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그리고 서른 전의 엄마의 시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본 나.
엄마의 말은 내가 받아들이는 언어 중에 가장 강하다.
맏이인 나를 자립심 강하게 키우고 싶었고 예의는 바르게, 실수는 항상 바로 잡아주셨던 거 같다. 그러면서도 내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관대하셨다. 그 부분이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자유롭게 나를 풀어둠과 동시에 엄격하게 다루셨다. 그 결과로 나는 시끄럽고 산만한 아이임과 동시에 어른들에게 인사성 바른 아이로 자랐다. 나는 칭찬이 항상 부끄러웠다. 나는 집에서는 대부분 조심성 없거나 덜렁댄다고 혼나고 잘한다는 칭찬을 별로 받아 본 적도 없었고 크게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 누군가의 드문 칭찬은 내가 받으면 안 되는 어색한 것이였다. 그런 때에 칭찬은 옆에 있던 엄마의 자랑이 되었고 나는 칭찬받았지만 나의 대답보다 앞선 엄마의 말이 가로막으며 나를 낮추고 무안을 줬다. 어쩌면 엄마는 딸인 나와 엄마를 동일시하셨던 거였을까, 요즘의 의문 중 하나이다.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엄마는 스물여덟 살인 나에게 여전히 곁눈질 주신다. 엄마의 겸손이 나의 언어보다 앞에 있었고 무안을 주고 나를 참 낮아지게 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는 엄마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크고 내가 세상에 한 발자국씩 발을 띨 때마다 엄마라는 존재가 조금씩 무너져가며 커다란 엄마가 아닌 가끔은 여리고 가끔은 부족한 그런 한 사람으로 보였다.
엄마의 강한 말은 더 이상 나의 언어가 아니게 되었다. 나의 모국어를 나의 언어로 하나씩 되찾기 시작했고, 그 언어에 맞서 강하게 소리치는 지경까지 갔다. 나는 내 청각을 감싸고 있는 나의 모국어가 끔직이도 싫어졌다. 그게 바로 몇 년 전 부터 몇 개월 전 까지의 일이다. 나의 커다란 세상이 무너지고 지독한 파편들이 집안을 나뒹굴고 누군가는 그 파편이 걸려 넘어지고 넘어지는 소리가 날까 조심했다. 한 동안 집에 오면 방 문을 잠그고 파묻혀 묵언수행을 했다. 일주일 정도 굶기를 몇 번 반복했다. 집 안의 언어는 조심스럽게 순화되었고 말소리를 조용하게 억눌렀다. 폭탄 같던 마찰이 잦아들 즘에 다시 엄마를 봤다. 여전히 엄마는 나를 낮추고 (나만 느끼는)높은 주파수로 잔소리를 쏘아붙이시지만 그 말은 더 이상 커다란 언어가 아닌 평범하고 걱정이 묻은 엄마의 언어인 것이다.
얼마 전에 이사를 위해 정리하던 중에 내가 두 세살 정도 되었을 때 엄마가 직접 떠 주신 분홍색 원피스를 찾았다. 그러다 어릴 때 입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찾고 싶어서 거실 장에 있는 앨범들을 뒤지다가 자연스레 사진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낡은 사진 속에 엄마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앳된 얼굴을 한 엄마는 내 나이가 되기도 전에 나를 낳아 키우셨다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엄마, 이때 엄마 나이가 몇이었어?”
“이때? 야, 너 보다 어렸어 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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