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집 '개룡녀'입니다.

내가 용이 되고 싶었던 이유

by 고밀도

나는 용이다.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는 나는 용으로 분류된다.


나는 정규직으로 취직을 했고 앉아서 근무하는 사무직이었고 굳이 부연설명을 할 필요 없는 이름만 대면 아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용의 조건은 충분했다. 노동자였던 부모님은 IMF 이후 명퇴로 인해 불안정한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용이 되던 날, 나는 이름이 바뀌었다. 아빠는 나의 합격 통보일 이후로 내가 몸담고 있는 있는 기업의 이름으로 개명하여 나를 부르고 계시다. ‘김00’! 이름을 잃은 지 12년째다. 아빠는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시는 것 같았다.


아빠는 어린 시절 공부에 열망이 있었던 아이였지만 육성회의를 내지 못해서 중학교 1학년 반 학기만을 마치고 양계장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아빠는 짧은 학교 생활이었지만 반장을 한번 해보았다는 자부심을 우리에게 천 번은 넘게 전해주었다. 엄마는 인천의 한 여상을 졸업했는데 고등학교까지 나온 엄마를 보고 아빠는 '고학력'에 반해서 열심히 구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중퇴’의 딱지를 달고 양계장, 막노동, 기술을 배워 목수가 되기까지 아빠는 젊음의 힘으로 일을 해왔다. 그런 아빠에게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한다는 것은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몇 번이고 “김00! 회사 가면 너의 책상과 의자가 딱 있지? 거기 너 자리가 있는 거지?” 그렇다는 말에 아빠는 그날의 고된 목수일의 노고를 잊으며 소주가 달다고 하셨다.

엄마 아빠는 국가가 계획적으로 만든 공업도시로 이주한 노동자였다. 목수와 보험 아줌마. 두 분의 평생 직업이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개천에는 나랑 비슷한 친구들이 많아서 나는 이질감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친구의 대부분은 엄마가 서비스업에 종사했고 아빠들은 몸을 쓰는 일을 했다. 인생의 계획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여유는 없었기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교육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시간과 감정을 투자한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의 문제였다. 성인이 되고 내가 속한 용들의 세계(그들이 들으면 이제 용이라고 콧방귀 뀔지 모른다.)에서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성적표'에 대해 먼저 물어본 적이 없는 우리 부모님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고 부러워했지만 사실은 생계에 바빠 교육문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용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상장을 타던 날, 내가 처음으로 반장에 선출되던 날. 우리 집은 평소와 다르게 화목했다. 늘 돈 때문에 싸우던 부모님이 하나가 되어 '우리가 그래도 자식농사는 잘 짓고 있다'라고 서로를 치켜세웠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용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부모님의 다툼이 잦은 것은 우리가 개천에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송국 PD가 되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뉴스 기사에서 방송국 PD가 일은 고되지만 한 달에 5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늘 공부를 하기 위해 동생에게 TV를 끄라고 집중이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싸우며 공부를 했다. 그것이 나와 가족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개천만 벗어난다면 우리 가족은 화목해질 것만 같았다.


이후, 나는 용이 되기로 결심했고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어느 날 ‘용’이 되어 있었다. 용이되면 우리 앞에 꽃 길만 펼쳐질 줄 알았지만 그곳은 또 다른 세계였다.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세계에서 12년째 고군분투 중인 나의 ‘개룡녀’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어 보려고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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