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결과가 나오던 날, 선생님이 나를 부른 이유

숫자보다 자신을 믿어라

by 고밀도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으로 아이큐 검사를 시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아이들이 가정수업으로 실습실로 이동할 때 잠시 교무실에 들르라고 하셨다.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시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오늘의 일과를 되돌아보면서 선생님이 계시는 교무실로 향했다.


판관 포청천을 닮은 푸근한 외모, 아빠 같은 인자함에 우리 반 선생님은 늘 인기가 많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들을 늘 어른으로 대해주셨고 자율성을 기를 수 있도록 존중해주시는 분이었다. 외모만이 판관 포청천이 아니었다. 그런 선생님 앞에 다가갔다.


선생님은 “때로는 숫자들이 큰 의미가 없을 때가 있어.” 라는 알 수 없는 문장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떤 문장이 이어질지 몰라서 선생님의 입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전 아이큐검사를 했지? 그 결과가 오늘 나왔어. 그런데 그 결과가 너의 학교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좋겠단다. 너는 아주 잘해왔고 잘하고 있는 학생인데 오늘 숫자로 왠지 네가 실망할까 걱정이 되어서 너를 부른 거야. 숫자는 때로는 그저 숫자에 불과해. 진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이야. 선생님은 너의 잠재력을 믿어. 그러니 너도 숫자말고 너를 믿도록 해. 선생님 말이 무슨 뜻이지 이해하겠지?”


지난 번 아이큐 검사 결과가 나왔고, 검사 결과지를 나눠주기 전에 나를 불러 먼저 이야기를 해주려던 거였다. 아마도 나의 아이큐가 평균보다는 낮게 나왔을 것이다. 행여나 내가 그 숫자를 보고 실망하여 일상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시험을 보고 등수를 매기지는 않았지만 나는 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왔던 터였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나는 내가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아이큐도 높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나에게는 공부를 할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 아마도 아빠가 가구 공장에서 손가락을 다친 뒤부터였을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우리 집은 ‘돈’이 싸움을 지펴놓고는 했다. 엄마의 월급날, 아빠의 월급날, 명절 등의 날은 어김없이 큰 소리가 오고 갔고 나는 남북통일보다 엄마아빠의 평화가 소원이었다. 평소에 시험을 언제 보는지도 궁금해할 틈 없이 바쁘게 일하는 부모님이셨지만, 100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가면 그날만큼은 저녁식탁이 화기애애했다. 5분이상의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던 엄마아빠는 그날은 사이가 좋았다. 나는 늘 100점 맞은 시험지를 고파했다. 그것은 나에게 가족의 평화를 구매하는 티켓이었다.


그날 선생님과 대화를 마치고 우리 반 아이들은 아이큐 검사를 하나씩 받았다. 결과를 받아본 남자 아이들은 자신이 숨겨진 천재라는 둥, 이래서 내가 시험을 못 봤던 거라는 둥, 흥분하여 반이 시끌벅적했다. 나는 그날의 아이큐검사 결과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100점짜리 티켓을 끊었다.


엄마아빠는 나의 100점짜리 결과를 보며 서로 ‘00는 당신을 닮아 머리가 좋다’고 했다. 나는 엄마아빠의 명제를 깨지 않으려 책상 앞에 앉았을 뿐이다. 엄마아빠의 환상을 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돌이켜보니 그 때에 판관 포청전을 만난 것은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믿으라고 말씀해준 덕에 나는 스스로를 ‘노력파’라고 정의하며 지금까지 인생의 길을 걸어왔다. 그 노력이 나를 작은 개천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 아닐까 종종 생각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우리집 '개룡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