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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밀도 Apr 11. 2021

03. 10년만의 재회

노인 재정/노인 범수

재정/범수


재정은 악몽을 꾸어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재정의 상사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소리를 쳤고 재정을 회사에서 쫓아냈다. 재정은 화장실에 숨어 울고 있었다. 한참을 울고 거울을 보니 20대였던 얼굴이 백발의 노인의 얼굴로 변하고 일그러졌다. 그리고 복통으로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붉은 핏방울이 화장실의 하얀 타일로 뚝뚝 떨어져서 타일의 틈새를 타고 퍼져나갔다. 무의식적으로 아직은 내 자궁이 살아 있다며 안심했다. 하지만 극심한 복통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어 베개가 흥건히 젖을 만큼 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폐경 이후로 늘 흑백의 꿈에서 생리혈만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상실감인지 두려움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재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6시, 재정은 어젯밤 일찍 잠들어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돋보기안경을 찾아서 든다. 딸 지민의 메시지였다. ‘엄마, 젊어질 준비 되어 있지? 내가 한이 등원하고 9시까지 픽업 갈게.’ 재정은 주방으로 가서 물을 마시고 거울을 본다. ‘어떤 느낌일까? 다시 젊음을 되찾는다는 것은?’ 기대도 되었지만 두려움도 컸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재정의 마음 한편에서 커지고 있었다.     


국립 의료센터 앞에 도착하니 젊은 사람 무리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피켓에는 ‘젊은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일할 기회를 젊은이에게 양보하라!’는 메시지들이 쓰여 있다. 20세기의 번영을 누린 세대가 다시금 기술로 젊은이들의 일자리와 돈을 뺏어 간다며 목청을 높였다. 대한민국의 취업난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구인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 나라의 경제는 유지되기 힘든 상황이다. 필요한 노동력에는 인력이 모이지 않고, 소수의 직업과 일자리에만 사람들이 몰린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정적인 기업을 원하고 경제적 안정을 꿈꾼다. 당장 적은 돈을 바로 벌기보다는 시간을 투자하고 공부해서 전문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하고 싶어 했다. 오랜 세월 공부에 시간과 자본을 투자했던 만큼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지민의 손을 잡고 입구를 향하는데 달걀 하나가 재정의 신발 바로 앞에서 깨졌다.     


"툭"     


"아휴, 요즘 것들은 노인한테 어쩜 저러지?"     


"지민아, 그냥 조용히 가자. 이럴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응.. 엄마 똥 밟았다 치자."     


재정은 분노에 찬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 눈에는 젊은이의 밥그릇을 빼앗고 젊음을 되찾으려 하는 욕심 많은 노인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재정은 다음 세대를 바른길로 안내하기 위해 젊음을 헌납했다고 믿었다. 자신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민도, 한이도 대한민국에 일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달걀 폭탄 하나가 망설이던 마음에 확신을 불어넣었다. 재정은 일자리를 잃었던 순간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했다. 한 달을 혼자 끙끙 앓고 망설이다 꺼낸 말에 일사천리로 다른 사람이 재정의 자리를 대체했다. 대체 불가능한 카피라이터라고 믿었는데 회사는 재정을 붙잡지 않았다. 상사는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정을 전담해주는 아내가 있는 남자 과장을 더 반가워했다.      


지민이 재정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재정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민도 사회적 이름을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재정은 딸 지민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어깨를 조금 펴고 걷는다. ‘나도 다시 능력을 펼칠 기회는 얻어봐야 공평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안내를 따라가니, 먼저 도착한 시니어 몇 명이 긴장 가득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건강하고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골병이 많이 들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들을 바라 보았다. 모두 젊음을 되찾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을까?     


지민이 안내 책자들 재정에게 건넸다. 국가지원사업인 만큼 증가 노인이 되면 반드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 ‘증강 주사’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을 젊은 시절보다 인지능력이 배로 증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근력이나 시력 등의 특정 신체 능력이 증강되기도 한다. 각자가 가진 신체 호르몬 지도에 따라서 결과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증강 주사’는 상당히 획기적이었지만 임상실험을 하면서 많은 부작용과 마주해야 했다. 임상 실험 1차의 한 참가자의 경우, 증강 주사가 양성 종양을 악성으로 변하게 했고, 종양의 성장을 촉진했다. 그래서 결국 프로젝트에 참여하자마자 시한부 인생을 선고를 받았다. 그는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 승소했는지는 모르겠다. 그 어떤 뉴스에서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동안 암암리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괴소문으로 여겨졌다. 이런 잡음에도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국가 존립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부작용의 상당 부분이 안정화되면서 대대적이고 공개적으로 지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소득이 다시 생긴 노인에 대한 연금 지급을 미룰 수 있어서 국민연금 적자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뇨, 제가 어제 분명히 수정해서 보내드렸어요. 아시잖아요. 저 그런 실수 안 하는 거.. 제가 공용 폴더에 혹시나 해서 올려놨으니 그걸로 보내주시면 돼요. 비밀번호는 QW12고요."     


재정과 지민은 채혈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민이는 연차 중에도 연신 메신저와 전화를 하느라 바빴다. 지민이는 그렇게 살아가려고 태어난 아이였다. 재정이 지민이를 낳고 그만두기까지 스스로 일상을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 많았다. 독립적인 아이로 자라야 생활이 유지되었으니 지금의 이 모습은 재정이 원하던 것이고 재정이 만든 것이었다. 가장 화려한 실적을 만들고 화려하게 승진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재정에게 어퍼컷을 날렸던 지민.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었다고, 잘 살아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런 재정의 자만심을 세상이 비웃는듯했다. 재정은 조금도 방심하지 말라는 신의 경고라고 여겼다.     


"혹시 범수 씨..?”     


"누구시죠……아.. 재정 씨군요. 안녕하세요? 얼굴이 그대로 시네요. 10년 만에 뵙는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었네요."     


"그러네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 많이 힘드셨을 텐데…"     


"뭐, 그간 반성하며 살았죠."    

 

"혹시 기준이는 아직인가요?"    

 

"네, 뭐 이런 아빠 보고 싶겠습니까?"     


범수는 멋쩍게 웃었다.     


10년 전 미정의 장례식에는 범수 지인들로 넘치고 있었다. 범수는 연신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그때 장례식장 입구에서 큰 소리가 났다.     


"씨발! 이까짓 것들이 뭔데!"     


분노에 차 욕하는 소리와 물건들이 깨지는 소리에 조문객들의 대화가 멈췄다. 범수는 같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조문객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밖으로 나갔다. 기준이었다. 기준은 범수의 지인들로부터 온 조화들을 발로 차고 손으로 내리치고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범수가 기준을 뒤에서 안아 제압했다.     


"이거 안 놔! 엄마는 이딴 거 안 바래. 다 꺼지라고 하라고! 엄마는 그날 아빠가 전화 한 통화만 받았으면 살 수 있었어!!!!"     


"기준아!"     


"씨발!!!!!!"     


기준은 짐승처럼 포효했다. 삼일장을 치르는 내내 엄마 미정의 옆을 지켰지만, 밤이 되어 조문객이 몰려오면 기준은 난리를 쳤다. 미정의 유골을 납골당으로 옮기고 기준은 엄마가 남겨준 통장을 가지고 곧바로 범수와 연락을 끊었다. 범수는 그의 정보력으로 기준을 찾아냈고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만 봐야 했다. 기준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카페를 차렸고, 아빠를 닮은 수완 덕인지 이제는 인터넷에 이름만 검색해도 나오는 유명한 카페의 사장으로 자리 잡았다. 야속하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기준도 이제는 범수를 용서할 때가 됐으련만 부자는 아직도 그렇게 떨어져 지냈다.     


미정은 살아 있을 때 능력 있는 남편을 두어 좋겠다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하지만 미정은 늘 외로워했다. 능력이 있는 남편 범수는 돈을 벌어다 주는 대신 회사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밤낮, 주말 없이 일했고, 범수의 야망이 그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 미정에게 뒤늦게 종양이 발견되었지만, 범수는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에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범수는 속으로 ‘조금만 아주 조금만 기다리면 돼’라고 되뇌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 미정이 쓰러지던 날, 이상을 감지한 미정이 급히 범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중요한 미팅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화려하게 진행 중이었던 범수는 전화를 거절했다. 미팅이 끝나고도 쌓여 있는 일을 처리 하느라 다시 전화를 걸지 못하고 늦은 밤 집으로 퇴근했다. 범수는 현관 문 앞에서 기준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그때서야 다시 전화를 하지 못했던 일이 생각났다. 뒤늦게 토익 시험을 앞두고 스터디 카페에 갔다 돌아온 기준이 한발 먼저 미정을 발견하고 울부짖고 있었다. 미정은 식탁 바로 옆에서 쓰러져 있었고, 창백한 오른 손 옆에는 범수에게 전화를 걸던 휴대폰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렇게 다시는 미정을 볼 수 없었다. 아들 이야기가 민망했던지 범수는 화제를 돌렸다.     


"재정 씨도 다시 일 해보시려고요? 예전에 아주 유능한 카피라이터라고 들었는데…… 집사람이 재정 씨가 일을 그만두는 게 안타깝다고 하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습니다."     


“네, 저도 다시 저를 찾아볼까 해서요. 아무 일 없겠지요?"     


"그럼요. 몇 년 전이야 부작용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주 안정화되었다고 해요. 임상도 여러 차례 했고요.”   

  

이때 간호사가 범수의 이름을 불렀다.     


"한범수 씨! 채혈할게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참, 이거 예전 명함이긴 한데 혹시 급한 일 있으면 연락하세요. 그럼 이만 갑니다."    

 

범수는 젊은 시절 너무 많은 열정을 회사에 쏟은 것인지 한껏 팽창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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