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와 함께 <스즈메의 문단속>을 관람하였습니다. 리뷰를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제가 아이와 약속을 취소할것 같아서,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영화 시작 후 벌어지는 숨막히는 빠른 전개에 1초도 망설임 없이 영화속 세상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스즈메의 실수로 미미즈 즉 대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초자연적인 에너지를 봉인하는 요석 하나가 탈출하면서 일어나는 소동극인데, 보는 내내 다들 심각한 건 바로 미미즈가 대지진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낼 것만 같던 멋진 남자주인공 소타는 다리 하나가 없는 의자로 변해버리고, 그의 역할을 주인공 스즈메가 맡게 되는데, 복잡한 과정 끝에 결국 소타는 돌이 되어 미미즈 봉인의 도구가 되어 버립니다.
스즈메는 마음 속에 늘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 내면이 복잡한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잘생긴 소타에게 반해버린 철부지 10대 소녀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이 두가지 얼굴은 관객들의 마음을 인정사정없이 주무릅니다.
그리고 미미즈가 탈출하는 문은 항상 폐허 한가운데 어딘가에 숨어있는데, 인간이 개발해놓고 사용 가치가 없어져서 버린 폐허의 공간을 통해 대재앙의 에너지가 탈출한다는 설정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특히 재앙의 문을 닫으려면 열쇠를 꽂는 구멍이 생겨야 하는데 그 구멍을 만드는 방법이 인상적입니다.
폐허가 가장 가치 있었던 시절에 그 공간 위에서 살아간 사람들 마음과 목소리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차없이 버린 그 폐허는 어느 곳이나 원래 생명의 숨결이 가득했던 곳입니다. 폐허가 된 장소의 가장 빛나는 모습과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문을 봉인할 수 있는 열쇠구멍이 생깁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우리가 환경과 자연, 대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장면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결국 눈물은 클라이막스에서 터져버립니다. 인간이 만든 폐허의 문으로 탈출하여 수백만명의 죽음을 만들려는 자연에너지 미미즈와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또다른 자연의 에너지 요석의 전쟁... 스즈메는 소타 대신 봉인석이 되는 선택을 하는데, 수백만명의 생명도 살리고, 소중한 소타 한 사람의 생명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입니다.
스즈메는 마지막에 죽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저 너머 공간에서 울고 있는 어린 자신을 만납니다. 4세인 자신에게 희망을 건네고, 그 슬픔을 이겨내라고 위로해 줍니다. 그리고 안아줍니다. 엄마를 잃고 슬픔에 죽어가는 어린 스즈메는 자신을 끌어안은 성장하는 소녀 스즈메를 통해 문 밖으로 나오고 영화는 끝납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박제된 시간이지만, 현재의 어딘가에 뿌리내려서 지금의 우리를 사정없이 움직입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 건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진, 연속적인 내가 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단절된 존재가 아닌 이상, 사실 과거에서 자유로워 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과거를 부정할 수록 슬픔과 절망이 영화가 그려낸 저 너머 세계에서 나를 계속 기다릴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과거에 봉인된 나의 슬픔을, 그 시절에 멈춰버린 나를 지금의 내가 따뜻하게 위로해준다면, 나의 과거가 문을 열고 씩씩하게 현재를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반복되는 '폐허'라는 말은 슬픈 말입니다. 인간이 개발하고, 버리고, 너무 추해서 숨겨놓은 무책임한 장소를 통해 미미즈가 탈출하는 설정은 자연의 인과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자연의 법칙이 우리에게 생명을 준 것이라면 자연의 법칙으로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미미즈가 대재앙의 모습으로 인간을 찾아오는 것, 봉인석들이 생명을 지키려고 미미즈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빼앗는 자연의 양면성을 잘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끝나도 사람들은 바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 여운을 잘 담아서 귀가해야 하는데, 감동도 여운도 생각도 걸음을 서두르다가 초바늘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질까봐 걱정됩니다. 그래서 저는 스즈메의 문단속 N차 관람을 예약했습니다. 이 영화의 설정과 설정 밑에 흐르는 풍부한 철학, 한 장면 한 장면 모두.. 돈이나 시간의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을까 생각이 들때도 있는데, 이런 영화를 만나면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가치있는 인생을 찾고 있나봐. 나는 가치있는 선택을 하고 싶나봐. 나는 가치있는 무엇가를 열심히 찾는 중이야."
맘디터의 영화 후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