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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Jun 02. 2020

[마카오] 작지만 넓은, 옅고 팽창하는.

2018 마카오

우연히 2018년 3월 2일, 마카오에서 쓴 일기를 발견했다. 발견한 김에 마카오 사진 몇 장과 함께 정리하기로 했다.

여행은 몇 개월만 지나도 거의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감정으로 걸었는지, 기뻤는지, 슬펐는지. 이 일기도 불과 2년 전인데 남의 얘기처럼 읽게 된다. 앞으론 다만 몇 줄이라도 그때그때 기록해두자고 새삼다짐하게 된다. 그러면 또 몇 해가 지나 남의 얘기처럼 읽을 수 있는 내 얘기가 늘어나고 좋지 않은가. 


[2018년 3월 2일] 


23시간째 이동 중이다. 화요일 밤에 누워본 게 마지막이다. 

휴가를 아끼기 위해서 퇴근 후 새벽 2시에 운전해서 공항에 장기주차를 했다. 조용하고 어두운 주차장은 차로 가득했고 공항 안도 새벽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붐볐다. 그렇게 새벽 비행기로 홍콩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페리를 타고 마카오로 이동했다. 짐을 들고 매고 택시 및 각종 버스 총 5회 탑승하며 이동했더니, 하루에 2만보를 넘게 걸았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가 마카오를 작은 곳이라 했나. 나는 걷다 죽을 뻔했다. 종일 걷는 기분이다. 관광지는 관광지대로 많이 걸어야 했고, 호텔 로비에서 내 방까지도 넉넉히 15분쯤은 걸었다. 걷는 사이에 광활한 카지노를 지나게 된다. 의도된 동선이었겠지?

서비스 데스크에 전화로 뭘 좀 부탁했더니 “바로 출발할 텐데요 10~15분 뒤에 도착합니다”라고. 직원들이 불친절한 건 아닌데 모두 내게 신경 쓰기에는 바빠 보였고, 모든 것이 카지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평일의 마카오 호텔은 저렴하다. 라스베이거스의 숙박비가 저렴한 것과 비슷한 원리일 것이다. 진짜 돈이 되는 곳은 숙박 비즈니스는 아닌 것이다. 내가 묵은 곳은 쉐라톤 그랜드 호텔이었는데, 단일 호텔의 객실수가 4천 개라고 했던 것 같다. 연결된 쇼핑몰 샵도 2천 개쯤. 이런 카지노&쇼핑형 리조트 호텔이 수십 개가 마카오라는 도시를 이루고 있다.

더 무서운 건 수십 개의 크레인 타워가 사방에서 뭔가 리조트를 지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추가 개발이 이뤄진다는 건 현재 있는 저 많은 카지노와 쇼핑몰이 끝없이 손님을 채우고 수입을 낸다는 거 아닌가. 하긴 중국과 홍콩에서 주말에 밀려드는 듯했다. 신흥산업도시인 신천에서 주말에 넘어오는 규모도 상당하다고. 홍콩의 경제가치를 넘어서고 있다는 신천도 마카오를 키우는 데 한 몫하지 않을까.

몇 해 전 갔던 라스베이거스는 무섭지는 않았다. 마카오가 생각보다 컸다면 라스베이거스 중심부는 생각보단 작았다. 엄청 클 것이라 상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라스베이거스는 “미제 자본주의 진면목을 보여주갔어!”라는 느낌이 있다. 지저분한 성매매 광고 책자와 전단지가 하루 종일 거리에 구르고 헐벗은 남녀로 도배한 광고차량이 대낮부터 거리를 누빈다.

하지만 화려한 메인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서 차를 몰고 나가면 알코올에 찌든 사람들, 파산해서 주변을 떠도는 이들을 위한 싸구려 도박장과 모텔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아한 글로벌 콘퍼런스와 화려한 공연, 유럽 콤플렉스 가득한 건축물을 넘어가면 도박, 약, 알코올, 섹스의 뒷골목이 공존하는 쏘 아메리카. 사막 위의 신기루 같은 멋진 신세계. 라스베이거스의 기억이다. 

반면 마카오는 주요 기능과 구성(호텔&공연&쇼핑&카지노)이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듯하면서 절제되고 금욕적인 느낌이다. 뒷 세계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놈의 성매매 광고가 눈에 안 보이고 술이나 다른 것에 절어 보이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온갖 배경과 목적의 인종이 마구 섞인 라스베이거스와는 달리 마카오는 압도적으로 동양인 관광객이 많다. 번쩍이는 야경 조명조차 각이 맞는다. 대단히 친절하지도 않고 특별히 불친절하지도 않다.

호텔 순환버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초라한 행색이지만 눈빛이 살아있는 할머니 하나가 조용히 하차한다. 미끄러지듯 ‘꿈의 도시(시티 오브 드림즈)’ 카지노 정문으로 들어가신다. 저 할머니는 하루는 어떨까 궁금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다가 오후가 되면 나들이 가듯 꿈의 도시로 입장하실까 잠깐 생각했다. (3월 2일 일기의 끝)

일기는 저기서 끝났다.

저 글을 쓰고 난 이후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봤다. 숙소에 있던 카지노에 들렀던 것 같다. 카지노도 동양적이랄까. 조용하고 차분했다. 기계음이 신나게 요란하게 울려 퍼졌지만 그조차도 차분한 기분이었다. 물론 도박 중인 사람들 특유의 하이한 눈빛은 그곳에도 있었고 그건 인종을 가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음식 얘기를 좀 해보자면, 특별히 입맛에 맞는 건 없었다. 허름한 가게에서 먹은 분식 같은 게 오히려 나았던 기억이고, 망고나 우유로 만든 디저트는 모두 좋았다. 역시 더운 나라는 달콤한 것을 잘한다. 

찾아보면 3월 3일과 그 이후의 일기도 있을 것 같지만, 크게 인상적인 사건은 없었을 거다. 슬롯머신이 터져서 출근을 안 하기로 했다던가 정도의 사건은 없었던 게 분명하다. 호텔 지역 순환버스를 타고 호텔도 구경 다니고 시내 관광도 했던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 마카오는 어떤 도시였나 돌아본다. 어딘지 모르게 옅고 팽창하는 공간이었다. 다시 가게 된다면, 어떻게 다시 그 공간을 즐길지 미리 상상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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