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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밀도 Apr 11. 2021

04. 25년 전 직장으로의 복귀

노인 재정/ 노인 현애

재정/현애         


"자, 여기는 박재정 프로! 예전에 ‘지켜야 할 것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카피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야. 회사가 너무 달라져서 낯설 테니 많이들 도와주세요."     


"안녕하세요? 박재정 프로입니다. 신입사원이라 생각하고 편히 대해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박수로 재정을 맞아 주었다. 재정은 오랜만에 베이지색 스리피스 정장을 입고 5cm 굽의 뾰족구두를 신었다. 굽 있는 구두를 신었을 뿐인데 어깨가 저절로 펴지고 자신감이 붙었다. 재정은 자리에 앉아 PC를 켰다. 자신의 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아직은 다시 돌아온 재정의 능력이 증명되지 않았기에 라디오 카피를 보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이수정 대리는 나이가 한참 많은 재정에게 조심스럽게 일을 부탁하더니 이내 적응하고 재정을 잘 활용하여 업무를 해나갔다. 재정도 정부에서 진행해주는 증강 노인 사전교육에서 ‘조직 생활과 태도’를 이수했기 때문에 동료들을 대할 때 ‘어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말투와 태도에 신경 쓰고 있었다.     


취업하기 전 정부에서는 증강 노인들을 대상으로 2주간 교육을 지원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IT 교육부터 태도 교육까지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다. 시력, 청력, 인지 능력이 30대 수준으로 회복이 되고 특히 인지 능력은 30대의 수준보다 월등히 좋아지는 경우가 흔했다. 인지 과학자들의 가설에 따르면 젊은이들보다 누적된 경험과 데이터양이 많아서 인지 증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외모의 경우 체세포 노화는 복원이 어렵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지만, 관절이나 근력, 시력 등의 신체 능력이 40~50대 수준으로 개선이 되었다. 재정 또한 무릎의 통증이 사라져 구두를 신을 수 있게 되었다.      


교육에서 동갑내기 현애를 만났다. 현애는 항상 붉은 립스틱을 잊지 않고 발랐고 통통한 몸에 비해 살이 붙지 않는 매끈한 다리를 자랑스러워하며 미니스커트나 스키니진을 입고 왔다. 가식이 없고 솔직한 현애와의 대화는 유쾌했다.     


"자기! 졸혼한 것 너무 잘했다. 남자랑 살면 여자만 손해야. 내가 손해 보는 거 딱 질색이거든. 그래서 결혼을 안 했잖아."     


"그래, 다시 돌아간다면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현애 씨 보니까 너무 자유로워 보여. 눈치 볼 딸도 없고!"    

 

"자기! 눈치는 왜 봐! 이제 당당하게 일해서 어깨 펴고 다녀. 예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포기했잖아. 더 이상의 희생은 하지 마. 오케이? 혹시 오늘 치맥 모임 하기로 했는데 조인할래?"     


"아냐, 나는 집에 가야지. 어제 배운 것 좀 복습해보게. 그리고 증강 주사를 맞았는데 당분간은 술은 안 마시는 게 낫지 않겠어? 선생님들이 권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어이구, 자기야. 그냥 하는 말이야. 그걸 곧이곧대로 믿다니 좀 더 커야겠다. 다시 젊음을 되찾았는데 후회 없이 즐겨야지. 혹시 생각 바뀌면 연락해."     


현애는 쉬는 시간이면 여기저기 강의장을 돌아다니면서 증강 노인 친구들과 친분을 다졌다. 현애는 증강노인 1호들 중에 다시 돌아온 젊음을 가장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교 생활을 하느라 밤늦도록 놀면서도 수업은 곧잘 따라왔다. 현애는 쉬는 시간이 되면 젊었을 때 패션 MD로 일했다며 파리와 뉴욕의 패션 위크에 대해, 마치 어제 다녀온 사람처럼 자세히 이야기를 해줬다. 파리와 뉴욕은 자신의 운명 도시라며 다시 패션 MD로 취직해서 명성을 날리겠다고 했다. 교육이 끝나고 모두 취업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한동안 서로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재정이 아침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현애에게 문자가 왔다.     


[문자]

‘하이, 자기 어디?’     


‘회사야. 이제 오전 업무 하려고.’     


‘아…… 자기도 취업했구나! 축하해!’    

 

‘고마워, 좋은 소식 있어?’     


‘아직……아니 최종 면접에 갔더니 내 취향이 자기네들이 타깃 하는 고객층하고 맞지를 않는다나! 내가 갈 데가 거기밖에 없는 줄 알아! 나 안 뽑으면 자기들 손해지. 흥’     


‘그래, 현애 씨 정도면 더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지!’     


그때 이 대리가 재정을 불렀다. 급히 문자를 주고받던 핸드폰을 내려두고 수정에게로 향했다.     


"재정 프로님! 혹시 라디오 광고 송 수정됐을까요?"     


"네, 대리님. 제가 뒷부분을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지 적어봤는데 어떤지 봐주세요. 너무 유치하면 기존 안대로 가셔도 됩니다."     


수정은 큰 기대 없이 카피를 읽어 내려갔다. 신선한 카피였다. 수정이 읽는 동안 재정은 심장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써본 카피에 어떤 반응이 나올지 잔뜩 긴장했다. 많은 영역에서 젊음의 신호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거의 25년 동안 쉬었으니 예전처럼 제 몫을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프로님, 솔직히 요즘 많이 쓰는 카피 스타일은 아닌데 뭔가 신선한 것 같네요. 두 가지 안으로 정리해서 팀장님 결재 올려 볼게요! 빨리 대응해줘서 감사해요."     


좋은 피드백을 받자 긴장이 풀렸다. 탕비실로 가서 마음 편히 커피믹스 한잔을 타서 마시고 기분 좋게 자리로 돌아왔다. 재정은 조금씩 사무실 분위기가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증강 노인들은 정규직 임금의 70%를 받는다. 기업에서는 60%의 임금을 지불하고 나머지 10%는 국가에서 지원한다. 인건비의 60%만 지불해도 숙련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으니 기업은 증강 노인들의 취업을 환영했다. 실제로 취업한 증강 노인들의 업무 능력에 만족도가 높다는 소문이 나면서 헤드 헌터에게도 증강 노인 구인•구직은 새로운 블루오션이 되고 있었다.     


재정도 예전 직장에서 아직 몸을 담고 있는 선배 K의 추천으로 재입사를 할 수 있었다. 증강 노인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육아로 오래전에 그만둔 경단녀나 은퇴한 직원들에게 우선으로 연락이 가고 있다. 증강 노인의 일부는 일부러 중소기업을 찾아가기도 했다. 많은 증강 노인 동기들이 실전에서 자신의 기량이 유효할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증강노인 동기들에게 하나둘 직업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단톡방은 젊은이들의 채팅창 못지 않게 활기를 띠었다. 뇌로 입력되는 정보의 처리 속도가 빨라지니 증강 노인들은 신이 나서 시중에 나온 새로운 앱이나 서비스들을 시도해보고 경험했다.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젊음의 기운으로 그들의 삶에 활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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