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인중

나만의 안면인식 기술

by 고밀도

‘숙모,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밀도(필명)가 사시끼가 좀 있는 것 같은데…’


공부를 잘하던 사촌 오빠가 하루는 우리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중3을 지나고 있었고 사촌 오빠는 지나가는 길에 들른 터였다. 엄마는 대학 생활하는 사촌 오빠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자주 보지 못하는 사촌 오빠에게 반말을 써야 할지 존댓말을 써야 할지 갈등이 되어 거의 꿀 먹은 벙어리 상태로 얼어있던 터였다. 특히, 손위 사람을 상당히 어려워하는데 차라리 나이가 많으면 세상에서 가장 예의 바르게 대하면 간단했지만 나이 차이가 애매하게 나는 언니, 오빠들이 특히 어려웠다. 존대도 아닌 반말도 아닌 둘 다 섞인 애매한 말을 하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을 보고 말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사촌 오빠랑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남도 아닌 사촌 오빠를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바닥만 보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보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시선을 처리하고 대화를 하다 보니 내 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엄마는 사람들과 눈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힘들다면 인중을 보라고 했다. 그러면 감쪽같이 상태는 눈을 바라본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몇 차례 실험을 해보니 엄마 말이 맞았다. 나는 그때부터 눈을 똑바로 마주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인중을 보기 시작했다. 대체로 가족이나 친구들의 눈을 보는 것은 문제가 없었기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나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인중을 보았다. 눈을 마주치는 것보다 덜 피로했고 사람들의 인중이 각양각색이어서 얼굴을 구별하는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원래 얼굴을 잘 기억해서인지 인중의 힘인지 나는 잠깐만 스쳐 지나가도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해냈다. 20년 이상 인중으로 얼굴을 구별하다 보니 정교하게 타인의 안면인식 기술도 탑재한 꽤나 사교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되었다. 대학생 때 백화점 신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고 판매하는 신공을 발휘하여 옆 가게 사장님의 진지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던 터였다.


그런데 나의 안면인식 기술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최근에 미팅을 몇 차례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람들 조차 나는 얼굴이 영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보통은 20명 정도 되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어도 꽤나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해냈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요즘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의아해하던 중 우연한 대화에서 원인이 발견되었다.


‘부사장님께 보고드릴 때 눈을 잘 쳐다보고 보고해야 돼. 그래야 자신감이 있어 보여서 보고가 잘 끝나. ‘ / ‘어? 저는 눈은 잘 못 봐서 인중을 보면서 보고해야겠어요..‘ / ‘인중? 마스크를 끼고 있는데 어떻게 인중을 볼 건데?’ / ‘아.. 마스크!’


마스크였다. 마스크가 인중을 가려버리는 바람에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하얀 백지로 떠올려지는 것이었다. 어쩐지 사람들의 체격이나 헤어스타일은 어렴풋이 그려졌는데 얼굴은 뿌옇게 되어 거의 떠올릴 수 없었다. 과제 멤버들도 그제야 내가 인중을 주로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어떤지 고밀도 과장님이 내 입술이 산 모양인 것을 알고 있더라고요. ‘ 그렇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고 미팅을 하다 보니 나의 안면인식 기술의 오류가 생긴 것이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이후 나는 사람들의 눈을 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 안에 가득했던 수줍음도 성장을 같이 한 것인지 생각보다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이 힘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야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중을 볼 때에는 그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해도 그 사람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읽기는 힘들었는데 사람들의 눈은 감정을 함께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오히려 마스크를 끼지 않을 때보다 눈을 통해 진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입이라는 ‘풰이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안면인식 센서는 꽤 쓸만하다. 하지만 하루빨리 사람들의 인중을 실컷 보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두 가지 센서로 엄청난 시너지를 내게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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