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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Jun 19. 2020

물, 꽃, 벌레와 함께, 봉산과 앵봉산

[서울 둘레길 완주기 6] 7코스 봉산 앵봉산 코스

서울 둘레길 7코스는 봉산, 앵봉산 코스로 2개의 세부코스로 나눠져 있다. 가양역에서 출발, 구파발역에서 끝난다. 2코스에 난이도가 좀 있다 해서 두 번에 나눠 걸였다. 7-1코스는 그냥 산책길로 좋은 길, 7-2는 사실상 등산에 가까워서 두 코스의 난이도 차가 크다. 두 코스 모두 다양한 꽃과 풀, 수종을 볼 수 있는 생태학습용 코스다.



6월 10일. 7-1코스 가양역-증산역 구간


7-1코스는 쉽고 평지인 데다, 볼거리가 많아서 누구한테나 추천할만한 구간이다. 다리도 건너고 생태공원도 지나고, 문화비축기지 구경도 하고 불광천도 거닌다. 두 시간 반이면 걸을 수 있는 거리라서 메타세쿼이아 길 벤치 같은 곳에서 도시락 싸가서 좀 쉬어도 좋겠다. 하늘공원 인근이 여러모로 좋은 공간이 많아서, 주말엔 데이트족과 가족단위 소풍객들로 가득 찰 것 같다. 사람 없는 봄날 주중에 걸었으니 그저 좋았다.

가양역 3번 출구로 나가면 가양대교 초입에서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스탬프를 찍으면 바로 가양대교를 건너러 가게 된다. 가양대교가 뷰는 좋은데 도보길이 너무 좁다. 자전거를 끌고 가라고 되어 있지만, 자전거를 탄 채 쌩쌩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선수급 차림의 자전거 라이더들을 피하느라 맘 편히 못 걷는 길. 차량도 쌩쌩 달리니 길을 충분히 즐기기는 쉽지 않다.

대교를 건너는데,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겠으나 등산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일군의 무리가 나를 앞지르며 몇 차례 지나갔다. 목적지가 어딜까. 가양대교 인근이 뭔가 아웃도어의 메카라도 되는 것인가 생각하며 걸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시야가 시원하다. 한강 중에서도 '다리 밀도'가 낮은 지역이라 그런가, 한강이 시원하게 한눈에 보인다. 아파트도 드문드문, 높은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의 끄트머리에 왔구나 싶은 광경이다. 마침 다리를 건널 때 구름이 끼어서 맑아 보이진 않는다만 시원하다. 다리를 건너면 난지 생태습지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둘레길은 이 습지원을 그냥 지나게 되는데, 시간이 넉넉하니까 습지 구경을 하고 갔다.

생태습지원을 나와서 걷는데 엄청난 오르막으로 안내해서 설마설마하고 놀랐다. 하지만 그 계단은 노을공원으로 가는 거였고, 둘레길은 거기서 메타세쿼이아 길로 빠진다. 뭔가 인생에 어려움이 있을 때 생각을 잊기 위해 한 번 올라가야지 싶었던 높고 높은 계단이었다.

월드컵 경기장 인근 공원들은 계절별로 와 보면 좋을 것 같다. 생태습지원도 고즈넉하고 인근의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하늘공원, 난지캠핑장, 문화비축기지, 모두 특색 있고 좋다. 서울 둘레길은 맛보기처럼 이 일대 공원들의 외곽을 지나어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 동네의 하이라이트는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나무도 시원시원하게 뻗어있고, 길도 시원시원하고, 사람이 없어서 더욱 좋았던 길. 공간이 직선으로 깔끔하게 분할되어 있는 광경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단아해. 차분해. 마침 사람도 길쭉하게 지나가길래 한 장 찍었다.

혼자 사진 찍는데 푸근한 표정의 장년팀이 지나다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감사히 사양했다. 내가 둘레길 다니면서 찍는 사진에  심할 정도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일부러 사람을 피해서 찍는 건 아닌데, 사람은 워낙 평소에 많이 보니까 굳이 사람이 들어간 사진을 찍고 싶어 하지 않는 듯. 이 길 끝에 도시락을 먹을만한 테이블들이 있는 지역도 나온다. 자리만 있다면 하루 종일도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언제 날 잡아 나와야지 생각했다.

월드컵 공원부지를 빠져나오면 문화비축기지라는 곳이 나온다. 이번에 처음 들어본 곳이다. 좀 찾아보니,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공원화 한 곳이라고 한다. 원래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이 기획되는 곳으로 보이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대부분 휴관이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사람이 없었고, 몇몇 젊은이들이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문화비축기지 홈페이지

시계방향으로 T1, T2, T3, T4, T5라는 이름을 단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석유비축기지 시절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들은 말끔하게 정비된 주변 환경과 비교되며 더욱 기묘한 느낌을 준다. 멸망한 제국의 역사유적지를 보는 것 같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달까? 주차장이 넉넉한 것 같지 않고, 주변에 다른 편의시설이 많지 않아 접근성면에서 어떨지 모르겠다. 주변 산책하는 겸 들르기엔 좋지만, 젊은 친구들이나 창작자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뭔가를 도모하기엔 아직 애매해 보이는 면이 있다. 물론, 코로나 시즌에 얼핏 봐서 드는 생각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또 와봐야지 다짐했다.

문화비축기지를 빠져나와 월드컵 경기장 광장을 가로질러 불광천 방향으로 올라간다. 증산역 인근 증산 체육공원에서 스탬프를 찍으면 7-1코스가 끝난다. 이날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스탬프 지점까지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종일 흐리더니 결국 비가 내린 것. 그래도 코스가 거의 끝난 때라서 다행이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일기예보를 보자고 다짐했다.  


6월 16일. 7-2코스 앵봉산-봉산 구간


7-2구간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비교적 난이도가 있다고 하고, 내가 워낙 오르막에 취약하다 보니 컨디션 좋은 날 출발하려고 남겨두었다. 그리고 어느 날씨 좋은 날, 짐을 챙겨서 나왔다.

           

7-2코스는 구파발역에서 시작해서 역방향으로 내려왔다. 앞서 언급했지만, 서울 둘레길은 정방향 역방향 구분 없이 전진하는 방향에서 보이는 화살표를 따라가면 되어서 방향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구파발역 내리자마자 깜짝 놀랐다. 구파발역은 한 20년 만에 와봤다. 은평 뉴타운 들어서고 처음 온 것. 엊그제 재개발 얘기 들었던 것 같은데, 일대가 천지개벽한 느낌이랄까 신도시가 하나 생겨있었다. 어리바리 구경하다가 둘레길 표시를 발견하고 땡볕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은평 둘레길 표지가 서울 둘레길과 비슷하니 헷갈리지 말고 잘 따라가자. 결국 다 만나게 되긴 하는데, 서울 둘레길 스탬프 지점을 놓칠 수 있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 등산이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얘기해주면서 오르막을 올랐다. 고도가 높은 건 아닌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체력을 잡아먹는다. 나중에 확인한 스마트 워치에 따르면 이날 하루 거의 100층 가까운 높이를 올랐다고 한다. 그냥 계단을 100층 오르라고 하면 절대 못했을 텐데,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으니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

내가 해냈어. 해냈다고. 저 자리에 앉아서 한참 쉬었다. 테이블 위의 커피도 내 것 맞다. 구파발 역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큰 거 하나 사서, 무슨 링거 맞듯이 홀짝홀짝 마시면서 올라갔다. 진작에 다 마셨는데 산에 쓰레기통이 있을 리 없으니 그냥 손에 들고 올라간 것.  

이제 그만 나오겠지 싶은데 또 오르막, 또 오르막. 무릎 안 좋은 사람들은 참고하자. 위 사진이 서오릉고개 녹지 연결교이고, 저 다리만 건너면 한 숨 돌릴 것 같지만 아니다. 산너머 산이라고 앵봉산 올랐다가 서오릉 지역을 지나면 이제 다시 봉산을 올라야 한다. 봉산. 멋지긴 한데 또 산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참고로, 둘레길 코스가 일부 수정된 것 같다. 앵봉산 내려오는 길에 내가 쓰던 GPS앱의 코스북이 코스 이탈 안내음을 울린다. 둘레길 표시대로 가고 있는데 이탈하고 있다고 해서 나중에 루트를 보니 이유는 모르겠으나 경로가 갈라졌다가 다시 만난다. 어느 길로 가건 결국 만나게 되니까 별 문제는 아니지만, 공사 등이 있을 수 있으니 둘레길 표지 위주로 따라가자.  

봉산. 왜 봉산인가 했는데 봉수대가 있다. 고양시도 보이고 은평구도 보이는 것 같다.(사실 잘 모름) 봉수대가 있을만하다. 산 자체가 높은 건 아니지만 주변 지역을 조망하기 좋은 포인트에 있는 산이다. 봉수대에서 한 숨 돌리면 뭔가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 큰일이 아니라도 나한텐 큰 일이니까 충분히 흐뭇해했다.

내려오는 길에, 이건 은평구가 신경 좀 썼구나 싶은 잘 정비된 길들이 나온다. 나중에 찾아보니, 과거 봉산 산책로 훼손이 심해서 재건에 신경을 좀 썼다는 얘기가 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 주겠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길이다. 내려오는 길에 또 사방을 돌아볼 수 있는 포인트들이 나온다. 타박타박 내려오면 이제 오늘의 마지막 스탬프.

정말 보람찼다. 초기에 왔으면 죽네사네 했겠지만, 난 이제 강해졌다고! 체력은 많이 좋아져서 크게 몸이 힘들진 않았는데, 역시 평소 오르지 않던 오르막을 많이 올라서 다음날 종아리가 좀 많이 당겼다. 앞으로 3코스(1, 2, 8코스) 남았다. 만만한 코스는 하나도 없지만 잘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체 근력이 시작 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여기서부터는 부록. 7코스는 다른 코스에 비해서 정말 등산 같았고, 생태학습 코스 같았다. 수종이 다양하다는 것을 무지한 내 눈에도 보였다. 꽃 사진도 몇 장 찍어왔다. 나리꽃 빛깔이 곱다. 가운데 사진은 패랭이 같은데, 이런 색 조합이라니 경쾌하다. 장난감 같기도 하고. 곳곳에 산딸기도 보인다. 약을 치지 않는 상태로 보여서 맛이나 볼까 했지만, 혼자 다닐 때는 뭐든 안 주워 먹기로 했으므로 안 먹었다. 혼자 다니니까 역시, 좀 더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각종 벌레가 많았다. 특히 막대 벌레가 신기할 정도로 많았지. 다른 데서는 모기 물린 기억이 없는데, 여기서는 엉덩이에 산모기 두 방 물려서 계속 긁으면서 다녔다. 품위고 뭐고 너무 간지러웠다. 강한 놈들이었다. 송충이 같은 것들이 많은데 하나같이 화려하고 예뻤다. 하지만 너무 많고, 사방에서 튀어나오고, 느리기 때문에 등산화에 로드킬 당한 송충이도 종종 보였다. RIP. 가운데 사진은 막대 벌레라는 것 같다. 한 마리가 있가운데 사진 안에 막대 벌레는 총 4마리다. 두 마리는 격렬한 전투 중이다.

스탬프 찍고 내려오니 동네가 조용했다. 그리고 그 조용한 동네에 팔자 좋은 고양이가 볕 쬐며 잠들어있었다. 평화로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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