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사라지면, 우리의 민낯을 만난다.

찰나의 청춘이 사라진 뒤

by 고밀도

얼마 전, 나의 20대 청춘이 담긴 싸이 월드가 되살아났다. 나를 비롯해 내 또래들은 과연 어떤 ‘흑역사’와‘전성기’의 모습이 있을지 기대하며 앱에 접속했다. 몇 개의 단톡방들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시절 우리의 청춘을 이야기를 하며 웃음이 여러 번 터졌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무모했던 도전, 그래도 행복을 향해 열심히 달렸던 청춘을 추억하고 있으니, 지금 40대의 모습은 청춘의 때에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90년대의 왕성하게 활동했던 가수들의 무대를 보았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냐’고 반기를 들었던 DJ DOC, 중학교 때 반 친구들 모두 똑 단발을 하게 만든 엄정화를 비롯한 추억의 가수들의 무대가 소개됐다. 지금의 모습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날렵했고, 표정과 몸짓에 자신감이 넘쳤다. 헤어와 메이크업, 패션이 촌스러워도 싱그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청춘은 저런 것이구나.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어떤 기교나 내세움 없이도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되려, 기교를 모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청춘은 아름다웠다. 청춘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어떠하든지 아름다운을 선사한다면, 청춘의 효과가 끝나면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그때 비로소 사람은 자신의 민낯을 마주한다.


반짝이는 젊음과 함께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40대가 가까워질 때쯤 조금씩 드러난다. 어떤 이는 성실을, 어떤 이는 성공을, 어떤 이는 후회를 손에 쥔다. 각자 걸어온 길에 따라 청춘이 사라진 자리와 민낯은 다를 것이다. 90년대에 무대를 화려하게 꾸미던 스타들이 구설수에 오른 기사들을 볼 때면 기억 속에 그들의 청춘이 스쳐가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더한다. 미디어에서 추억의 스타를 소환하는 프로그램에서, 모습이 많이 변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청춘은 정직하게 사라진다. 의료 기술로 청춘을 붙잡아 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청춘은 활활 타오르고 빠르게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청춘이 없는 삶을 더 오래 살며, 그것이 진짜 모습이다. 청춘을 지나왔는가? 청춘이 사라진 나에게 싱그러움 대신 무엇이 남아 있는가? 그 길을 지나왔다면 나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해보자. 청춘이 사라진 나의 민낯을 마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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