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완주기 5] 5코스 관악산 구간
서울 둘레길 5코스는 관악산 코스로 2개의 세부코스로 나눠져 있어 이틀에 걸쳐 걸었다. 이로서 총 8개 코스로 이루어진 둘레길 중 4개를 걸었다. 서울을 딱 반 바퀴 돌았다.
6월 4일. 5-1코스 사당역-서울대 구간
그동안 둘레길을 걸으면서 왜 힘들다고 느꼈는가. 쉬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왜 불평했는가. 기대한 것보다 길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했다. 남들은 쉬운 길이라고 해도 나는 매번 등산이라고 생각하자. 남들은 산책이라고 해도 매번 국토대장정 가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면 저질체력에게도 쉽고 짧게 느껴질 거야!
그런 의미에서 드디어 배낭가방을 들었다. 그동안은 대중교통 타면서 등산가방 메는 거 좀 쑥스러워서 무난한 슬링백(사진 우측) 매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 가오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녀보니 산길 중턱에서 비가 올 수도 있었고, 여기저기 걸려서 옷이나 가방이 찢어질 수도 있었다. 먼지 등으로 오염도 발생하고. 게다가 슬링백은 준비물이 점점 늘어나면서 작게 느껴지던 중이었다. 산길 구간이 포함된 둘레길에는 겸허하게 출발하기로 했다.
특히 관악산 인근은 진짜 등산객들이 많아서 히말라야 등반 세팅을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동네였다. 그렇다. 관악산. 북한산과 함께 서울 대중교통을 알록달록 아웃도어로 물들이는 주범. 듣자 하니, 이 정도 등산이 가능한 산이 여러 개가 있는 큰 도시는 거의 없다고 한다. 관악산은 경로도 많고 접근성도 좋아서 등산 싫어하는 나조차도 소싯적에 관악산 연주대 정상을 밟아본 적이 있다. 한강공원과 쌍벽을 이루는 서울시민 필수코스 같은 느낌.
오래된 대표 산행코스다 보니, 등반길이 잘 정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코스도 다양하다. 둘레길 뿐 아니라, 관악산 주변으로 각종 경로가 발달해있다. 서울 둘레길은 위 안내도의 빨간 라인이다. 말 그대로 산을 둘러가는 길이다.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 데 곳곳에 다른 경로로 가는 갈림길이 있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쉽다. 둘레길 표지인 주황색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빨리 확인해야 한다. 나도 몇 차례 엉뚱한 방향으로 가다가 트랭글 앱 경고를 듣고 제자리로 찾아왔다.
5코스는 사당역에서 시작한다. 시작부터 쭉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오늘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르막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막 등산가방도 메었으니 씩씩하게!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게 실감 나는 길이었다. 산의 연둣빛이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돌산을 영차영차 오르면서 들꽃 구경도 좀 하다 보면 등산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관악산의 매력은 역시 돌이다. 돌이 참 잘 생긴 산이다. 그렇게 내려와서 말끔하게 정리된 낙성대공원도 조용히 산책하면 고비는 거의 다 지났다. 공원에는 가족 단위로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까운 늦봄 날씨였다.
낙성대공원의 강감찬 인형 너무 귀엽다. 모자 장식이며 벨트 앙증맞은 것 좀 봐. 작년 강감찬 축제의 연등도 남아있다. 그런데 저렇게 귀여워서 어디 적군이 무서워하겠어? 곳간 열어서 남들 다 뭐 퍼줄 것 같은 허당 인상이다. 공원을 빠져나와 서울대학교 정문까지 씩씩하게 걸어가면 5-1 코스가 마무리된다. 날씨도 좋고 길도 평화롭고, 비교적 쉽고 짧게 마무리하기 좋은 코스였다.
6월 6일. 5-2코스 서울대-석수역 구간
하루 쉬고 5-2코스를 걸으러 왔다. 이날은 역방향(석수역에서 서울대)으로 걸었다. 둘레길은 정방향 역방향 모두 무리 없이 진행 가능하도록 안내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다만 양방향 모두 같은 이정표를 사용하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원형길 같은 데서 착각해서 왔던 길을 돌아가는 일이 생긴다. 설마, 싶지만 양재 시민의 숲 원형교차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참고로 제주올레길의 경우 정방향과 역방향의 화살표 색깔이 달라서 방향이 헷갈리지는 않는다.
시작점(도착점)에서 잊지 말고 빨간 우체통 찾아서 스탬프를 찍고 출발하자. 그리고 관악산 구간은 계속 집중해야 한다. 다른 코스도 여럿 있기 때문. 일례로 호암 늘솔길 등 데크길이 나오는데, 데크길 따라 가면 둘레길을 놓치게 된다. 물론 데크길이 더 좋아 보이니까 무의식 중에 따라가게 되는데 그 길이 아무 때나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이 부근은 또 살기 좋겠다 싶어서 산 아래로 보이는 인근 아파트들을 눈에 담게 되었다. 도시형 공원이 있는 것과 다양한 산책길이 있는 산이 있는 건 생활이 다를 것 같다. 사계절을 좀 더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앞으로 남은 서울 생활, 어디 살지가 고민인데 둘레길을 걸으면 늘 생각이 바뀐다. 공원길을 보면 공원이 좋아 보이고, 물가를 보면 물이 좋아 보이고, 산을 보면 산이 좋아 보이네.
서울 둘레길은 비록 데크길은 잠깐 지나지만 근사한 오솔길이 많다. 오솔길과 돌길을 따라 걷다 보면 또다시 큼직한 돌이 근사한 전망대가 나온다. 서울대가 한눈에 보이고, 적당히 높이 올라온 기분을 즐길 수 있다. 의외로 이쪽 코스는 사람도 많지 않아 고즈넉 하니 조용하게 걸을 수 있었다.
5-2코스의 원래 시작점인 관악산 입구가 가까워 오면 이런저런 미니 공원들도 등장한다. 잣나무 산림욕장도 있고, 아동들을 위한 생태공원도 있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언제 조용할 때 다시 와서 천천히 돌아봐야겠다 싶은 곳들도 좀 있었다.
시간과 체력이 있는 사람이면 5코스를 하루에 찬찬히 걸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내 수준엔 세부코스를 하루에 하나씩 걷는 게 딱 좋았던 것 같다.
땀냄새가 나서 좀 머쓱했지만 대학생들과 등산객들이 얽힌 버스 타고 서울대입구 전철역으로 향했다. 전철 타기 전에 중국냉면 한 그릇 사 먹었는데 시원하고 상큼하고 뭔가 아저씨 된 기분이고 그랬다. 등산가방만 메면 왜 아저씨 느낌이 나는 걸까 모르겠다.
이제 3,4,5,6코스를 끝냈고 1, 2, 7, 8코스가 남았다. 한강의 남쪽을 돌았고, 이제 한강의 북쪽이 남은 것. 이제 좀 적응이 되어서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도 제일 걱정되는 북한산 코스를 마지막에 남기기로 했다. 여기까지 온 자신을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