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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글을 쓴다는 것

글로 모인 사이

by 고밀도

책이 나왔다. 그것도 내 이름이 박힌 책이다. 물론 멋지게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고 서점에 화려하게 깔리는 그런 출간은 아니지만, 감개무량한 나의 첫 책이다. 온라인으로는 얼마든지 글을 발행하고 공유할 수 있지만 종이책의 감성은 아직 대체 불가능하다. 책을 3권을 먼저 받고서 내가 느낀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021년 상반기에 주요한 이벤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글로 모인 사이’의 여정일 것이다. 4월 첫째 주 Zoom으로 스테르담님과 마야님 그리고 10명의 작가님을 만났다.








회사에서는 피크 시즌을 향해가고 있는 시기였다. 올해 유난히 임원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성과에 따라 과제가 휘청거리는 일이 많아서 일에 대한 슬럼프가 왔다. 슬럼프가 왔는데도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 나를 많이 지치게 했기에 퇴근한 이후의 시간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지 말고 하자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스테르담님의 ‘글로 모인 사이’ 모집 글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고 계심에도 글을 꾸준히 쓰고 계셨고 심지어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하신 이력을 보고 인생의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선배에게 배우는 자세로 스테르담님의 글들을 읽고 있었다. 그렇게 무척이나 바빴던 4월에 ‘글로 모인 사이’ 첫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모인 10명의 작가님들과 줌으로 인사를 하고 6주간 글을 함께 썼다.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어 각자의 자리에서 글을 썼지만 함께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든든했다. 몇 번은 마감을 지키지 못할 위험도 마주했다. 그렇지만 함께 격려하며 모두 무사히 마침표를 찍었다.


어찌 보면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서는 생각을 전환하는 기회가 많지 않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주고 받는 농담은 가벼울 때가 많고, 아이에게는 눈 높이를 맞춰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 입장이기에 진지하게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 갈급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10명의 작가님들은 글쓰기에 진심이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나 말고 더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매우 신이 났다. 그래서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2번의 zoom 모임을 했는데, 그 2번의 모임이 참으로 많은 잔상을 남긴다.


6주간 같은 주제로 8개의 글을 썼다. 같은 주제로 10명의 시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매력이었다. 나의 일상은 자칫 편협한 시선을 지닐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10명의 작가님들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이 나를 깨우치는 일이기도 했다. 저마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 삶에 대한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들, 이런 시선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쓴다는 것, ‘글로 모인 사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었다.




이제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글을 쓴다. 나의 글쓰기도 이제 시작이다. 좋은 글이나 멋진 글을 쓰는 사람보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삶과 나의 시선을 백지 위에 꺼내어 놓는 즐거움을 놓지 않고 열심히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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