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첫째 아기곰과 탁구를 치러 갔고, 막내아기곰은 제 옆에서 만화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숯불고기에 버섯을 하염없이 먹고 있습니다.
생일, 결혼기념일마다 편지와 선물을 주는 남편에게 왜 편지 한 번을 안 써주냐고 장난으로 무안을 주는 당신.
그 편지를 결혼 14년 만에 써 봅니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나에게 맞추느라 자기 자신을 몽돌처럼 동그랗게 만드는 당신. 나에게 부딪칠 때마다 자기 자신을 동그랗게 굴리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나는 모르면서 알고 있었고, 알면서 모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은 내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행복의 크기가 얼마나 될지 늘 미안합니다. 당신은 내가 아니어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고, 당신의 아내라는 자리는 행복이 예약되어 있는 VIP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행복한 자리에 내가 우연히 앉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당신의 그 모든 노력에는 많은 힘과 고민, 내면의 갈등이 들어가 있을 겁니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서로를 태우는 불꽃 튀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나다운 나를 존중해 주고, 어느 때는 실수투성이의 나를 딸처럼 소중히 여겨주는 당신. 사랑은 서로를 태우는 불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더 들여다보고 사랑하게 되는 깊은 생명의 울림이고 교류임을 당신의 사랑 속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진정한 나의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당신이 나를 통해 진정한 당신의 모습에 매일 한 걸음씩 더욱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에게 느끼는 사랑과 감사. 우리 삶은 최고입니다."
당신이 내 생일에 써 준 이 편지구절은 설사 우리 둘의 마음이 변하고, 우리가 다시 각자의 별로 돌아가야 하는 죽음 앞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내 생명의 바다 위에서 아름다운 별빛이 되어 빛나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 내게 보내는 그 모든 찬사는 결국 전 우주가 내게 빼꼼히 보여주는 '당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찬사임을 당신은 모르겠지요. 그래서 늘 하늘과 바다를 바라봅니다.
내가 잊고 있는 건 없을까, 못 보고 있는 건 없을까.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그래서 우리 부부 사이에는 커다란 하늘과 바다, 별, 숲, 계절의 힘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모든 힘들이 몽돌처럼 모든 날카로운 모서리가 닳아 없어진 당신을 품어주고 지켜주고 빛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