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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하고 싶은 순간들

너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어

by 고밀도

*2017년의 일기장을 각색해보았습니다


나는 오늘 처절하게 무너졌다. 모든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에게 요구하고 나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너를 보면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너는 한숨 소리의 깊이나 의미를 모른 채 그 소리를 장난스레 따라 한다. 그 모습에 나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아빠가 함께하는 주말 아침인데도 너는 모든 일을 엄마가 해달라며 떼를 쓴다. 주중에 쌓여온 피로들이 풀릴 새도 없이 또 다른 피로감이 몰려온다. 전 날 급하게 먹은 저녁이 잘 못 된 것인지 화장실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더랬다. 그래서 더욱 기진맥진한 상황. "엄마 화장실 좀 다녀올게."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지 말라고 너는 화장실 앞까지 따라왔다. 배설의 순간마저 나에게 철썩 달라붙어서는 안아달라고 하니, 나의 인내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발, 똥이라도 편히 싸자!!!!!

갑작스러운 나의 분노에 너는 놀란 눈치다. 울먹이면서 아빠에게로 달려간다. 마음이 무겁지만 잠시 혼자가 된 것에 한숨을 돌린다. 어째서 타일로 둘러싸인 공간에 쪼그려 앉은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순간인 거지? 어쩌다가 나의 인생은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목까지 울컥하는 감정을 삼킨다.


최근 우리는 본격 맞벌이 부부생활을 시작했다. 돈이나 커리어보다 아이가 소중하다는 생각에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육아휴직을 알뜰살뜰 썼다. 다행히 2년을 버텼지만 직장 내에서 육아휴직을 처음 쓴 신랑은 본인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팀에 배정되었고, 심지어 후배가 팀장으로 있는 팀에 팀원으로 옮겨졌다. 장거리 출퇴근과 부당한 처우에 그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나 또한 등원과 하원을 오롯이 혼자 담당하게 되면서 거짓말 보태지 않고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부터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지만 그저 견딜 뿐이다.


갑자기 환경이 변해서일까? 너는 우리 둘이 회사를 동시에 나간 그 시점부터 떼가 늘었고, 열이 났다. 미열이 난 너를 해열제를 먹이고 등원시키는 나의 마음은 너무도 무거웠다. (다행히 전염질병이 아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더욱 안아주고 달래 주었다. 그러기를 3주, 나의 체력과 인내심은 바닥에 떨어졌다.




뒤를 제대로 닦을 겨를도 없이 안방으로 뛰쳐나갔다.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넘어졌나 보다. 소파에서 휴대폰을 잡고 있는 남편과 멀찌감치에서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화를 조절할 수 없었다. 아니, 똥 싸는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집중해서 봐주면 안 되는 거야? 우리는 그렇게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 언성을 높였다.


이건 배틀이었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누가 더 힘든지 따져보자는 배틀.


나 : 나도 지금 몸에 열이 나는데 그건 아니?

그 : 그럼 당신은 내가 손 베인 건 알아? 그런데 설거지를 해달라고 그래?

나 : 나는 아프다고 느낄 겨를도 없었어.

그 : 누구는 안 그런 줄 알아? 당신이 만원 지하철 매일 2시간씩 타봤어?

나 : 그럼 그만두던가!!!


말인지 방귀인지 우리는 쉴 새 없이 헛소리를 뱉어냈다. 문장으로 포장한 우리의 지치고 지친 감정들이었다. 떼를 쓰던 너는 우리 모습에 놀랐는지 나에게만 폭 안겨 있었다. 그는 안방 문을 감정을 실어서 닫고 들어갔다. 나는 그가 듣기를 바라면서 온 힘을 다해 눈물을 쏟아냈다. 너는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너를 달래줄 때 쓰던 나의 문장들을 내뱉는다.


너 : 엄마 어디 아파? 왜 울어? 물 마셔. 울지 마 엄마. 안아줄게.


그런 너를 보니 심장이 쪼여왔다.


우리가 대체 너에게 무슨 꼴을 보여준 거니?

성숙치 못하게 네 앞에서 감정들을 쏟아내는 엄마 아빠라니. 그게 더 미안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너의 기억 속에 그 순간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었다. 이 순간들을 리셋해버릴 수는 없을까. 너의 두 눈에 담은, 귀로 들은 우리의 모습을 깨끗이 지우고 새로 기억되고 싶었다. 무결점 엄마 아빠로. 너에게 행복만 선사해주는.


하지만, 리셋된다고 해서 나는 끝까지 100% 좋은 엄마일 수 있을까? 아마도 난 또 부끄러운 모습을 또 보여줄지도 모르겠지. 아니 보여줄 게 될 것이 확실해. 이런 엄마의 모습에 네가 실망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며 너의 점심 준비를 한다.


점심 준비를 하려니, 도통 기운이 나지 않아 배달음식을 찾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피자야? 햄버거야? 묻는다. 그가 아무렇지 않게 피자!라고 답하며 우리는 또 거실에 모인다. 그렇게 우리는 웃는다. 그렇게 다시 리셋 아닌 리셋이 된 우리의 주말.


뼈 빠지는 인생도 남이 보면 그저 풍경인 것을...


*"뼈 빠지는 수고를 감당하는 나의 삶도 남이 보면 풍경이다." 손철주의 `인생이 그림 같다` 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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