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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Feb 05. 2023

영화 세자매가 명작인 이유

어른이 된 우리들은 어린시절의 상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영화 세자매가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이 영화는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를 보여주진 않지만 폭력의 희생양이었던 첫째와 막내, 그 폭력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무력함을 자책한 둘째 아이,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유아였지만 늘 맴도는 추운 기억의 한 자락을 붙잡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셋째가 나옵니다.   

학대당하던 첫째는 결혼생활이 불행합니다. 아버지와 남편에게 학대를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해 즉 자신이 자신을 칼로 학대하는 행동을 통해 일종의 편안함을 느낍니다.

언니와 남동생이 당하는 폭력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던 둘째는 신앙도 가정생활도 경제적 여건도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언니와 자신이 맨발로 뛰어가던 기억의 한 자락을 붙잡고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천진난만한 질문을 던지는 셋째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도대체 모르겠어"라며 깔깔 웃는 모습을 통해 아버지의 폭력으로 점철된 가정에서 딸들의 어머니 즉 모성의 역할은 조금도 설 자리가 없었음을 대사 한 마디로 보여줍니다.


세 자매의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전혀 편안해 보이지 않습니다. 환경적인 요인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사실 내가 나와 싸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면 나는 결국 나와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세 자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 즉 어린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 어머니의 무능, 이웃과 사회의 무관심 등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 이미 어른이 된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앉아서 중요한 현재의 순간마다 힘을 발휘합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멈추기 위해 다섯살 동생과 맨발로 필사적으로 뛰어가 동네 어른들에게 "경찰에 신고해 주시면 안돼요?"라고 부탁한 둘째는 이런 무안을 당합니다.

"너희 아버지가 감옥가면 좋겠니? 빨리 가서 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빌어라"

힘 없는 아이들이 이유도 모르는 아버지의 폭력을 멈추기 위해 "(이유는 모르지만) 잘못했어요"라고 빌어야 하는 가정폭력의 악의 고리가 민낯을 드러냅니다.


더 큰 비극은 영화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 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는 하나님께 귀의하여 훌륭한 신앙자로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벨벳 원피스를 입고 비싼 식사자리를 준비한 완벽주의자 둘째가 무너지면서 외칩니다."아홉살 때부터 기도했다, 제발 아버지 빼고 우리 가족 모두 죽어있게 해 달라고, 아버지 빼고 천국가서 행복하게 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사과하라며 소리치는 둘째 딸을 향해 어머니가 소리치는 한 마디가 가관입니다.

"너희 아버지 이제는 안 그런다"

상처와 고통을 다스릴 힘도 방법도 없는 아이들에게 고통의 씨앗을 심어놓았고, 그 씨앗은 아이와 함께 어른처럼 자라서 삶의 순간마다 고통을 주는데, 지금 아버지가 회했으니 폭력으로 점철된 너희들의 어린 시절까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겁니다.


세 자매는 아버지에게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바닷가에서 셀카를 찍고 즐거워합니다. 어린시절 심어진 고통의 씨앗은 우리 내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낼 수도 없고,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 부분만 도려낼 수도 없습니다. 현재를 구성하는 바탕인 과거와 한 몸으로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세자매는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 시절의 상처와 처절하게 싸우는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는 현재라는 시간을 통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신을 향한 맹목적인 무지는 또 다른 벌을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상처를 받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연쇄살인보다 잔인한 범죄라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연쇄살인범 조차도 자신의 가족만큼은 범행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범행대상으로 특정하는 가정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와 법, 이웃들의 감시망은 지금보다 더욱 엄격해 져야 합니다.


삶의 힘든 조건과 사투를 벌이는 존재가 인간이고 어른입니다. 삶은 가만히 있어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힘든데, 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처 속에서 어린 나의 감정과 이중으로 사투를 벌이는 건 너무 잔인한 형벌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형벌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세자매의 아버지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건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그건 기독교의 부분적인 관점입니다. 불교에서는 아무리 부처님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의 인과는 철저하게 자신이 짊어져야 합니다. 영원히 생명에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자매 아버지의 어리석음을 품어주셨는지 모르지만, 불교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영원히 성불하지 못하는 탐진치 삼독 중에 치(어리석음)에 해당하는 중죄입니다.  


힘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누구도 고통의 씨앗을 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화 세자매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어른들을 우리 주위에서 만난다면 내가 아무리 힘이 있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도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어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엄청 힘이 세고 건강한 그 사람의 현재 마음이 과거의 어린 자신을 위로하고 품어주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과거가 고통스러운데, 현재 내가 강한 사람이 되어 있으려면 그 시간의 간극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될까요.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이 바로 가정폭력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 자신과 가족, 이웃, 세상을 따뜻하게 들여다 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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