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밀도 Oct 27. 2024

4장. 봉인된 기억(4)

중학교 졸업만을 간절히 빌었다. 서대용과 그 패거리로 인해서 나는 매일 지옥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박정민이 아니라 한 마리의 개였고 머슴이었고, 노예였다. 하지만 이런 나의 고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엄마가 알게 되면 엄마의 시간도 지옥이 될 것이 뻔했다. 그때는 아빠 멋대로 이사를 온 덕분에 엄마는 낯선 곳에서 고통에 이미 신음하고 있었다. 엄마가 서랍에서 약을 꺼내어 먹는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서대용은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나를 여러 번 바닥으로 추락시켰기에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먹이사슬 바닥에서 조금도 올라갈 수 없었다. 나는 무기력하게 당하면서 나에게 지정된 먹이사슬을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2차 성징이 늦게 진행되어, 몸은 왜소했고 목소리는 여자와 남자아이 그 사이에 있었다. 서대용과 그 패거리 옆에 있으면 영락없이 약자처럼 보였다. 그들은 쉬는 시간이면 교실의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가서 반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에워싸고 농락을 했다. 반 아이 중에 누군가 비참한 꼴을 당하는 나의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들 도와줄 수도 없었다. 그들은 한낮의 교실에서 내 바지의 지퍼를 내려 성기에 털이 나지 않았다고 비웃었다.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동물을 구경하듯이 즐거워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극적인 괴롭힘을 원했다. 때로는 맨손으로 때로는 연필로 내 성기를 부풀게 하고 상처를 가했다. 나는 그들의 악마 같은 호기심을 확인해 주는 실험 대상이었다. 억겁 같은 10분의 쉬는 시간이 두려웠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화장실로 소변을 보러 간다고 서둘러 나오면 나를 뒤 따라왔다. 변기 옆에 바싹 붙어 내가 볼일을 볼 때까지 나를 노려봤다. 긴장돼서 소변이 나오지 않으면 거짓말을 했다고 욕을 퍼부었다. 쉬는 시간에 충분히 나를 괴롭히지 못한 날은 학교가 끝나고 난 뒤 더 심한 괴롭힘으로 돌아왔다. 담뱃재가 뿌려진 요구르트나 땅콩 크림빵의 먹방이 요구되었다. 헛구역질하며 담뱃재를 삼켰다. 그런 나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어 놓고 나를 협박했다.


담뱃재를 삼켰던 날, 나는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 치욕으로부터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고통을 끊어낼 방법도 없었다. 내가 당한 일들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것 자체는 또 다른 지옥이었다.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지옥이었다. 그 지옥을 스스로 끝내려고 했다. 유언은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유언장을 남기면 엄마는 평생 그 쪽지를 붙들고 고통 속에 살아갈 사람이었다. 조용히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결국 이행하지는 못했다. 내가 뛰어내리려고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엄마의 문자가 왔다.


[문자] 정민아. 어디니? 엄마랑 봉담사 다녀오자.


그 문자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몸을 던졌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랑 한바탕 하고 고통에 몸부림 칠칠 때면 나에게 연락해 절에 다녀오자고 했다. 엄마는 봉담사를 찾아 쓰러질 지경까지 백팔 배를 했다. 엄마를 옆에서 지켜줘야 했기에 나는 뛰어내릴 수 없었다. 졸업을 할 때까지 이 지옥을 견뎌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은 짐승이고 악마라고 나를 세뇌했다. 졸업만 하면 모든 것 일 끝날 거였다. 매일 달력에 붉은색으로 하루하루를 지우며 이 지옥의 끝을 기다렸다. 만약 아빠가 미리 증여해 준 돈이 없었다면 나는 그들의 배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엄마의 지갑을 훔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조금 더 그들의 만행이 천하에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이런 지옥 속에서도 나는 적정 수준으로 학교 성적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공포의 대상, 아빠에게 나는 멸시의 눈빛은 물론이고 넉넉한 용돈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나마 넉넉한 용돈 덕에 서대용의 요구에 몸으로 막을 부분을 돈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서대용 무리가 다른 학교 여자애들과 몰래 놀 때면 나한테 망을 보라고 시켰다. 비어있는 상가나 공원의 공터 같은 곳에서 술판을 벌이고 놀면 나는 앉아있지도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망을 봐야 했다. 인간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파라다이스를 찾아내곤 한다. 나는 용돈을 써서 번화가에 있는 세련된 공간을 대여해 주고 홀로 집으로 갔다. 오히려 그런 날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서대용은 고급스러운 공간에 아주 많이 흡족해했다.


고통이 끝나길 1년 반을 기다렸다. 졸업만 하면 나의 고통은 자연스럽게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희망이 빨리 찾아온 것이다. 서대용 무리는 늦가을 밤에 경찰서에 붙잡혀 들어갔다. 카센터나 주택단지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를 훔치다가 붙잡혔다는 것이다. 역시 그들은 머리가 좋은 하이에나들이 아니다. 11월부터 한 달간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그들이 없는 학교는 천국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들의 부재를 활용하여 운동을 미친 듯이 했다. 유튜브에서 벌크 업하는 방법, 근력 키우는 방법 등을 닥치는 대로 뭐든지 했다. 그동안 개처럼 끌려다니느라 시간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절호에 찬스였다. 2차 성징도 시작이 되어 내 몸은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다. 한 달의 시간은 금방 갔다. 오토바이를 훔친 형벌로 봉사활동을 이수하고 돌아온 서대용은 한 풀 기가 꺾인 듯했다. 여전히 나를 거칠게 대하고 돈을 뜯어 가기는 했지만, 성기로 장난을 치거나 담뱃재를 먹이는 짓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조용히 힘을 키워갔다.


여기까지가 문을 열기 전까지 기억하던 나의 모습이었다. 악몽의 메타버스 안에서 거울 속에 비친 가해자의 얼굴이 나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 입력된 기억들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EXIT 버튼을 누르면 이 혼란스러운 기억이 정리될 거라고 믿었다. 기억은 돌아왔지만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내가 서 있던 공간이 무너져 내리고, 동제 옆에 서 있는 성제를 발견한 순간 모든 것은 진실이 되었다. 나의 모든 뇌와 몸의 세포들이 진실을 기억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동안 봉인되었던 기억의 문들이 모두 열렸다. 나는 그 기억을 부정하고 싶었다.


동제의 검은 워커에 짓밟히는 순간 나는 VR기기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엄마의 유품이 쌓여있는 작은 창고 방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아직 악몽의 메타버스 안이라고, 이건 절대 현실이 아니라고 수백 번 되뇄다. 그럴수록 기억은 선명해졌다.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던 과거의 나를 찾아가 경고해주고 싶었다. 절대로 문을 열지 말라고. 기억 따위 잊어도 된다고. 아빠 말이 다 맞았다고. 하지만 결국 나는 모든 문을 열고 2년의 기억을 모두 찾아오고 말았다.


내가 왜 피해자로 둔갑하였는지는 모르겠다. 피해자라고 믿었던 몇 개월 동안 분명히 내 몸은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과 상관없이 내가 피해자였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살아있는 기억들 속에서 나는 늘 피해자였으니까. 하지만 잃어버렸던 2년 동안 나는 명백한 가해자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잔인하고 악랄한 가해자. 그 꿈들은 모두 내가 2년 동안 친구들에게 했던 악마 같은 행동의 암시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가해자들을 쫓았다. 그들과 마주칠까 까 두려움에 떨었다. 결국, 나는 내 얼굴을 마주하려고 그토록 악몽 속에서 헤맸던 것이었다.


가장 나를 미치게 했던 점은 내가 엄마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중학교 졸업까지 잘 지켜온 나의 비밀을 엄마가 알게 됐고, 내가 받은 고통을 온몸으로 괴로워하다 엄마가 그렇게 된 거라 믿었다. 그렇게 믿는 편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연약함을 만천하에 알린 가해자를 증오하며 끝까지 쫓았다. 그런데 가해자는 나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남긴 일기장은 나에 대한 엄마의 분노와 증오였다. 엄마가 같은 세상에 있는 것조차 싫어했던 악마 새끼는 나였다. 내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엄마를 죽였다. 나는 엄마의 유품이 쌓인 창고 안에서 가슴을 치며 울었다. 작은 공간에 누워있을수록 악마 같은 나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동제를 만나야 했다. 추락하면서 봤던 동제가 변수 개체였는지 아니었는지 상관없이 나는 이미 동제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이미 창고에서 정신을 놓고 오랜 시간을 보낸 뒤라 집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내 전화에는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고 권 비서님은 거실에서 계속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내가 계단 아래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안절부절못하던 가사 도우미와 권 비서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집 안에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었다. 가사 도우미는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으면 저 창고를 찾아 들어갔겠느냐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나의 본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권 비서님은 바로 아빠한테 상황을 보고했다. 나는 학원에 가겠다고 말했다. 권 비서님은 나의 악마 같은 모습을 알고 있었을까? 아빠의 압력으로 나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 만약 알고 있었다면 피해자인 척 움츠리던 내 모습이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학원으로 향했다. 아직 2교시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 복도 벽에 기대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동제는 늘 앉던 자리에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동제에게 다가갔다.


“저기, 얘기 좀 해요.”


동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따라 나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싶어서 옥상으로 갔다. 오늘만큼은 단둘이 이야기를 할 공간이 필요했다. 옥상에 올라가서 무거운 벽돌로 고정해 놓은 문을 닫았다. 동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네. 기억 말이야.”


점점 상황이 명확해지고 있었다. 동제는 내 기억을 알고 있었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동제를 의지했던 만큼 화가 났다. 화를 낼 수 있는 자격은 없었지만 동제에게 화를 냈다.


“처음부터 다 알고 접근했어요? 다 알고 있었냐고요! 이 좆같은 상황을.”

“시발 그래, 이게 너지. 그동안 역겨워서 혼났네.” 

“그럼 이게 다 성제 때문…”


문장을 다 말하기도 전에 동제의 주먹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나는 동제의 주먹에 휘청거렸다.


“개새끼야. 그 이름 입에 담지 마.”


동제는 그동안 응축해 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친절한 모습으로 나를 도와주고, 바닷가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주던 동제는 없었다. 내가 몸을 똑바로 세우자 다시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동제에게 계속 얼굴을 내어주면서 조금씩 뒤로 밀려갔다. 이성의 끈을 놓고 사정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동제에게 계속 얼굴을 맞으며 옥상 가장자리 벽에 부딪혔다. 더는 뒤로 밀릴 공간이 없었다. 동제의 주먹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비릿하게 느껴지는 입안의 피가 역겨워 침을 뱉었다. 동제의 주먹에 맞는 자리가 부풀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악마 같은 새끼. 너 같은 새끼는 절대 기억을 잊으면 안 되지. 내가 그렇게 둘 수 없지.”


한껏 두들겨 맞고 나자 악에 받쳤다. 동제의 주먹을 피부로 느끼자, 나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분리수거장에 나를 던져 놓은 사람이 동제라는 것을 확신했다.


“너지, 치사하게 뒤에서 내 머리통 때린 새끼.”

“아직도 네 머리통 내려칠 때 손맛을 잊을 수가 없지.”


동제는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언제부터 나를 따라다닌 거야. 십 새끼. 소름 끼치게.”

“니 애비가 성제 기억을 구걸하던 그 순간부터! 피해자들 기억을 1억에 사겠다고 지랄발광하고 돌아다닌 순간부터! 시발 너 때문에 성제는 병신 됐는데 감히 악마 같은 너의 기억을 갈아치우겠다고? 그런 꼴은 내가 절대 볼 수 없지.”


동제는 아빠의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분노의 수치가 올라갔다. 그리고 커다란 손으로 내 목을 조르며 분노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핏줄이 터진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성제의 눈이었다. 그동안 복제한 것처럼 똑 닮은 동제의 눈을 보면서 나는 성제를 떠올리지 못했다. 나의 개가 되었던 성제. 내가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제일 먼저 목표물로 삼았던 성제. 성제의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차라리 동제의 손이 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내 목을 놓지 않기를 바랐다. 숨이 멎을 것 같던 그 순간 동제는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냥 죽여. 그냥 나 밟아서 죽여.”


나는 바닥에 누워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동제는 누워있는 나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 핏줄이 터진 눈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죽이라고? 시발. 너를 죽이라고? 너는 절대 죽을 수 없어. 네가 했던 악마 짓거리. 네가 죽게 만든 성제. 끝까지 똑똑히 기억해야 해. 너희 엄마 네가 죽인 거야. 알고 있지? 네 애비가 피해자들 기억을 돈으로 흥정할 때 집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했던 거 너희 엄마였어. 너는 그 고통 끝까지 가지고 살아야지. 어디 감히 죽여 달라고 해. 시발.”


동제는 검은 워커로 나를 마구 밟았다. 밟아도 분이 풀리지 않아 옥상 구석에 있던 화분까지 검은 워커로 다 걷어차 버렸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일어날 수 없었다. 힘을 내어 저 옥상 아래로 떨어지고 싶었다. 나 같은 악마 새끼는 그냥 죽는 편이 나은데 떨어질 힘조차 없었다.


열일곱 살을 된 나는 기산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겨울 방학 하는 동안 내 몸은 다시 태어났다. 온몸이 남자로 변하고 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제는 하이에나의 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지난 1년 반의 기억을 곱씹어 보았다. 수십 번을 밟혔지만 단 한 번도 저항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도 발악하고 꿈틀거릴 줄 알았다. 이번만큼은 당하기 전에 발악하기로 했다. 그동안 육식동물들에 많이 끌려다니면서 서당 개처럼 배운 덕분에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지 충분히 학습했다. 새로운 시작은 내가 주도권을 갖기로 작정했다. 내가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 대신 당할 상대를 찾아 먼저 밟아줘야 한다. 나는 완벽한 계획을 세워 입학하기만을 기다렸다.


초반에 기선제압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입학하고 2주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그때가 유일하게 내가 포식자의 위치에 설 기회다. 미친 짓을 할 수도 있는 또라이가 되어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게 해야 했다. 가장 먼저 교실에서 한 명의 초식동물을 정하고 그 아이를 반쯤 조져 놓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분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약자의 가방에 발이 넘어지던지, 눈이 마주치면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하든지 명분을 먼저 찾아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포식자에게는 명분이 필요하다. 이유 없는 공격은 되레 역효과를 낼 뿐이다.


내 안에 누적된 분노로 나는 악에 받쳐 있었다. 학교는 원래 친구를 사귀는 공간이 아니다. 사회를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약육강식을 배우는 곳이다. 먼저 먹이사슬의 위쪽을 선점하지 않으면 언제든 짓밟힐 수 있다. 그것이 이 사회가, 이 학교가 나에게 알려준 교훈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내가 배운 대로 변하기로 했다.


등교 첫날, 나는 경비아저씨만큼이나 일찍 가서 맨 뒷자리를 선점했다. 초식동물처럼 앞자리나 중간부터 채우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등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마치 뒷자리가 원래 내 자리인 것처럼 나는 가장 구석진 뒷자리에 앉았다. 교실에 도착하니 아직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의 등교는 시작되지 않았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교실 문으로 한 명씩 아이들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아이들은 쉽사리 뒷자리부터 채워 앉지 않았다. 나는 목표물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다. 이미 피해자의 인생에서는 벗어난 것 같아서 약간의 희열도 느꼈다. 가장 연약해 보이고 만만한 상대를 골라야 한다. 그동안 강자들에게 많이 당해 와서 맷집이 강해졌지만, 나의 힘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또 그런 구도가 되어야 시각적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교실 문으로 적당해 보이는 목표물이 들어왔다. 작은 키에, 여드름이 잔뜩 난 얼굴, 거기에 어수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약자 중에 최약자로 보이는 적당한 초식동물이었다. 나는 나의 목표물을 응시했다. 내 힘을 과시할 기회를 던져주기를 기다렸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불안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좀처럼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 행동반경이 아주 작았다. 이름은 이성제. 나의 3년의 위치를 확고히 해줄 희망이었다.


쉬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성제가 일어설 때 따라 일어섰다. 성제의 동선을 미리 파악했다가 나는 그 길목에 서 있었다. 그리고 살짝 부딪혔다. 준비해 두었던 할리우드 액션을 선보였다. 성제는 옛날의 나처럼 한없이 착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지금이 내 고등학교 생활의 대서사가 열리는 시작점임을 직감했다.


“십 새야. 눈을 어디다 달고 다녀.”

“아. 미안해. 내가 못 봤나 봐.”

“미안하면 다야 이 새끼야.”


나는 멱살을 잡고 사물함으로 성제를 밀쳤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자신이 포식자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조차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쇼가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목표만 달성하면 쇼를 마칠 것이다. 포식자라는 이미지만 구축하고 자리로 가려고 했다. 처음 해보는 쇼에 내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 나는 더욱더 세게 멱살을 잡아끌었다. 그때 덩치가 큰 한 녀석이 다가와서 내 어깨를 잡았다. 


“야, 조용히 좀 하지. 시끄러워.”


내 어깨를 잡는 덩치의 손에서 나는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 여기서 내가 뒤로 물러나면 다시 개처럼 살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미 시작된 쇼를 망칠 수 없었다. 그 두려움이 나에게 잠재되어 있던 악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말을 아끼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으로, 겨울방학 동안 배웠던 공격기술을 기억해 내고 덩치의 복부를 가격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덩치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시발, 뭔데 내 몸에 손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덩치는 발을 잘못 디디면서 단단한 벽에 부딪혔다. 다시 일어나서 나를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했지만,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다시 나를 공격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하늘이 나를 도왔다. 우리를 지켜보던 아이들 눈에 어쨌든 나는 승리로 기억되었다. 쉬는 시간이 더 길었다면 승패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이 공포심을 느꼈다는 것에, 나를 포식자로 봤을 것 같아서 단전부터 희열이 올라왔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내 위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길 때마다 나는 성제를 이용해서 힘을 과시했다. 서대용으로부터 배운 악랄한 짓을 몇 가지 응용하여 성제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해 보이려고 시작했던 행동이 나도 모르게 점점 과격해지고 있었다. 힘없이 당하는 성제에게서 옛날의 내 모습이 보였다. 발악을 하라고 이 새끼야. 그렇게 등신처럼 참고 있지 말고. 과거의 등신 같은 내가 투영돼 보였다. 그동안 등신처럼 살았던 정민이를 증오했다. 정민이를 증오할수록 약자를 향한 괴롭힘의 강도는 세졌다. 특히 반항조차 하지 않는 성제의 모습에 화가 나서 점점 더 거칠고 악랄하게 괴롭혔다. 때로는 좀 심했나 싶어서 죄책감을 느꼈지만, 가끔은 그 어떤 쾌락보다 짜릿했다. 내가 두려워서 오줌을 지리고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나의 힘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안의 악마가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성제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나는 세련된 포식자였다. 머리도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돈을 뜯어내지도 않았다. 단지 내 힘을 과시하고 위치만을 확고히 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포식자들이 나에게 붙었다. 우정이나 친구의 의미 따위는 몰랐지만, 어디서든 내 말에 따라 친구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학년이 바뀌어도 처음 위치를 확고히 잡아두었던 터라 나는 계속 강자로 인식되었다. 고등학교 첫해는 학교에서는 포식자, 집에서는 순한 양처럼 행동했지만 2학년이 되고 나서는 집에서도 변해버린 내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거친 육식동물처럼 변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단번에 알아봤다. 


“정민아, 요즘 너답지가 않은 것 같아. 공부하느라 힘들 수도 있지만, 반드시 인간의 기본 도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기본 도리가 뭔데? 인사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는 거? 그 기본 도리가 밥 먹여줘? 엄마나 자신이나 잘 챙겨. 나는 내가 알아서 하니까.”


엄마는 혼자 봉담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체력이 달릴 때는 집에서도 백팔 배를 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빈다고 했다. 그때 아빠는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느라 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는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강박 속에서 조금씩 나의 인생을 찾아가고 있었다.


성제를 노리개처럼 가지고 놀았던 마지막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성제는 다른 반이 되었지만 나에게 자주 불러 나왔다. 아니, 내가 불러내지 않아도 나한테 불어있는 패거리들이 성제를 불러서 장난질했다. 성제뿐 아니라 몇 명의 초식동물들을 몇 더 찾아내어 집단으로 괴롭힘을 시작했다. 내가 가담하기도 하고 패거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훈수를 두기도 했다. 우리끼리 술 마실 때 시야에서 보이면 술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술 심부름을 했던 초식 동물들을 캐비닛에 가뒀고, 수영 수업이 있으면 체육 선생님의 눈을 피해 물속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아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며 키득거렸다.


‘약하면 당하는 거야.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야지. 그래야 나도 억울하지 않지.’


나는 항상 이런 행동을 합리화했다. 2학년이 되고서 나는 더욱 창의적인 방법으로 성제를 가해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능숙하게 피우게 된 나에게 성제의 몸은 재떨이였다. 선생들에게 성제의 상처는 발견되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바닥에 엎드리게 해서 성제의 등을 재떨이처럼 사용했다.   성제는 뜨거운 담배 끝이 피부를 타들어 가는 데도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이 새끼가 제일 지독한 거 알지? 질릴 정도야.”

“끝까지 가볼까? 이 새끼가 언젠가는 반응하지 않겠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되잖아.”


우리는 그렇게 성제의 한계를 시험했다. 우리가 선별한 다른 약자들은 살려달라고 개처럼 비는데 성제는 빌지 않았다. 그 점이 우리를 더욱 자극했다. 한 방에 무릎을 꿇게 할 방법들을 궁리했다. 우리는 성제의 부모와 가족을 혀로 능욕하기 시작했다. 성제에게 동제 같은 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성제는 가족들에게 자기의 학교생활을 철저하게 숨겼을 것이다. 과거의 등신 같은 정민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패거리 중 한 명이 성제를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유튜브를 하나 보여줬다. 일명 ‘기절 놀이’. 유튜브에서 당하는 사람은 죽은 듯이 쓰러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우리는 성제에게 실험해 보기로 했다. 날씨가 좋은 봄날 저녁에 우리는 사람들이 없는 공원으로 향했다. 한 명은 동영상을 보면서 방법을 계속 익히고 있었다. 패거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볼까 하다가 성제의 목을 직접 졸라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 영상을 최초로 제안한 현수는 우리 중에 가장 민첩하고 말이 많았다. 내가 손수 해보겠다고 나서자 현수는 내 옆에 서서 어느 부분을 잡아야 하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성제는 자기한테 곧 벌어질 일이 어떤 것인지 가늠조차 못 한 채 멍하니 내 앞에 서 있었다. 우리는 큰 나무가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주는 공원의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성제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현수가 알려준 위치를 찾아 두 손으로 압박을 가했다. 성제의 눈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놀란 토끼처럼 붉어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제의 눈을 응시했다. 성제는 버둥거리다가 힘없이 축 처져 버렸다.. 우리는 놀라서 땅에 쓰러진 성제를 보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몇 초 뒤 성제는 캑캑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아, 시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존나 신기하지 않냐? 죽은 줄 알았는데 멀쩡해. 야 나도 해볼래.”


현수는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초점을 잃은 성제를 다시 일으켜 세워 두 손으로 목을 졸랐다. 그리고 성제는 힘없이 땅으로 쓰러졌다. 이번에는 1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야, 뭐야. 깨워봐.”


우리는 갑자기 성제가 죽어버린 건 아닌지 겁에 질려 성제를 흔들었다. 대범하게 성제를 괴롭히던 포식자들은 겁쟁이가 되어 불안정한 눈빛으로 성제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성제가 죽었을 때의 두려움보다 그로 인해 생겨날 골치 아픈 일들이 더 두려웠다. 현수는 성제를 일으켜 앉게 하고는 강하게 흔들었다. 성제는 그제야 힘없이 눈을 떴다. 졸려 보이기도 했고 어딘가 멍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찝찝한 마음이 들어서 곧바로 성제를 보내고 우리도 집으로 흩어졌다.


그 이후 한동안 성제를 보지 못했다. 성제 반 애들의 말에 의하면, 성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당분간 학교에 못 나올 거라고 했다. 나는 혹시 그때 공원에서의 일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것은 그날 함께 있었던 패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성제가 아프다고는 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사람도 없었기에 우리는 모른 척하며 지냈다. 가끔 다른 초식동물들을 찾아 가볍게 괴롭히며 지루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평범했던 여름의 초입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학하면서 성적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돈을 가져다 바쳐야 하는 처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나는 아빠의 돈이 절실하지 않았다. 용돈을 넉넉히 받아야겠다는 욕구가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공부도 소홀하게 됐다. 중간고사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난 뒤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오랜만의 면담이었다. 성적이 너무 많이 떨어졌다고 걱정하면서 나의 교우관계, 가정사 등을 끈질기게 묻고 또 물었다. 최대한 모호하게 둘러 말했기 때문에 장시간 면담을 했지만 서로 얻는 것은 없었다.


오래 학교에 붙잡혀 있었다는 사실에 억울함이 올라왔다. 나는 혼자 욕을 지껄이며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집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내 퓨즈가 끊겼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내 머리통 전체에 어마어마한 울림이 있었고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고통이 있었다. 누군가 내 머리통을 내리쳤는데 누구인지, 어떤 무기로 쳤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고통 사이로 뜨거운 붉은 용암이 흐르는 것 같았다. 뜨거운 고통과 함께 나는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이제야 그 사람이 동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구선수였던 동제는 나의 머리를 프로처럼 내리쳤다. 동제는 홈런을 쳤다. 나는 한 번의 스윙으로 정신을 잃고 3개월간 눈을 뜨지 못했다. 코인 야구장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동제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내가 너의 머리를 가격한 그 새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일부러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나에게 힌트를 줬던 것일까?


동제는 나를 옥상에서 끌고 내려왔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힘없이 쳐진 나를 둘러업고 내려왔다. 절대 죽으면 안 된다고 경고를 덧붙였다. 내가 죽지 못하도록 계속 지켜볼 거라고 했다. 남은 생애 동안 고통을 매일 느껴야만 한다고, 나에게 죽음도 아깝다고 핏대를 세워 말했다. 학원 앞에서 권 비서님 차까지 어떻게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권 비서님은 여기저기 터지고 부은 내 얼굴을 보고 급히 가까운 병원으로 가서 상처를 정리해 줬다. 나의 악마 같은 모습을 다 알면서도 모두 한통속이 되어서 나의 기억을 지웠다. 게다가 나로 인해 지옥을 살아가고 있었을 피해자들을 찾아가서 기억을 사들였다. 헐값에 그들의 기억을 훔쳐 역겨운 나의 기억에 심은 것이다. 내가 내 기억을 열지 못하도록 당산나무에 묶어 놓았다.


"권 비서님도 제가 했던 악마 같은 짓거리 다 알고 있었죠? 엄마가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 다 알고 있었죠? 아빠도 그렇고."

"VR에 다시 접속했던 거예요?"

"내가 이런 인간인지 모르고 살 뻔했어요."

"다 정민 군을 위해서 한 일이었어요."

"근데 대체 왜 나를 피해자로 만들어놨던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왜 피해자들의 기억을 다 사들인 거예요?"

“이럴까 봐서요. 자신의 모습을 못 견딜까 봐.”


모두 다 한통속이 되어 나를 속여왔다. 분하고 창피하고 억울했다. 나는 뒷자리에 쓰러져 소리 내어 울었다.


“악마 같은 새끼, 차라리 죽지 그랬어. 개새끼. 엄마가 살고 내가 죽었어야 했다고!”


권 비서님은 내가 발악하고 울도록 그대로 기다려주었다. 울고 있는 사이 조용히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빠가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창고에 놓고 나온 VR 장치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보더니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슬리퍼를 신은 발로 이미 박살이 난 VR기기들을 다시 발로 밟았다.


“내가 이런 짓거리하지 말라고 했지. 대체 나 몰래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이미 차에서 한바탕 감정을 쏟아 낸 뒤라서 차분해져 있었다. 아빠는 내 얼굴의 상처는 묻지도 않았다. 나의 상처보다 자신의 말을 거역했다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아빠가 무슨 권리로 걔네들 기억을 훔쳐요.”

“기억을 훔쳐? 내가 그 기억을 구하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데 그걸 다 날려 버리다니.”

“처음부터 내 기억이 아니었잖아요. 가짜였잖아요. 언젠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고요.”

“진실이 드러나서 이 모양이야? 문제를 해결해야지 진실을 찾다가 엄마처럼 저렇게 되려고 그랬니?”

“그만! 제발 그만해요”


아빠한테 대드는 나를 향해 아빠는 손으로 나를 내리치려고 했지만 그제야 내 얼굴의 상처들을 본 모양이었다. 아빠는 손을 내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힘없이 내 방으로 와서 침대에 누웠다.

이전 17화 4장. 봉인된 기억(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