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 여행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 자체로 매력이 넘치는 도시지만 일정이 넉넉하다면 근교 여행지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호박방으로 유명한 예카테리나궁이라던가 파블롭스크 궁이 있는 푸시킨시(황제 마을), 그리고 여름궁전이 있는 뻬쩨르고프가 대표적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즈넉한 호수가 있는 가치나성까지. 모두 당일치기가 가능한 거리에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뻬제르고프까지는 육로로 이동하는 방법과 배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배가 더 비싸고 더 빠르다. 몇 만 원 아낀다고 고생하지 말고 배편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여름철 미니 버스로 오랜 시간을 달리는 건 쉽지 않고, 배를 타고 선착장에서 들어가는 동선이 주는 아름다움과 효율성도 있다. 에르미타쥐 궁의 뒤편에 선착장이 있는데 미리 표를 사두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의 표를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왕복표를 살 경우에는 돌아오는 배편의 시간이 결정된다.
여름궁전은 베르사유궁과 같은 프랑스 스타일을 추구한 여름용 별장 궁전이라고 한다. 표트르 대제가 직접 정원 구성 등을 설계했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심에서 봤던 엄격하고 절도 있는 직선과 대칭과는 다른, 대중적인 사랑스러움을 가진 건축물이다. 궁전은 화려하고 여성적이지만 핀란드만이 있는 바다를 향해 호쾌한 직선이 궁의 권위를 보여준다. 궁전 앞 한가운데에 서서 대분수에서 시작되는 직선을 바라보면 알 수 없는 권력욕이 솟아난다. :-)
여름궁전은 윗 공원과 아랫 공원, 그리고 대궁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랫 정원이 많은 분수로 이루어진 곳이다. 러시아인들의 분수 사랑은 이 곳에서도 예외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분수가 풍요로움이나 휴식의 상징인 것 같다. 여름궁전은 분수의, 분수를 위한, 분수에 의한 성과도 같다. 겨울에는 분수가 가동되지 않고 입장료도 없다는 모양이다. 여름에만 입장료를 받는 여름궁전. 겨울에는 쓸쓸해 보이겠지만 눈에 덮인 궁전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름궁전에게 여름은 성수기 중의 성수기인지라 관광객이 굉장히 많다. 사방에서 뿜어 대는 분수 사이로 즐거워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문제는 이 많은 관광객들 덕분에 성 내부에 들어가는 줄이 하염없이 길다는 것이다. 이 날은 유난히 해가 뜨거웠고 나는 배가 고파왔기에 줄을 서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오후 배편으로 들어와서 시간이 크게 넉넉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다.
정원이 워낙 아름답고 숲으로 이루어진 산책로가 있는 데다, 선착장 인근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을 파는 카페테리아도 있다. 뻘뻘 땀 흘리다 그 카페테리아에서 사 먹은, 사워크림 한 스푼을 넣은 비트 수프 맛은 일품이었다. 선착장 인근에 작은 백사장 해변이 있어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도 좋다. 정원을 거닐고 분수를 즐기고, 먹고 마시다 해안가에 앉아 있노라면 황제가 부럽지 않다.
여름궁전을 보러 간 날은 러시아 도착 후 처음으로 혼자 여행한 날이었다.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토끼섬을 도보로 여행하고 점심 경 뻬쩨르고프로 이동하는 강행군이었다. 영어 표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더듬더듬 러시아어 알파벳을 그림 맞추기 하듯 맞춰가며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발가락에 물집까지 잡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폐인처럼 잠들었다. 피곤하고, 뿌듯한 날이었다.
그 날 돌아와서 친구를 다시 만나 마신 맥주 한 잔은 달고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