산행을 나섰습니다. 


밤 12시 동서울 터미널 백무동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밤 11시 59분에 출발하는 지리산 백무동행 버스

고속도로 구간은 졸면서 잘 지나갔는데, 함양 터미널부터 백무동까지 굽이진 도로에서 저는 멀미를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3시 30분에 백무동에 내려서 짐을 추스리고 백무동 탐방지원센터가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입장을 했는데, 입산하지 1시간도 안되어 구토를 시작하였습니다. 토하면서 흰 눈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와 산 속의 어두움, 빙글빙글 우엑우엑 미식거림에 하산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에게 천왕봉에 다녀오라고 하고, 저 혼자 내려가려는데, 헤드랜턴의 불빛만으로 하산한다는 제 이야기가 남편에게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태양이 뜰때까지 우리는 걷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이 가득쌓인 백무동 코스
무려 4만원을 들여서 산행 당일에 급하게 구입한 국산 아이젠 ㅜ.ㅜ

저는 지리산을 다녀올때 백무동은 하산하는 코스로만 이용해서 오르막의 난이도를 체감한 적은 없습니다. 눈에 발은 빠지고, 바위는 보이지도 않고, 끝도 없는 일직선 오르막 코스와 울렁거리는 미식거림에 하산을 결심했어요. 소지봉까지만 갔다가 해가 뜨면 하산하겠다는 저의 계획이 무색하게, 소지봉부터 갑자기 펼쳐지는 완만한 구간에 저의 발길은 계속 산 위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를 추스리는 남편도 지치고, 울렁거리는 상태에서 산에 오르는 저도 힘들었지만 우리 부부는 장터목까지 가보자는 각자의 의지가 있다는 걸 서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산 4시간 조금 넘어서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였습니다.

1700미터 고도의 장터목 대피소 전경 (오전 8:20 도착)

 

장터목의 풍경은 지리산 최고의 비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왕봉 위에 서면 하늘 위에서 땅을 바라보는 신적인 느낌이라면, 장터목은 지상 위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내가 정면에서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터목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제가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에, 지친 남편은 여유를 즐길 시간도 없이 취사장에서 밥을 준비합니다. 

이럴 때 보면 저는 아마 이 지구상에서 결혼을 제일 잘한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각자 짊어지고 올라온 모든 음식재료를 펼쳐놓고 순서 없이 막 먹기 시작합니다.

 

절인 파인애플로 당 보충하기
단짠단짠 에그샌드위치
드디어 우리의 메인요리, 라면

여행을 다닐 때마다 "우리 코펠 좀 사자"고 대화합니다. 매번 집에서 사용하는 무거운 냄비를 들고 다니는데, 마음에 쏙 드는 여행제품을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에 서로에게 미룬지가 몇 년 인것 같습니다. 어쩌면 남편은 집에서 사용하는 냄비와 프라이팬을 여행지에서 쓰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라면을 먹고 나니, 몸이 라면처럼 흐늘거리기 시작합니다. 대피소 2층으로 엉금엉금 올라가 나무마루 위에 온 몸을 웅크리고 누워봅니다. 그렇게 10분 정도 눈을 붙였습니다. 남편에게 혼자 천왕봉에 다녀오라고 말을 하고 쉬고 있는데, 남편도 너무 지쳐서 엄두를 못내고 쉬다가, 우리는 하산 준비를 시작합니다. 

하산시간과 고속버스 운행시간을 계산하고 또 버스 맨 앞자리를 예약하기 위해 분투하는 남편

하산은 쉬울 거 같다던 남편의 예상과는 달리 저는 하산 때에도 빌빌거립니다. 아이젠 때문에 발이 너무 아팠고, 얼음판을 디디는 요령이 없어서 자꾸 미끄러졌습니다. 거북이 한 마리가 지리산을 내려오는 것처럼 엉금엉금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결국 버스시간에 쫓기기 시작했고, 그 미련한 거북이는 그제서야 등껍질을 벗고 토끼처럼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울는 버스 출발 10분 전에 백무동 터미널에 겨우겨우 도착하였습니다. 

부지런히 하산하는 눈 속의 남편
소지봉 벤치에 누워서 바라본 하늘
해발 600미터 부근의 낙엽길

고속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시간의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듯 눈을 감았다 떴다 할 때마다 시간과 장소가 점핑합니다. 눈을 감을 때에는 백무동, 눈을 뜨니 함양, 그 다음에 눈을 뜨니 죽암 휴게소, 다시 눈을 뜨니 경부고속도로 동탄부근.

우리는 남부터미널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합니다. 등산복장을 입고 앉아계신 노부부가 우리 부부를 보더니 웃으면서 대화를 합니다. 저희는 너무 지쳐서 입에 지퍼가 채워졌습니다 ㅠ.ㅠ

집 근처 식당에 들어가서 저녁으로 냉면과 만두를 시켰습니다.

눈과 얼음으로 뒤덥힌 지리산 안에서 내 발이 동상에 걸린 것 같다며 난리치던게 몇 시간 전인데.. 냉면을 시켜먹는 한국인 특유의 기상ㅋㅋ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지리산 사진을 보여주고, 10시에 온 가족이 꿈나라로 떠납니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건, 집으로 향하는 그 여행이 가장 소중하고 따뜻한 여행이라는 겁니다.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매일 똑같은 일상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통해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일상을 통해서 지구로 떠나는 여행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그 균형에 대해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집니다. 


지리산 험한 구간에서 마주친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집 아기곰들도 인생의 평탄함에 젖지 말고, 몸과 마음과 환경이 나의 주인행세를 못하도록, 생명을 단련하는 활동을 부지런히 하기를 바래봅니다. 

내 몸을 향해, 내 마음을 향해, 내 환경을 향해 "내가 너의 주인이라는 걸 명심해라" 라고 외칠 수 있는 당찬 아이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엄마곰도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엄마곰 맘디터의 지리산 무박 여행기를 마칩니다.


지리산 백무동 대피소의 풍경

  

  

가까운 풍경과 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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