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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

역치를 넘어서는 일

by 고밀도

나의 필명에도 드러나듯이 나는 일상을 촘촘히 살아가는 것을 즐긴다. 가끔은 천천히 여유 있게 살아보자 다짐을 하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 어느새 내 일상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나 책을 읽다가 문장 속에서도 쉽게 감화되어 미래를 준비하고 싶어 지는 성격도 한몫한다.


특히, 작년 말부터는 부러 바쁘게 일을 벌였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일상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엄마가 떠올랐고 슬픔의 크기가 조금씩 커져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씩 추가한 일들이 누적이 되면서 나의 일상에는 점점 빈틈이 없었지고 있었다. 늘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나에게 누군가 질문 하나를 던졌다.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벌이는 것 아니야?


질문에 최근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또 벌이고 있는 것인가? 내 분수나 깜냥을 모르고 나는 너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내 인생에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순간들을 복기해 보았다.


가장 처음 기억은 중학교 1학년의 첫 학기. 이사를 가면서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중학교에 배치되었다. 단 한 명도 아는 친구가 없었다. 그런데 반장 선거 날, 이유도 없이 친구들이 내 주변에 몰려들어 반장으로 찍어주겠다고 했다. 당시 내 시력이 꽤 나빠서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아마도 공붓벌레처럼 보였나 보다. 그전까지 인생에서 반장이란 것을 해본 일이 없었다. 수줍음이 많아서 사람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인중만 보는 나에게 반장이라니. 하지만 분위기에 압도되어 거부할 수 없었다. 반장이 되고 며칠을 도망치고 싶어서 잠들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뒷자리에 앉은 무서운 친구들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감당하지? 하지만 결국 나는 감당했고 성장했다. 나머지 학창 시절을 내내 반장 타이틀을 즐기며 보냈다.


두 번째 위기는 취업준비를 할 때였다. 당시 아빠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마침 무리해서 새 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였고 대출 이자에 허덕이던 엄마는 나에게 눈높이를 낮추고 빨리 취업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때마침 엄마의 소망대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외국계 회사에서 러브 콜이 왔다. 이태리 유명한 커피를 한국에 론칭하는 일을 해보자는 거였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글로벌을 무대로 스케일을 더 키워서 일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제안을 거절했다. 이렇게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괜찮겠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뒷감당을 할 수 있겠냐고 다시 그 일자리를 잡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두려웠지만 감당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6개월 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감당할 수 있는 일들만 한다면 큰 성장을 이룰 수 없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을 때 한 계단을 성큼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솔직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성장하려고 껍질을 깨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다시 내가 받았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벌이는 것 아니야?”


그렇다. 나는 지금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곧 감당하게 될 것이다. 당분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을 즐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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