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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Nov 20. 2020

[팔봉산] 8개의 봉과 신선놀음

등산기(강원도 홍천군 홍천 팔봉산)

가을의 끝자락에 팔봉산을 다녀왔다. 전국에 동명의 산이 몇 개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 방문한 곳은 홍천 팔봉산이었다. 높이는 328m에 불과하지만 8개의 봉을 오르는 산이라 재미있는 산이다. 하지만 높이를 보고 오해하면 절대로 안된다. 우리도 사전 정보 없이 갔다가 여러모로 고생했다. 좋았지만 조금 힘들었던 산행이었다.

두산백과에 이 산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낮은 산이지만 바위와 암벽이 많고 능선이 험하여 산행시간이 많이 걸린다. 처음 이 산을 볼 때는 명성에 비해 너무 낮아 놀라고 실제로 산에 올라가면 암릉길이 만만치 않아 다시 한번 놀란다" 정확한 설명이다. 방심했다 놀라는 산이다. 나도 깜짝 놀랐다. 

만만치 않다. 팔봉산은 암산이다. 계속 돌을 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등산초보거나 체력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초반에 체력을 소진해서 중반부터 힘들어질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위 지도에서 보이듯이 중간 하산로가 몇 군데 있다는 것. 안 되겠다 싶으면 2.3봉 하산로로 내려가면 되고, 가장 위험한 8봉만 뛰어넘고 싶다면 7.8봉 하산로 내려오면 된다. 참고로 2020년 11월 현재 5.6봉 하산로는 폐쇄되어 있다. 낙석 위험 등의 사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빠르게 2.3봉 하산로로 빠지자. 

안개 속의 홍천강, 팔봉교

일단 출발지부터 시작해보자. 주차장에 자리가 넉넉하다. 주차장 인근에 식당과 가게도 있으니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요기하고 출발해도 좋을 것 같다. 토요일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을 성수기가 지난 직후라 그런지 조용했다. 날씨도 흐리다고 예보되어 사람이 더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운전하고 가면서 좀 걱정했다. 안개가 심하고 비가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택일이 기가 막혔다. 아침은 강안 개로 가득했고 덕분에 분위기가 아주 멋졌다.

헐벗은 나무도, 바닥을 구르는 단풍잎도 모두 안갯속에서 더 근사했다. 그리고 안개만 근사할 줄 알았으니 웬걸? 금세 도착한 1봉의 구름은 몇 배가 더 멋졌다. 

이것이 1봉의 전경. 구름 많은 날이라 그런지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것이 300미터 정도 산에서 보는 광경이라니. 문자 그대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아무 데나 사진을 들이대도 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으므로 셔터를 계속 누르게 되었다. 그래 봐야 스마트폰 카메라지만, 그래도 구름의 기억을 조금 담아올 수 있었다.

이것이 1봉이었다. 1봉부터 험하다. 1봉으로 바로 올라갈지 우회로로 갈지 선택할 수 있는데, 우회로로 가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보지 않았다. 1봉 정도는 우회하지 말고 올라가는 게 좋겠다. 쉬지 않고 데크와 돌길을 올라오면 금세 도착할 수 있지만 이미 체력이 소진되기 시작한다. 

귀여운 1봉 표지석을 내려오면 바로 2봉이 보인다. 2봉은 코앞이다. 2봉은 우회 안내를 따라 가봤는데, 표지석이 있는 돌 꼭대기는 지나치고 바로 3봉을 향하게 된다. 표지석 인증을 하고 싶다면 우회로로 가지 말자. 돌길을 또 오르고 오르면 3봉에 도착한다.

동행 중 하나가 드디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8봉까지 가야 하나요? 그게 가능할까요?" 일단 가보고 상황 봐서 중도 하산하자 하고 계속 진행했다. 평소에 등산을 좀 하던 사람들에겐 큰 무리는 아니겠으나 익숙하지 않거나 적절한 신발과 장갑 등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산이다.  

등산스틱이 하행길에 도움이 되는데, 난간과 로프 등을 잡아야 하는 상행길엔 오히려 짐이 되기도 한다. 오르락 내리락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오르막에선 등산스틱을 질질 끌고 다녀야 한다. 그래도 무릎을 생각하면 등산스틱은 두 쪽 다 들고 다니는 게 좋았던 것 같다. 특히 힘이 빠진 상황에서 낙엽 깔린 돌길 하산 시엔 주의가 필요하다. 이날은 낙엽이 젖은 구역이 많아서 아찔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3,4봉 사이에 드디어 팔봉산의 재미라는 해산굴(장수굴)이 나온다. 해산굴을 통과하려면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고, 그냥 지나가려면 왼쪽 다리를 건너면 된다. 예전에는 해산굴을 꼭 통과해야 했는데 요즘은 우회도 가능해졌다고 한다. 예전엔 주말에는 해산굴 통과를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조용했다. 하지만 등산 초보도 동행중이고 해서 우리는 우회했다.  

해산굴 루트는 오른쪽의 구멍으로 나와야 한다.

왜 해산굴인지는 통과 구멍을 보면 이해가 된다. 저기서 사람이 기어 나오면 출산이 연상되긴 한다. 하지만 해산굴이라니 뭔가 좀 적나라하다. 재미있어 보여서 다음엔 저 루트로 나와볼까 싶었다.  

해산굴을 지나면 4봉에 도착한다. 그 뒤로 5봉, 6봉, 7봉은 가까운 편이라 척척 도착하게 된다. 물론 암릉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재미도 있고 체력도 소진된다. 이 무렵부터는 하늘이 맑아져서 구름 떼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7봉에서 8봉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하산로를 찾으려 해도 한참을 돌을 잡고 오르내려야 한다. 도중에 홍천강이 마을을 휘감아도는 전경을 감상해도 좋다. 고요한 강, 조용한 산. 여름에 와도 좋겠다 싶다. 

저 멀리 8봉이 보인다. 8봉 가는 길에는 안내 경고판이 서 있다. "8봉은 가장 험하고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니는 코스입니다. 등산에 풍부한 경험과 체력이 없으신 분이나 부녀자 노약자 되시는 분은 현시점에서 하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봐도 만만치 않아 보이긴 하지만, 사실 1~7봉도 모두 만만치 않았던 터라 체력 상태만 괜찮다면 금세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행의 체력 상태를 고려하여 7,8봉 사이에서 하산했다. 하산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하산길이 생각보다 길다. 낙엽길을 집중해서 쉬지 않고 내리막을 내려와야 하는데, 체력을 이미 소진했다면 부상 위험이 있어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초보들은 체력 상태를 잘 고려하고 신발과 장갑, 스틱 등을 잘 준비하자. 

하산 후 내려오면 바로 나지막한 홍천강과 만난다. 이 강을 걸어서 건너면 바로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여름에는 많이들 걸어서 건넌다고. 하지만 이미 추워진 날씨에 그런 대담한 선택은 할 수 없어서 저 멀리 보이는 팔봉교까지 걸어서 건넜다. 이번에 예행연습 제대로 했으니 봄이 오면 다시 올라 8봉까지 가고, 강을 걸어서 건너야지 다짐하며 돌아왔다.

반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암릉 타는 것도 일행 중에 내가 제일 잘했던 듯. 하지만 상체 근력 운동을 따로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다음날에 상체에 근육통이 좀 있었다. 다음에 올 때는 상체도 더 튼튼해져 있겠지! 미리 상상하면서 신나는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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