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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Aug 08. 2016

[러시아] 아름다운 천장의 기억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쥐 박물관

모스크바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가 지난번 올린 트라치아코프 미술관과 푸시킨 미술관이라면, 상트페테르부크르 최고의 미술관은 겨울궁전으로도 알려진 에르미타쥐 박물관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광의 필수코스. 아니 출장이라도 필수코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들러서 단 한 군데를 가야 한다면 그 한 군데에 꼽힐 곳이다. 실제로 가보니 명불허전이다. 일단 규모며 소장 작품면에서 위용이 대단하다.

왼쪽 사진이 겨울궁전이 포함된 에르미타쥐 박물관이고 오른쪽 사진이 에르미타쥐를 바라보고 있는 참모본부다. 넓디넓은 궁전 관장 한가운데 솟은 알렉산드로프 전승기념 기념비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본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이른 아침에 찍어서 광장이 텅 비어 보이지만 날이 밝으면 사람들로 가득 차긴 매한가지. 이 박물관 내부뿐 아니라 주변 일대가 제정 러시아의 역사적 흔적이자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가득 차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집트 유물이 전시된 방. 실내 장식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에르미타쥐의 소장품은 현재 이 참모본부에도 상당수가 전시되고 있다. 한쪽에서 관람하고 광장을 가로질러 또 한쪽을 보면 된다 싶지만 에르미타쥐만 해도 방이 1천 개에 달하는 규모인지라 웬만하여서는 다 돌아보기는 쉽지가 않다.

다 전시되지는 못하지만 소장품은 300만 점 이상에 달한다고 하니 소장품 목록 관리와 상태 관리만 해도 어마어마하겠다 싶었다.  


프랑스의 루브르,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힌다고 한다. 물론 이 3대 박물관 구성에 다른 의견도 있는 모양이다만, 최근 에르미타쥐에 한국어 서비스 제공을 시작한 대한항공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한편,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은 보다 보면 "세상에 이런 도둑놈들 전 세계에서 많이도 훔쳐왔네"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면 에르미타쥐는 그런 박물관은 아니다. 대형 수집품들보다는 그 자리에 있는 맥락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황제와 귀족의 개인 소장품들이 오래 쌓이고 모여서 만든 수집품 같은 컬렉션들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나 이집트 고대 미술품 같은 것들도 다른 두 박물관은 어디 가서 군대가 통째로 뜯어왔겠구나 싶은 스케일과 양이라면 에르미타주는 중개상인에게 황금을 내미는 제정 러시아 귀족이 떠오르는 컬렉션. 물론, 다 상대적인 얘기다.

이 곳이 한때 궁전이었다 보니 실외도 실내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혁명과 전쟁을 거치며 파괴되거나 손상된 부분들을 오랜 기간 복원한 결과겠지만 이 궁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화려할 만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 표트르 대제를 몰아내고 황제 자리에 오른 예카테리나 대제는 독일 출신이었고 유럽 문화를 도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프랑스 양식에도 선호가 있었던 것 같고 미술품에 대해서 특별한 애호가 있었다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 이 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유물과 각종 미술품뿐 아니라 장식적 요소가 강한 실내 장식이 인상적이다. 특히 재미있게 본 건 각 방의 천장들이다. 그 많이 방과 복도 중에 같은 형식이나 장식의 천장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얼마나 다양한 방식의 구성일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표트르 대제의 방(아래 사진 왼쪽)은 권위적이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방으로, 관광객들이 빼곡히 모여서 포토타임을 갖는 곳이다. 붉은 휘장 아래 붉은 의자가 놓여있다. 이 방과 같이 권위를 상징하는 붉은색 역시 곳곳을 채우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황금색과 하얀색, 파스텔톤의 색감이 지배적이다. 아래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강하고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감각이 돋보이다 못해 때로는 로맨틱하다. 당시 건출에 관여했던 예카테리나 대제의 취향과도 관련이 있을까 싶었다. 여름궁전으로 불리는 페테르고프의 궁전도 이런 느낌이 있다.  

한편, 종교적 인물 묘사나 가문 휘장과 같은 벽면채잭이나 회화적 요소나 상징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채색뿐 아니라 구조를 통해서도 화려함을 강조하는데 건축양식도 특정한 통일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좋고 예쁜 것들로 각각의 방을 개성 있게 꾸몄을 뿐. 혁명을 거쳐 복원된 것도 여러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 점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

사실 내가 천장만 주로 보고 다녀서 그렇지 방마다 바닥 방식까지 다른 걸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품이야, 내가 사진을 찍어봐야 그 작품의 원래 분위기와 의미를 살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 천장만 열심히 찍었다. 바닥까지 찍고 쳐다볼 시간도 없이 천장만 쳐다보고 다녀도 반나절은 그냥 굴러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 아저씨는 표정이 좋아서 사진 한 컷. 심심하시죠?

쓰다 보니 무슨 천장 변태처럼 되었지만, 에르미타쥐의 아름다움은 기회가 된다면 방문으로 확인하시길. 기둥이라고, 바닥이라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고, 소장품들의 수준과 품위가 대단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종합적으로 넓고, 많고, 아름답다.


그래도 한 번씩 꼭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다니시길. 그 역시 기억에 오래 남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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