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육아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들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 나트랑으로 떠났습니다. 남편의 회사 일정상 저와 아이들만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저는 사실 남편이 어떻게든 여행에 합류할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말연시에 5일 휴가를 내기는 불가능했고, 저는 공항에서 아이들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비로소 저의 독박육아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걸 체감하였습니다 ㅠ.ㅠ
저녁을 인천공항에서 해결했습니다. 세 아이 모두 메뉴가 다르고, 먹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저는 정말 잠시도 엉덩이를 의자에 붙일 수 없었고, 비행기 이륙 전에 술취한 사람처럼 이미 지쳐 버렸습니다ㅎㅎㅎㅎ
그리고 비행기 시트에 앉자 마자 깨달았습니다. 제가 베트남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았고, 우리가 묵는 리조트가 어떤 곳인지, 자유여행을 어떤 일정으로 짜야 하는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말이죠.
저는 슈퍼 울트라 초특급 덤벙쟁이인데, 타국에서 홀몸이 아니라 세 아이, 제 여동생과 조카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5시간의 비행 끝에 나트랑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국제공항을 통털어서 나트랑 공항이 가장 시설이 좋고 쾌적하며, 멋진 위용을 갖춘 것에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베트남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TV에 나온 베트남 시골의 수상가옥을 생각하며 나트랑에 도착한 무지랭이었습니다.
(어떤 외국인이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나는 자연인이다>프로그램만 보고 한국을 상상하고 방문했는데, 인천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받을 충격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공항에서 15분 거리의 셀렉텀노아 리조트에 도착해서 짐가방을 던져놓고 다들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긴장해서인지 3~4시간 후에 눈이 저절로 떠졌고 저는 그렇게 나트랑의 바다와 첫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이 제발 늦잠자기를 바라는 엄마의 바램이 무색하게 애들은 아침일찍 일어나서 조식을 먹자마자 리조트 내 워터파크에 뛰어듭니다. 아이들 친구네 가족도 동행한 여행이었기에 아이들은 모든 순간이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헬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조식-워터파크-중식-워터파크-석식-키즈까페의 뫼비우스띠가 무한반복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워터파크 놀이기구를 타려면 건물 6층 높이로 고무보트를 짊어지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수십번을 타도 지치지 않습니다. 점심을 먹고 에너지를 충전하더니 다시 아침이 온 것처럼 워터파크에서 수영과 놀이기구를 즐깁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또 다시 아침이 온 것처럼 키즈까페에서 뛰어 다닙니다. 어른들은 이미 지쳤고, 우리는 이 무한반복 뫼비우스의 띠를 잠깐 쉬어가야 했습니다ㅋㅋㅋ
결국 일정에 없던 관광을 일부러 넣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트랑 시내에 있는 한국 마트를 가서 쇼핑을 하고, 고대 힌두교 사원을 관광하였습니다. 제가 외국 배낭여행을 할 때 제일 싫어하는 게 쇼핑과 관광인데, 아이들이 약간 무기력하게 차분해 지는 모습을 보니 관광이 그렇게 그렇게 뿌듯하고 좋을 수가 없습니다~~~
저녁에 리조트에 오자마자 아이들은 키즈까페에서 에너지를 대방출합니다. 1초도 쉬지 않는 깨방정 아이들에게 "누가 너네들 국적을 물어보면 절대로 대한민국이라고 하지 말고 일본이나 북한이라고 말해야 한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신신당부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쇼의 진행자로 보이는 두 명이 키즈까페로 들어와 아이들에게 댄스타임을 하자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리조트 내 대형광장에 모였습니다. 각국의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광란의 댄스타임을 벌입니다. 다양한 언어의 댄스곡이 나오고 아이들은 진행자의 율동을 따라하며 신나게 춤을 춥니다. 엄마상어 아기상어 노래도 나오고, 싸이의 강남스타일까지 나와서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집니다. 아이들은 단 한 순간도 지치지 않고 1시간이 넘는 댄스파티를 즐깁니다.
물론 이날 이후의 일정도 식사와 워터파크, 키즈까페를 무한반복합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지치지 않았고, 어른들은 관을 열고 들어가도 될 정도로 공항 의자에 밀가루 반죽처럼 다 붙어버렸습니다.
나트랑 출국 당일, 오후 6시에 레이트 체크아웃을 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 또 다시 키즈까페에서 신나게 놀다가 8시에 공항버스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나트랑은 생분해 비닐과 굉장히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종이빨대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관광지였습니다. 분리수거가 굉장히 잘 되어 있으며, 플라스틱을 재활용해서 사용하는 환경 보호 문화가 정착된 곳이었습니다. 환경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으며, 도로 질서와 도심 환경을 보며 높은 시민의식까지 체감하였습니다.
사실 제가 3년 전에 괌 여행을 갔을 때, 지구가 마치 수천개라도 되는 듯 플라스틱을 한번 쓰고 버린 후에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는 문화에 큰 충격을 받았고, 저는 선진국 미국이 왜 환경오염의 주범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트랑에서 베트남의 문화를 접하며 그들이 환경을 사랑하고 보호하려고 노력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제가 서울에서 어떤 계기로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의 문명과 문화에 대해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고 꼭 이야기 할 겁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아이들이 가진 에너지입니다. 아이들이 여행기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를 보면서, 평소에 학교와 학원을 반복할 때 저 에너지는 다 어디로 흘러갈까 궁금해 졌습니다.
전부 축적이 되어 언젠가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 공부하는데 조금 사용하고 소멸되어 버린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정신적 신체적인 무한한 가능성을 어떻게 느끼고 체감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습니다.
이번 나트랑 여행은 아이들이 자신이 가진 무한한 에너지를 체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생명력에 경외감까지 느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저도 제가 가진 무한성을 추구하고 찾아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남편도 아이들도 각자 그러한 삶의 여행을 해야만 한다고 정했습니다.
남편 회사는 2월에 임직원 몇 명을 뽑아서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떠납니다. 그 여행에 합류하고 싶어서 매주 북한산, 설악산 등반을 하는 남편이 걱정되면서도 얄미웠지만 아이들과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남편이 자신의 무한성을 찾는 여행을 해내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1~2주 안에 한라산 영실코스와 성판악 코스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우리 세 아이들도 공부만 하고 책만 읽으라는 저의 잔소리에 지지 말고, 자신의 무한성을 찾는 여행을 해내기를 바랍니다.
맘디터의 베트남 나트랑 여행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