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장기근속자로 일하다 보면, 노력하지 않아도 회사의 변화가 체감될 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격한 변화를 겪은 지난 15년이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던 시기는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였고, 카카오톡이 늘 화제의 선두에 있을 때였다. 지금은 그런 충격이 무색하게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이니 세상의 변화도 참으로 큰 시기였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15년 짬이 되니 회사의 분위기를 자연스레 감지하게 된다. 장기 근속자를 10-20년 더할 수 있겠구나 안심하며 회사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할 때도 있지만, 몇 가지 시그널들을 보면서 장기근속자로 몇 년 안 남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오늘은 회사가 망할 것 같다고 느껴질 때, 발견한 현상을 공유해보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쉽게 망하지 않는다.)
첫째,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진다. 조직이 커지면서 책임과 권한이 분산된다. 자연스레 직급이 높아져도 작은 의사결정마저 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고, 이런 구조속에서는 실수나 실패가 발생했을 때 책임지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러니 선뜻 새로운 제안을 할 수 없다. 새로운 제안 없이 안전한 길만 가려고 하면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몇 년 뒤 시장과 고객이 변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도를 했던 몇 선구자들은 실패와 함께 회사를 떠났고, 그럼 그 모습을 보는 남은 자들은 그 사례가 머릿속에 강력히 각인되어 더욱더 안전한 길을 걷는 것이다.
둘째, 창의가 대우받지 못한다. 다 같은 월급쟁이의 업무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백지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업무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백지에서는 선뜻 아무도 갈피를 잡지 못하다 누군가의 draft가 있다면(콜럼버스가 달걀 밑부분을 깨서 세웠듯이)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백지에서의 창작과정이 다른 업무들과 동일하게 평가되고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면 모두들 그런 업무를 기피하게 된다. 그럼 더 이상 창의적이지 못하고 관료적인 업무만 강화하게 된다.
셋째, 정치질이 먹힌다. 사람들은 어떤 업무가 더 어렵고 피하고 싶은지 알 것이다. 하지만 창의와 책임을 피하면서 조직원들은 자신이 한 일을 어필하고 싶어 한다. 성과는 급여, 연봉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정치성이 등장한다. ‘업무 쌈 싸기’ ‘상사 의전’ ‘상사와 시간을 보내며 자기 어필하기’등 업무의 본질을 벗어난 행동들도 평가를 받고 성과가 과잉, 과소평가받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조직이 정치판이 되면 가짜 성과와 가짜 인재들이 판을 친다.
지금 속한 회사의 모습이 위와 같다면, 둘 중 하나다. 탈출 준비를 하거나, 이 분위기를 경계하고 바꾸어 나가기. 하지만 후자를 시도할 수 있는 직장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장기근속자 15년째, 이런 시그널이 감지된 조직에서 과연 앞으로 몇 년까지 채울 수 있을지 나 자신도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