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스크바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크렘린궁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엄마가 십여 년 전 내게 한 말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하자 엄마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었다.
"너는 마치 크레믈린(크렘린)궁 같구나."
"크레믈린궁 같은 게 뭐예요?"라고 반문하자 엄마는 넌 왜 그런 것도 모르니, 하는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그런 게 있다."
나는 검색을 해서 답을 찾았던 것 같다. 냉전시대 구소련의 크렘린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외부에선 도통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크렘린궁의 공산당 지도자들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두고 "크렘린궁 같은 사람"이라는 비유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교복을 빨아 입혔던 자식이 성인이 되고, 속을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엄마는 내게 그 비유를 썼다. 난 내 안에 러시아 궁전을 품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가끔 크렘린궁을 떠올리곤 했다.
크렘린궁은 황제의 궁이자 혁명의 전당, 공산당의 궁이기도 했다. 이 도시의 심장 같은 곳이면서도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꽉 막힌 곳이기도 했다. 크렘린궁은 대부분 실내 촬영 금지였고, 넓디넓은 궁전을 돌다 지쳐 전체를 조망하거나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덕분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 거의 없다.
크렘린궁은 생각보다 더 넓다. 성수기에는 매표소에 줄을 서는 것에만 한 시간이 훌쩍 흘러갈 수 있으니 궁을 천천히 둘러보고자 한다면 하루 정도를 할애하야 할 것 같다. 특히 하루 4차례만 입장할 수 있는 무기고의 보물을 확인하려면 별도의 티켓을 사기 위한 줄을 또 서야 하니 서두르는 것이 좋다.
입장권을 사면 뽀족한 지붕을 얹은 트로이츠카야 망루를 통해서 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벽은 2킬로에 달하고 망루는 총 19개에 달한다고 한다. 망루는 크기가 서로 다르고 각각 특징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성벽 안에는 현대적 건축물과 러시아 사원이 어우러져있다. 15세기에 지어진 건물부터 1900년대 중반에 지어진 건물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위화감은 없다.
크램린궁 내부에는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현대식 회색 건물이 하나 있다. '크렘린 대회 궁전'이라고 한다. 칼로 자른 듯이 반듯한 건물은 공산당 전당대회 등으로 사용되다 최근에는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하나의 성벽 안에 역사와 정치와 종교가 공존하고 제정 시대와 공산국가 시대가 서로를 뽐낸다.
관광객 전시를 위해 매끈히 단장해서 공개한 것 만이 아니라 현재도 집무실과 행사 등 실질적 기능한 하는 궁도 같이 있다. 우리가 유럽의 궁전에 기대하는 것과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인상적인 궁이라 아니할 수 없다.
1400년대에 건축된 우스펜스키 사원은 벽화로 이루어진 크고 화려한 문을 갖고 있다. 크렘린 성에서 이 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기둥의 양파 모양 장식과 입체적 장식, 어딘지 불화를 떠오르게 하는 종교화. 러시아 사원의 특징적 장면을 모아놓은 듯한 문이었다.
납작한 직사각형 형태를 가진 '이반 대제의 벨타워'도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300개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상당한 높이의 건물이니, 성 안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정신없이 둘러보다가 더 다니다가는 탈진하겠다 싶어 궁을 트로이츠카야 망루를 통과해서 출구를 향했다. 이 날은 길이 너무 막혀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닌지라 체력 조절에 실패했던날이다. 황제는 이 넓은 궁을 걸어다니지는 않았겠지, 나도 마차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성을 나서는데 내 평생 다시 이 궁을 올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의 너는 마치 크레물린성 같구나, 라는 얘기가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크렘림궁은 언젠가 한 번 가고 싶었던 곳에서 반드시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성곽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