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완주기 7] 2코스 용마 아차산 코스
서울 둘레길 2코스는 난이도도 크게 높지 않고 거리도 짧아서 하루에 걸었다. 용마산과 아차산 모두 미끄러운 돌산이라 등산화를 신고 가는 것이 좋다. 2코스 초입은 공사 중인 구간이 있다.
6월 18일. 2-1 코스
둘레길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길을 고르라면 한참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각의 길에 다 매력이 있다. 난이도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다 장점이라 하나를 고르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추천하고 싶지 않은 길을 고르는 건 쉽다. 바로 이 곳! 2-1코스다. 둘레길 전체를 걷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2-1 코스는 스킵하자. 사방이 공사판이다. 최소한 2020년에는 계속 이 상태일 것이고 그 이후에도 일대가 계속 아파트 등의 건설로 공사판일 것으로 보인다. 아니야. 여기는 아니야. 2-1 앞부분은 스킵하시고 최소한 망우묘지공원쯤에서 시작해도 인생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화랑대역에서 내려서 스탬프를 찍고 둘레길을 따라가면 다소 쓸쓸한 묵동천 산책길이 시작된다. 다른 서울의 하천들과 너무 비교되게 자연 그대로이다. 들꽃 조차 심어져있지 않아 방치된 분위기다. 그나마도 곳곳에 보수공사 중이라서 걷는 마음이 불편하다.
게다가 길도 한 번 잃었다. 뭔가 꼬부랑 거리는 길을 한 번 놓쳤는데 철길을 건너갈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없던 길도 만들어 보려다가, 위의 사진과 같은 족적을 남기고 포기했다. 가운데 사진 같은 곳을 엉금엉금 지나, 오른쪽 사진 같은 수풀을 헤쳐나가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니 겁도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다시 길로 나오는데, 공사일 하시던 분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나도 내가 황당하다. 남들은 그러지 말자. 저 진입점 놓치더라도 직진하다보면 결국 합류점 나오니까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자. 좀 돌아가도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니까.
황량한 신내역 전후로는 한동안은 공사판이다. 나 말고도 여자 한 분이 둘레길 걷는 중인 것으로 보였다. 길이 없으니 황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코스를 달려가셨다. 나는 그럴 체력도 없어 땡볕에서 공사판과 도로 사이를 휘적휘적 걸었다. 신내역 전후로 거거의 한 시간 동안 만난 사람의 9할은 공사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혼자 걷는 걸 좋아하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행인도 동지도 없는 아스팔트 위에 흙먼지만 날린다.
망우 묘지공원으로 접어들었더니 사방에 엄청 큰 까마귀들이 난다. 그래, 아무도 없는 것보다야 까마귀라도 있으나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뭔가 공사판에 기가 빨린 나머지 벤치를 찾아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을 먹으며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다 보니 마음이 좀 풀렸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둘레길 걷기 시작하던 5월 말은 그렇게 봄 같더니, 어느새 완연한 여름이다. 꽃향기는 많이 가셨고 녹음이 푸르르다. 숲에 물이 차올라서 산을 채운 것 같았다. 그렇게 평탄한 산책길을 오르다 보니 드디어 용마산 깔딱 고개가 나타났다.
6월 18일. 2-1 코스
깔딱 고개 초입이 중간 스탬프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부터가 2-2코스. 570계단이 연속으로 있다고 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다. 물론 힘들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면 괜찮다. 이미 둘레길 6개를 정복한 나야 나. 중간중간 쉬어가는 곳도 있고, 금방 오른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길긴 길다. 사람 살려. 끝이 안 날 것 같은 기분이긴 한데.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서울은 또 좋다. 이 날 날씨가 흐려 뷰가 좋지 않았지만 멀리까지 보인다. 고개를 올라온 보람을 느낀다.
길을 따라 가면 용마산 정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는 헬기 착륙장이 있다. 몇 백 미터를 더 걸으면 갈 수 있는데 이 날 운동화를 신고 올라온 탓에 정상은 스킵했다. 돌길이고 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등산화와 등산스틱이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엉덩방아 한 번 찍으면 바로 119 불러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마침 이 즈음에 경고가 시작돼서 아차산까지 위치 안내가 많다. 119를 부를 때 위치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까지. 한두 명 미끄러진 분위기가 아니다. 내가 통계를 추가해줄 필요는 없지!
산세가 둥근데 매섭고 아름답다. 하지만 발을 잘 디뎌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보다 길이 잘 표시되어있지 않은 곳들도 있다. 이거 길 맞아? 싶은데 보면 둘레길 리본이 달려있고 그렇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모두 조심조심 잘 다녀야 한다. 둘레길이긴 하지만 주변 지대가 낮아서 뷰가 좋고 걷는 즐거움이 있다. 앉아서 쉴만한 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2코스 후반은 아차산 1~5보루를 따라서 걷게 된다. 출토유물 안내가 재미있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비슷한 듯 다르다. 하지만 미끄러운 돌길 조심해야 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길은 좁고, 유동인구가 갑자기 많아진다. 지역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동네 뒷산 코스인 것 같았다.
어느 중년 부부가 같이 아차산을 오르는데, 부인은 쌩쌩하고 남편은 헥헥댄다. 앞서가는 부인이 기다려주지 않고 경쾌하게 말한다. "힘들지? 어제 과음해서 그래. 그러게 무슨 술을..." 과음했는데 다음날 부인과 등산하는 저 아저씨 참 힘들어 보였다. 근데 그 아저씨 숨 쉬시는 거 보니까 아무래도 술 끊으셔야겠다 싶었다.
넘어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집중해서 걷고 걸었더니 2코스가 끝났다. 스탬프 찍고 어서 벗어났다. 2코스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아슬아슬했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좀 더 준비된 마음으로 와야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둘레길을 편하고 예쁜 3코스에서 시작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1, 2 코스부터 시작했다면 내 저질체력은 은근슬쩍 포기할 핑계를 찾아내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