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완주기 4] 6코스 안양천 코스
서울 둘레길의 가장 난이도 낮은 코스인 6코스, 안양천 코스. 2개의 세부코스로 나눠져 있지만 워낙 쉽다고 되어 있길래 하루 만에 걸었다. 하지만, 역시 나 같은 저질체력 인간들은 이틀에 나눠서 걸을 것을 권장 한다.
6월 1일. 4-1코스 대모산
출발 전, 서울 둘레길 둘레길 6코스에 대해서 좀 알아봤다. 난이도 '하'. 너무 쉬워서 지루할 정도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다. 하천을 따라 평지를 걷기만 하면 된다고. 길도 쉬워서 전진만 하면 되고 서울 둘레길 중 야간 트레일이 가능한 유일한 코스라고 한다. 엄청 유혹적이지 않은가? 서둘러 점심 먹고 집을 나섰다.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지'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내가 그렇게 속았는데 또 속았다. 저 타이틀 배경 사진을 보라. 해가 졌다. 그것도 깜깜하게 졌다. 마지막 한 시간은 또 축지법 쓰는 망상을 하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잊지 말자. 애초에 둘레길은 그 어떤 코스도 하루에 쉽게 걸을 수 없다. 세부코스가 나눠져 있는 건 이유가 있는 거다. 평소에 체력이 평균 이하다 싶으면 그냥 차분하게 하루에 세부코스 하나만 걷자. 생각해보라. 18km가 넘는 길이다. 잠실역에서 여의도역까지 걸어가면 그쯤 된다. 애초에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걸으라면 기함할 것이다. 하지만 석수역에서 가양역이라고 하니 감이 잘 안 잡혔었다. 걷고 보니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강서구를 지나는 길이었다. 와, 덕분에 서울 지리 공부를 했다. '난이도 하'에만 집중하여 출발했다가 해 떨어진 한강변을 좀비처럼 걸으며 인생을 생각했다.
그래서 6코스는 어땠냐고? 근사했다. 안양천을 걸어야 한다면 반드시 5월 말, 6월 초에 걸으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사방이 꽃밭이다. 이름 아는 꽃부터 이름 모를 꽃까지. 다듬어진 정원부터 길가 잡초까지 온종일 꽃을 보았다. 보리밭도 푸르다. 서울시에 세금 내며 살아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부동산 입지 측면에서도 공부가 되었다. 특히 석수역 인근은 서울인데 서울 같지 않았다. 좋은 의미에서 그랬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살아보고 싶은 동네가 늘어나는데 이 안양천 인근이 그랬다. 나중에 이 공원들 인근에 꼭 한 번 살아봐야지 다짐했다. 신도림과 목동에 이르기 전까지의, 정적인 느낌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하늘이 넓게 보이는 지역이라서 더 평화롭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 정비된 곧고 단아한 길을 걷고 또 걸으면 한강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과연 코스설명에 나온 것처럼 야간에도 걷기 좋은 길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는 구간이 좀 있다. 해가지기 시작하자, 여자 혼자 밤에 걷기엔 좀 으스스한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가로등이 잘 되어 있긴 하지만 공사구간도 있고 다소 으슥하기도 했다. 나야 해지는 길을 혼자 걸으니 운치가 있어 좋았다만.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구간을 넘어가면 갑자기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다시 혼잡한 서울의 분위기로 변모한다. 걷고 뛰고 자전거 타러 나온 사람들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퇴근하고, 저녁 먹고 나온 시민들이 모양이다. 무슨 한강변 축제라도 열린 줄 알았다. 코로나 시대, 마스크를 하고라도 이렇게까지 운동을 향한 열정에 타오르는 사람이 많은 줄 그때서야 알았다.
그렇게 쌩쌩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마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잠깐 의기소침해졌었다. 나는 이렇게 지치고 기진맥진한데 싶어서. 누구나 자신의 속도로 걷고 뛰고 있는 법이거늘. 비교란 게 이렇게 무섭다. 혼자 씩씩하게 으슥한 길을 걸을 때는 스스로가 강하고 자랑스러웠는데, 밝은 불빛 아래 뛰는 남들을 보고 스스로를 약하게 느끼다니. 침묵 속에 오래 걷고 있어도 아직 도 닦는 마음을 가지려면 멀었구나 싶었다.
도착 스탬프를 찍는 가양역에 도착한 것이 저녁 9시경. 땀냄새 절어서 떡볶이 집에 가서 뒤늦은 저녁으로 순대, 떡볶이, 튀김 세트를 시켰다. 달았다. 아주 달았다. 눈물 젖은 순대를 먹어보지 않은 자, 둘레길을 말하지 말라. 그렇게 걸었고 앞으로도 계속 걸을 예정이다. 이제는 좀 더 내 속도로, 좀 더 도 닦는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