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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Aug 06. 2023

춘천, 별이 내려오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수영장에 가기로 한 삼남매를 시댁에 데려다주고, 우리 부부는 춘천-양양고속도로를 탑니다.

저녁으로 닭갈비 먹고 오자는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보니 양양 바다로 가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남편의 눈치를 살피는데, 택도 없다는 듯한 반응에 조용히 춘천 분기점으로 빠집니다. 그런데 춘천에 노을 내리고 있는 겁니다. 사실 저는 노을지는 춘천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아침에 갔다가 이른 오후에 빠져나오기 때문에 이런 춘천의 모습은 낯설기만 합니다.

해질녁, 춘천에 도착해서 우리는 저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으로 1.5닭갈비를 갈 것이냐, 새로운 닭갈비집을 갈 것이냐 옥신각신 하다가 통나무집 닭갈비라는 새로운 가게로 향합니다. 맛은 그냥 평범했습니다. 이미 단골집인 1.5닭갈비에 길들여져 있어서 말 없이 먹고 나왔습니다.

밥 대신 막국수를 시켰는데 끝까지 안나와서 문의하니, 주문이 누락되었더라고요. 좀 황당했지만, 서빙을 하는 직원분들, 어려 보이는 아르바이트 학생들 모두 이미 너무 지쳐서 녹초가 된 것 같았습니다. 국수를 한참 기다린 남편도 그냥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사람이 일을 하는게 아니라, 일이 사람을 삼켜버린 듯한 그 피곤한 모습도 저와 남편의 일상에 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게에서 불과 10분 정도 떨어진 소양강댐 도로로 들어갔는데, 가로등 하나 없는 칠같은 도로에 동물이 튀어나올까봐 조마조마합니다. 뭔가 예상하지 못한 불편함을 느끼며 느릿느릿 소양강댐 수문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호수 위에는 가을 바람이 불고, 가을 바람이 부는 하늘에 가득한 맑은 별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밤이 내린 춘천 소양호에서 만나는 다른 계절의 시간, 다른 세계의 하늘.

하늘에 떠 있는 별은 우주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아이들과 수년동안 그 많은 여행을 다녀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제는 저 또한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인식하지 못하면, 언젠가 가슴이 답답할 때 푸른 하늘, 넓은 우주와 교감하는 방법을 익히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엄마인 저는 그게 늘 미안합니다.

그 별밤을 오늘 제가 남편과 만났으니 아기곰들을 데리고 노을이 내리는 춘천에 조만간 다시 올 겁니다.


돌아오는 길에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들러서 산지 농산물을 둘러봅니다. 나무 껍질 종류가 많았는데, 이미 상상 속에서는 큰 솥에 나무껍질을 넣고 열심히 닳여서 음미하며 마시고 있지만, 현실의 저는 사놓기만 하고 뜯어보지 않을 확률이 높아서 바로 내려놉니다ㅎㅎ


오늘 소양호에서 마주친 별밤을 시작으로 저의 춘천 여행시간은 아침에서 노을지는 저녁으로 궤도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구 자전의 노력과 시간의 힘은 늘 제 여행의 채도를 높입니다. 이미 수백 번 방문한 익숙한 춘천을 낯설게, 새롭게 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깊이 감동하며..


춘천 3시간 여행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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