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완주기 8] 1코스 수락 불암산 코스
서울 둘레길 1코스는 난이도 '상'인 코스지만 단축코스를 이용하면 난이도 '중' 정도가 된다. 1코스에서 단축코스로 빠져나오는 길(당고개공원 갈림길)을 잘 찾아서 빠져나오면 된다. 단축코스도 여전히 길고, 오르막이 적지 않은 지역이라 저질체력이라면 하루에 도전하지 말고 두 번에 나눠서 걷는 것이 좋겠다. 전망이 좋고 소소하게 볼거리가 많은 코스라 즐겁게 다닐 수 있다.
7월 4일. 1-1 코스
뭐든지 1로 시작하는 건 설렌다. 1코스도 어쩐지 새로운 시작 같아서 아껴둔 코스다. 막상 7월이 되니, 더위와 비 때문에 생각보다 날짜를 잡기 쉽지 않았다. 7코스는 이틀에 걸쳐 걸었다. 택일을 잘한 건지 날씨가 좋아서 걷기 편했다. 하지만 7코스는 바윗길이 많아 비가 온다면 미끄러울 수 있으니 비 소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날은 출발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1코스는 역방향으로 걸었지만, 1코스다 보니 처음 걷는 사람이 혹시 참고할 사람이 있을까 해서 정방향으로 사진을 정리했다. 덕분에 해질 무렵 도착한 창포원 사진으로 시작한다.
1코스의 시작점은 서울 창포원이다. 아름답고 잘 가꿔진 정원으로 입장 절차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도봉산역 출구로 나오면 바로 있다. 서울에 이렇게 쉽게 들를 수 있는 꽃밭을 알게 되다니, 둘레길 덕분에 알게 되는 것이 많아서 좋다. 창포원 1층에 둘레길 안내센터가 있고, 여기서 각종 안내와 스탬프북, 그리고 서울 둘레길 완주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 사무실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인증서 신청서를 써서 제출한 뒤 입구에서 대기해야 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았다. 창포꽃 필 때 꼭 한 번 다시 와봐야지 다짐하게 되는 곳이었다.
창포원을 나와 상도교를 건너고 중랑천을 따라가다 아파트 단지들을 통과하게 된다. 이 동네도 조용하고 산고 있고 물도 있어 살기 좋겠구나 싶었다. 아파트 자체 공원도 좋지만 곳곳에 도시형 공원이 많았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주민들, 운동 나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두어 명씩 보였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지역인지 다니는 내내 사람은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유유자적 걷는 것도 수락산이 시작되면 끝이다. 오르막이 쭉쭉 이어진다. 아름다운 산길이고 적당히 그늘도 져서 쾌적하다. 하지만 정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정산까지 안 가고 단축코스로 가도 수락산을 즐길 수 있다. 수락산은 서울 외곽인데도, 좀 더 자연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어디 멀리 지방에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큰 개가 한 마리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더니 청설모도 몇 마리 다닌다. 그런데 이 청설모는 사람을 아예 신경을 안 쓴다. 네가 보던가 사진을 찍던가 그러 등가 말든가 그러고 아주 그냥 푹 퍼져있다. 공원 비둘기 같다. 뭘 잘 먹었는지 통통하긴 해.
그런데 길이 좀 험하긴 하다. 등산화가 아니라면 미끄러지지 않도록 집중하자. 등산은 아닌데 등산 기분 내기 좋은 길이다. 강남 쪽 둘레길보다 어쩐지 사람이 없는 기분이다. 나 혼자 길을 다 차지한 것 같아!
와, 이거 뭐지 했는데 채석장이라고 한다. 예전에 건축용 돌 채취를 했던 곳인데 돌을 잘 정돈해두었다고. 돌 색깔이 예뻐서 한참 앉아 쉬면서 구경했다.
전망대에 오니 드디어 사람 등장. 몇 가족이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그리고 서울에 저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어째서 주택은 공급이 부족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아파트 빽빽 전망이 시원하게 등장한다.
단축코스와 정상코스가 갈리는 지점은 재주껏 잘 구분하자. 나는 사실 인터넷에서 단축코스 분기점 놓쳐서 불가피하게 등산 했다는 분 후기를 보고 무서워서 역방향(당고개-> 도봉산)으로 안전하게 걸었다. 무사히 당고개 공원까지 도착했다면 1코스는 다 온 거다. 이제 당고개역을 통과해서 2코스로 이어진다. 단축코스로 가면 세 시간 내외로 걸리는 코스인 것 같다.
7월 2일. 1-2 코스
당고개역은 매력적이다.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여행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달까. 지방 관광지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약간 장바닥 같은 면모도 있다. 수락산과 불암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도 꽤 눈에 띈다. 하산해서 역 근처에서 소주 한 잔에 오징어회나 오리주물럭 구워 먹으면 참 맛있겠다 싶어서 눈에 잘 담아두었다.
2코스는 전반적으로 동네 뒷산 걷는 느낌이 강하다. 평소 가보지 않은 동네를 가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약수터도 있고 시민들의 운동기구나 산림욕 할만한 벤치 등이 이어지는 조용한 길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긴 하지만 크게 무리가 있는 길은 없다. 걷다 보면 곳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볼 수 있다. 무리가 되지는 않지만 1-2코스도 상당히 체력을 소모하는 코스다. 가방에 식량이 좀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꼬마김밥을 준비해서 중간쯤에서 먹었는데 역시 시장이 꿀맛. 정말 맛있었다.
걷고 걷다 보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감정이 드는 스폿이 몇 개 나타난다. 사진은 없는데, 갑자기 민가가 나타나거나 텃밭 사이를 지나거나 한다. 혼자 다니다 보니, 이런 길목에서 뭔가 혼자 작업하는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은 종종 만나는데, 뭔가 서로 경계하면서 서둘러 스쳐 지나가게 된다. 미묘하게 남의 동네 침범하는 기분이 들면서 위험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다른 서울 둘레길들도 각 구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둘레길과 이어지는데 1-2코스도 노원 둘레 산천길 등과 이어진다. 이 길도 흥미로워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이 인근에 오게 될 일이 있다면 한 번 따라가 볼 만한 길이다.
하산해서 화랑대역을 향해가면 공릉동 기찻길이 나온다. 예전 경춘선 기찻길을 산책로로 만들었다는 것 같은데 꽤 운치 있다. 꽃피는 계절에는 그럴듯한 데이트 코스가 되겠다.
둘레길을 걷기 시작할 땐 분명히 저질체력이라 조금만 길이 험해도 죽는소리를 냈었다. 1코스로 시작했으면 죽네사네 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동안 체력이 좋아졌고, 근력운동도 조금 병행하면서 도전 시작 초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종아리에 알이 좀 배기긴 했지만 영광의 흔적이랄까. 1코스는 별 이벤트 없이 쉽게 쉽게 잘 다녀왔다. 장마가 지나면 마지막 남은 8코스를 마지막으로 서울 둘레길 여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동이다. 부상없이 잘 마무리하고 다음 도전을 알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