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제주올레길 완주기 1
2020년 5월, 제주올레길 26개 코스(425km) 완주증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계절마다 방문해서 1년 내로 끝내야지 했으나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덕분에 최대 2년 내로 완주하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했다. 코로나 상황으로 불가피하게 느리게 진행되고 있어 예상보다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한 번씩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제주올레길 완주 목표를 세웠다면 일단 정보수집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기본적인 정보는 인터넷이나 홈페이지에서 찾아봐도 좋지만, 코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는 책을 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처음엔 따로 가이드북을 보지 않았다가 올레여행자센터에서 제주 올레 가이드북을 샀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코스들의 특징을 살펴보며 일정 계획을 세울 때 참고하기 좋다.
그리고 제주올레 패스포트도 미리 구매하자. 2만 원으로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배송비 포함하면 비슷한 가격이다. 꼭 완주 목표가 아니라도 스탬프 찍는 기념 북으로도 나쁘지 않다. 그러기엔 비싸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긴 하다.
그리고 의외로 중요한 것은, 카카오맵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카카오맵이 제주올레일 안내와 제주교통 정보에 최적화되어 있다. 네이버 맵으로 코스를 확인하려다 느꼈던 답답함은 카카오맵이 바로 날려준다. 본사가 제주에 있다 보니 제주관광정보 분야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일까! 하여간 모두가 올레길에는 카카오맵을 추천하는 것이 이유가 있다. 미리미리 핸드폰에 깔자.
정보 수집 다음은 첫째도 계획, 둘째도 계획이다. 산술적으로 한 달을 매일 같이 걸으면 완주할 수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고, 내더라도 쉬지 않고 매일 걸으면 어지간한 체력의 사람도 기진맥진하게 된다. 오락가락 제주 날씨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스스로의 체력 상태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마냥 걷는 일정을 짜서는 매너리즘에 빠져서 아무리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안 들어오는 상태에 이르게 되기도 할 것. 물론 한 번에 완주하는 분들도 있으신 것 같은데, 주로 은퇴하셨거나 뭔가 평소에 등산 등 다양한 운동을 해 본 분이신 것 같다. 나는 걷는 거니까 쉬울 줄 알았지. 그래서 평소에 운동 거의 안 하던 시절에 무작정 완주 계획을 세웠다. 결국 며칠 만에 주제 파악을 했고, 날씨 리스크를 분산하고 계절을 즐기기 위해서 장기 계획으로 수립했다.
혼자 다닐 생각 하니 숙소가 좀 고민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각 둘레길 코스의 출발과 도착지점의 접근 용이성이었다. 어차피 해 뜨면 둘레길을 걷고 밤에는 잠만 자는 숙소니 숙소가 크게 좋을 필요는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둘레길 초반 코스의 3군데 숙소를 이용해보았다. 각각 장단점이 있었지만 참고가 될까 하여 남기는 기록. 추후 중반부와 후반부의 숙소도 정리해서 소개해둘까 한다.
1. 알파캠프
시작이 좀 막막하던 차에 Frip(취미생활 앱)에서 알파캠프의 3박 4일 프로그램을 발견해서 신청했다. 알파캠프는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시작점인 광치기 해변 인근에 있다. 1코스부터 출발하려면 매력적인 위치. 알파캠프는 숙소에서 매일 다른 올레길을 향해 출발하는 교통편이 제공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식사, 숙소, 교통편이 포함되어 있다 보니 가격대는 좀 있는 편. 1개월간 완주하는 코스도 있고 1주일, 또는 Frip을 통한 단기 일정도 있다.
호텔급으로 관리된 시설은 아니지만, 비교적 관리가 잘 된 편이었다. 일단 방이 넓었다. 개인 공간이 넓다는 건 휴식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다. 볕도 잘 들고 통풍도 괜찮은 숙소였다. 대신 시트를 갈아준다던가 청소를 해주는 식의 룸서비스는 없다. 빨래도 가능하고 몇몇 청소도구와 생활 편의 용품들을 대여해주고 있었다. 근처에 다이소도 있고 쿠팡 등에서 택배를 주문해서 받을 수도 있어서 장기체류에 큰 불편은 없을 듯했다.
오전에 그날의 코스 시작점에 내려준 다음, 오후에 다시 태워서 숙소로 돌아오는 시스템. 숙소에서 먼 코스를 가려면 이동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단점일 듯. 주요한 단점은 역시.. 좀 비싸다는 것이다. 편의성이 좋고 가격대가 있다 보니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좀 있는 편이다. 은퇴한 연령대의 사람들 모녀, 부자 등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최소 신청 기간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고.
개인적으로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혼자인 게 편한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사람들과 조금은 부대껴야 하는 것이 잘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식사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아침과 저녁을 주고, 점심은 행동식이라고 이동 중 간식을 챙겨준다. 보통 배식형 한식 식사가 제공된다. 별 거 없는 거 같은데, 깜짝 놀라게 맛있었다. 아니 이거 왜 아무거나 다 맛있지?? 하는 의문을 느끼며 정신없이 퍼먹었다. 이건 숙소에서 따로 신경을 썼다기보다는 요리 담당 아주머니 셰프님! 의 솜씨가 아닐까 싶다.
2. 플레이스 캠프
알파 캠프와 마찬가지로 1코스 종점이자 2코스 시작점인 광치기 해변 인근에 홀로 여행족에 적합한 숙소가 하나 더 있다. 플레이스 캠프. 여기도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지만 초반 코스 접근이 워낙 좋은 곳이라 시작점으로 삼기에 좋을 것 같다. 자유도와 가성비 측면에서는 알파캠프보다 낫다. 콤팩트한 1인실은 특별한 불편이 없다. 미세하게 욕실 냄새가 거슬리긴 하였으나 방과 개인의 민감도에 따라 다를 듯하다.
플레이스 캠프의 최대의 장점은 숙소 안에서 먹을 것과 놀 것이 상당히 해결된다는 점. 올레길 걷는 것 외에 따로 일정이 없다면 캠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눈여겨봐도 괜찮다. 꽤 괜찮은 커피를 파는 커피집(도렐)과 치킨 안주가 맛있는 맥주집(스피닝 울프), 그리고 샤오쯔 등 몇몇 맛집이 숙소 내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도렐에서 빵과 커피를 사서 먹고 올레길을 걷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밤에 치킨에 맥주 한 잔 하면 딱 좋은 코스. 물론, 숙소에서 절약한 비용을 먹느라고 쓰는 부작용은 있었다.
번쩍거리는 세탁실도 있다. 세탁과 건조까지 하면 9천 원이 들어서 싸지는 않다. 세탁실 옆에 코인 노래방이 있어서 노래 부르며 빨래를 기다려도 좋겠다. 하지만 시대가 코로나 시대인지라 나는 도전하지 않았다.
3. 올레스테이
올레스테이야말로 초반 코스 올레길 여행자 숙소로는 정석적이다. 일단 싸고, 위치가 너무 좋다. 무려 3개 코스의 출발/도착지점이다. 6코스의 도착지점이자, 7코스와 7-1코스의 출발지점이다. 여기서 숙박하면 대중교통 이용 없이 3개 코스를 출발할 수 있다는 얘기. 게다가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가 같이 있어서 올레길 여행을 여기서 시작하면 정보수집과 심리적 안정(?)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가 사실상 게스트하우스 스타일이라는 것. 1인실도 있지만 보통 예약이 빨리 마감되고 4인실이 기본이다. 나는 1인실에 묵어봤는데, 특별한 불편은 없었지만 역시 너무 캡슐호텔 수준의 사이즈라 너무 좁았다. 코로나 시대인데 공용공간을 다수 사용해야 하는 점도 쾌적한 휴식을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샤워실이 아래층에 있어서 이동하는 불편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장점이 많다. 옥상도 있고, 빨래도 용이하며, 1층에서 따뜻한 조식(별도 지불)이 제공되고, 밤에는 제주 수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판다. 올레길 여행자 위주로 운영되어 숙소 내에서 음주가 금지되어 있고 분위기가 차분하다. 근처에 조식부터 제공하는 맛집도 여럿 있고 하나로마트도 코앞이라 원하는 물품과 간식을 조달하기 용이하다. 아, 그리고 샤워실이 넓고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고 개별 부스가 많아서 편하게 쓸 수 있는 데다 기본으로 넉넉히 제공되는 샴푸, 린스, 바디샤워 모두 질과 향이 좋다. 딱 여행자 맞춤 숙소다.
올레스테이가 예약이 꽉 차 버렸다면 그 바로 옆에 백패커스 홈이라는 곳도 있다. 이곳은 가보지는 않았으나 올레스테이가 가진 입지적 장점을 모두 갖고 있을 테니 고려해도 좋을 것 같다.
숙소를 좀 업그레이드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 젊고 배낭여행자 기분으로 다닐 날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되도록 이런저런 숙소를 이용해보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현재, 7개의 코스를 완보했고, 3개의 숙소를 방문했다. 아직 19개의 코스가 남았다. 부디 내년엔 백신이 좀 나와서 제주 좀 자주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첫 번째 글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