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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Nov 10. 2020

[평화누리길] 뜨겁고 길고 외롭던 파주구간

평화누리길 파주 구간(6,7,8,9코스. 총 68km)

평화누리길은 12 코스,  189km 걸기 길로, DMZ 접경지역인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  4개의 ·군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의 걸기 길이다. 제주올레길(425km)보다는 짧지만, 서울둘레길(157km)이나 북한산 둘레길(71.5km)보다는  구간이다. 평화롭고 조용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중교통 접근이 약점이다. 산길이 많지는 않으나 최장코스가 28km 난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은 파주구간 중 6,7,8,9코스, 총 68km 완주기다.



길고, 힘들었다. 걸으며 내내 내가  시작했을까 번뇌했다. 지난 9월에 다녀왔는데 정리를 미루고 있었다. 좋은 기억이 아닌 것도 있어서 정리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초가을 걷기 여행을 겨울에나 올리게 될 것 같아서 맘먹고 간단한 정리를 시작한다.


6코스 출판도시길(16km)

동패지하차도 위의 스탬프 찍는 곳은 좀 이상한 부스 안에 있다. 다른 계절엔 괜찮겠지만 여름엔 저 부스 안은 완전 찜통이다. 게다가 홀로 저 박스 안에 들어갈 때의 묘한 긴장장 같은 게 있다. 뭔가 호러 영화에 나오는 트랩 같은 느낌. 뭔지 알지. 어쩐지 문이 밖에서 잠겨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농담인데 진담이다.

뭔가 으슥하고, 이대로 이 길을 가도 과연 괜찮은 건가 싶은 길을 간다. 저 터널 지날 땐 좀 무서웠다.

하지만! 곧이어 심학산 둘레길과 겹치는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은 좋았다. 적당한 등산 기분으로 걷는 숲길은 푸르거 시원했다  유동인구도 좀 있어서 적막하지 않았다. 주변 주민들이 가볍게 산책 나오는 코스인 듯했다. 등산로 정비도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아아 오르막...

송악산을 오르면 정상 즈음에 낙조전망대를 만난다. 이 날 날씨가 좀 흐려서 사진이 뿌옇다. 실제로 시야도 좀 흐려서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 건 안타까웠다. 날씨가 좋으면 남/북/서쪽 방향의 강 너머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 산을 내려온다. 하산 후에는 자전거길과 겹치는 뙤약볕이 한참을 이어진다. 정말 한참을 이어진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을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솔직히 정말 단조롭고 지루한 길이다.

사람살려.

오 맙소사. 계속 계속 이러하다. 걷는 인간은 몇 시간이 지나도 나 하나뿐이었다. 가끔 자전거 몇 대가 지나갔다. 적막 그 자체. 인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길을 걸을 때만은 인간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원래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이 길을 혼자 걸으며 기뻐하긴 어렵지 않을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가을 냄새였다. 곳곳에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있었고, 강아지풀도 풍성했다.

문제는, 저 코스모스 사진을 찍을 때 일어났다. 어느새 까만 선팅을 한 차 한 대가 내 뒤로 소리 죽여 바짝 다가와서 차를 세운 것.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사진 찍느라 방심해서 차가 온 것도 몰랐네. 하여간 눈치를 채자마자 빠르게 마을 골목길 쪽으로 뛰어 들어갔으나. 내가 자리를 뜨고도 그 한적한 길에 한참을 서 있던 차. 기분 좀 더러웠다. 차도 사람도 너무 없는 길을 다니니 저런 비슷한 일들을 종종 겪게 되었다.

하여간 그 뒤로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걷느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중간에 쉬어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 좀 진이 빠졌다. 이날 경험이 평화누리길에 좀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아무래도 자전거길로는 좋지만 걷기 길로는 이런저런 단점이 있지 않나 싶었다.

아, 등산도 포함되어 있다 보니 16km이지만 힘들었다. 그리고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힘듬과 외로움이 있었다. 길가에 버려진 앉을 수 없는 핑크 의자 하나가 어쩐지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사진 한 장 찍었다. 마지막 도착한 황량하기 그지없는 공원에서 이 날의 코스를 마무리했다.


7코스 헤이리 길(21km)

7코스는 그래도 좀 볼거리가 있는 코스다. 물론 긴 구간에 비해서 충분한 볼거리는 아니다. 그리고 이름은 헤이리 길이지만 헤이리 예술마을은 지나가지 않는다. 혹시 헤이리 마을을 둘러보고 싶다면 7코스 시작 전에 따로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9월 중순이던 이 날은 정말 더웠다. 가을이 시작되었지만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 가을빛은 뜨겁고 부담스러웠다. 한여름에 준하는 수분과 자외선 차단 대책이 필요했다. 선크림 제때 덧바르지 않았더니 집에 가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코스가 시작되면 장단콩 거리다. 장단콩 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모여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로 프로방스 마을이 나타난다.  잘 꾸며진 정원과 함께 카페, 베이커리,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가 즐비하다. 유명한 마늘빵 가게가 있는데, 줄을 서야 할 수도 있고 포장단위가 커서 걷는 중이라면 추천하지는 않는다. 코스는 마을 입구를 지나가는 정도지만, 잠깐 들러서 산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면... 프로방스 마을을 지나고 나면 또다시 허허벌판이기 때문이다. 평화누리길의 시그니쳐, 외롭고 쓸쓸한 아스팔트 길을 나 홀로 쓸쓸히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산길은, 숲길은 외롭지 않다. 하지만 평화누리길의 허허벌판은 어쩐지 외롭다. 게다가 숲길이나 산길은 보호받는 느낌이 있는데 사방에서 나를 볼 수 있는 평지는 어쩐지 긴장을 풀기 어려운 점이 있다.

진짜 걷느라 죽는 줄 알았다. 땡볕의 아스팔트는 10분만 걸어도 지치는데 쉴 데가 없어서 기진맥진.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역시 들꽃들과 익어가는 벼.

그렇게 황량한 길을 걸으면 드디더 종착지인 반구정을 만나게 된다. 드디어 사람들이 있어!!

반구정엔 그늘도 있고, 음료자판기, 화장실, 의자 등등이 있다. 좋은 곳이야... (아스팔트 길에 지친 자는 쉽게 만족한다.) 황희가 87세의 나이로 18년간 재임하던 영의정을 사임하고 관직에서 물러난  갈매기를  삼아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 강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노후를 보내기 좋은 곳이었을  같다.

반구정을 끝으로 7코스가 끝났다. 평화누리길도 반을 넘겼다. 여전히 뜨거운 날들이었다.


8코스 반구정길(13km)


8코스는 좀 만만한가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지. 13km라길래. 근데 (한숨...) 그럴 리가 없지. 평화누리길은 한 코스도 쉽게 끝나지를 않는다.

일단 출발은 가볍게 했다. 이 날도 태양이 뜨겁고 그늘은 없고 난리난리. 사람 살려... 를 외치며 걸었다. 가을볕 정말 무섭더라. 그래도 이 날도 역시 가을 풍경이 좋아서 위로받으며 걸었다.

가을 하늘 참 높고 푸르고 좋더라. 병 주고 약 주는 허허벌판. 이 허허벌판에서 이번엔 무슨 공사로 가야 할 길이 막혀있는 시련을 만났다. 이 날의 시련을 구구절절 쓰면 좀 길다. 자전거 탄 아저씨가 길이 막혀있다고 알려주고 가버렸다. 직접 확인하러 가보았는데, 공사 중 통제로 길이 막혀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이 구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길래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바리케이드를 넘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구석에 선팅한 차 한 대가 길 가운데 서 있는 이상한 구간이 있어서 접근하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너무나 인적이 없는데 저 멀리 길 가운데를 막고 있는 세단 옆을 지나가기는 싫었던 것. 혼자 다니는 것의 불편함을 거듭 느꼈다. 자전거 아저씨도 포기하고 간 것으로 보아 방법이 없겠다 싶어서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우회하면 될 것 같기도 해서 네이버 지도를 확인해가며 멀리 돌아가는 길을 가 보았다. 어떻게 근처로 다시 접근할 방법이 있어 보였다. 여차저차, 결론만 말하면... 공사 중인 시멘트 다리를 넘고, 각종 공사 바리케이드를 무시하고 넘어서 원래 코스를 넘어갈 수 있었다. 평화누리길 다니다가 길 막혀서 곤란했던 거 이게 세 번째인 듯. 그때그때 어떻게 돌아가긴 했는데 정말 당황스럽다.

고생 끝에 드디어 임진나루가 나왔다. 강이 보이니 마음이 좀 안정된다.

강이다 강! 임진강! 그늘에 자리 잡고 한참을 쉬었다. 이제 고지가 코 앞. 조선시대에 지어진 정자라는 화석정에 도착한다.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땀을 식히기 좋은 벤치들이 있다. 매점도 하나 있는데, 전투식량 건빵을 판다. 진달래 맥주, 들기름 등 이런저런 물건도 판다. 구경하면 재미있다. 하지만 건빵은 보기만 해도 목이 메었다.

검색해보니  화석정 현판이 박정희  대통령이  거라는 얘기가 있네.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여기서 1km 정도  걸어가면 종착지인 율곡습지공원이 나온다. 공원이 워낙 넓은데 진입  공사구간이 있어서 스탬프 찍는 곳을 놓칠  있다. 공원을 빠져나오기 전에 스탬프  확인하자. 나는 스탬프 구간을 놓쳐서  번째 방문  다시 공원을 헤매야했다. 이렇게, 8코스도 끝이다.


9코스 율곡길(19km)

이 날도 더웠다. 가을볕 무시하지 말자. 여름 뺨친다. 이 날은 황포돛배 구간에서 역으로 걸었지만, 편의상 정방향으로 정리하였다. 율곡습지공원에 주차할 곳이 많아서 일단 여기에 차를 세웠다.

마침 율곡습지공원에는 코스모스 정원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관광객도 많았다.

공원 안에는 장미도 피어있고, 들꽃도, 이삭도 여전한 시기. 햇살이 뜨겁다고 불평은 했지만, 낙엽도 다 떨어져 가는 시절에 보니 좋을 때였다 싶네.

마을길을 걷다가 만난 고양이. 도로변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를 캐는 사람들. 뙤약볕을 걸으면서 소소한 것들을 보고 잠깐씩 마음을 쉬어갈 수 있다.

평화누리길 파주구간은 편의시설이 정말 없는데, 그 와중에 편의점을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이 곳 장마루 편의점에 들르면 깔끔한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고 시원한 음료와 아이스크림도 있다. 설레임을 샀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달고 맛있었던 기억이다. 근처에 자전거족과 걷기족을 위한 휴식공간도 있으니 쉬어가기 좋다. 그리고 또 허허벌판.

사람 살려.

소도 있다. 내가 소를 쳐다보면 소도 나를 음메.

끝이 있기는 한가요.

아이고 죽겠다. 중간에 데크길도 나오고 산길도 나온다. 밤과 도토리가 곳곳에 떨어져 있는 가을산은 좋았다.

 하지만 산구간은 짧다. 또 땡볕.

여차저차 황포돛배 구간으로 왔는데,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썰렁했다. 코로나 때문인 것도 같고, 평일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노부부가 배를 타러 왔지만 최소인원이 미치지 못해서 배는 뜨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예 돛을 내린 채 정박 중인 황포돛배. 강도 고요하고, 하늘도, 주변도 고요했다. 이 날도 뭐가 많이 썰렁했다. 원래 장남교가 목적지지만 이날은 2km 못 미친 황포돛배 구간에서 마무리하였다. 10코스 시작할 때 장남교에서 시작할 예정.


자, 이제 연천군 구간의 3개 코스가 남았다. 연천군은 워낙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라 더욱 걱정이다. 심지어 마지막 코스는 무려 28km다. 하루에 걷는 게 가능할지 좀 의문이다. 추워진 날씨가 쓸쓸한 길을 더욱 쓸쓸하게 남들 것 같기도 하고. '이걸 내가 왜 시작했지'라는 생각은 매번 들지만 그래도 끝까지 완주하고 말리라.


과연, 과연 올해 내로 완료할 수 있을 것인가! 두근두근 개봉박두. 소심한 마음으로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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