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대신 희열을
생각 많은 'N'이 행복을 찾는 방법
쉼이 매우 고팠던 겨울날, 가까운 서울 시내에 위치한 초고층 호텔로 휴가를 갔다. 갑작스레 따뜻해진 날씨로 잠들기 전 에어컨을 가동했다. 소등을 하고 누운 순간, 천장에서 ‘뚝뚝’ 소리가 간헐적으로 났다. 배관에서 나는 소리로 추측이 됐지만, 그 소리 하나에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펼쳐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구조물에서 나는 소리일까? 구조물의 나사 하나가 빠져 도미노처럼 건물이 해체되어 단단해 보이는 저 통창이 깨어지고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나는 탐크루즈도 아니라 97층을 탈출할 방법이 영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이 생각의 습관은 이번 여행에도 나를 따라왔다. 새벽 1시, 호텔 측에 전화를 걸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이런 증상은 나의 오래된 친구다. 더운 여름날, 교실에는 선풍기가 천장에 붙어 부지런히 돌아간다. 위에서 학생들을 쳐다보며 골고루 바람을 뿌려주겠다는 의지로 천천히 상모를 돌린다. 그런 선풍기를 나는 늘 예의주시했다. 혹시나, 저 선풍기의 커버가 헐거워서 떨어지고, 날개가 내 이마에 꽂히면 어쩌지. 나는 그 흉터를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만약 오늘 학교가 무너져 뼈 어딘가가 부러지고 철근이 내장을 통과한다면, 그런 와중에 내 정신이 온전하다면 어떻게 버텨야 할지 고민은 나를 항상 따라다녔다.
혹자는 ‘안전 과민증’이라고 했지만, 이런 증상은 안전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안전에 대한 생각만 입 밖으로 표현할 뿐 시시각각 떠오르는 모든 사건의 최악의 모습은 최대한 내 안에 가둬 놓았다. 수많은 생각이 자리 하나씩 차지하여 머릿속은 비좁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주도권은 나에게 없었다. 어떤 순간을 만나면, 그 찰나에 자동으로 머릿속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최근 MBTI의 ‘N’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 증상을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조금은 편리해졌다. N이라는 알파벳을 가져다 ‘하나의 생각으로 저 머나먼 안드로메다 왕복여행을 한다’고 나를 설명한다. 그 안의 자세한 이야기는 나만 알면 될 일이다.
현실에 집중하고 후일을 걱정하지 않는 평온하고 기쁜 상태가 되길 바라지만, ‘단순해지기/행복해기지’라는 목표를 20년째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행복을 취하기에는 수많은 변수를 생각하고 불안을 초대한다. 이렇게 설계된 나는 필연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공평한 신이 나에게는 쉽게 좌절하지 않는 마음을 같이 주었다면 조금의 위로가 될 수 있다.
20년째 실패해 본 결과, ‘행복’ 대신 ‘희열’을 찾기로 결정했다. 내게는 평온한 상태가 유지되는 행복보다는 희열의 ‘순간’이 더 어울린다. 내 주변을 둘러싼 불안을 찍어 내면서 닿지도 못할 행복을 향해 오르다 고통 끝에 선물처럼 주어지는 희열. 여행 중 만나게 될 상황들을 고려하여 챙겨가는 작은 도구들이 쓰일 때, 1안의 옵션이 불가해진 상황에서 준비해 둔 2안을 들이미는 순간. 불안을 활자로 적어 내리다 완성하게 되는 에세이 한 페이지 들이 내가 만나는 희열의 순간들이다. 행복이 선형이라면, 희열은 점의 모습일 것이다. 희열의 순간들을 치열하게 찾아내다 보면 점들의 간격이 가까워서 선처럼 보이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나는 행복을 버리고 희열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