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지 않으면 아파서 그래”

애증의 일

by 고밀도
일을 하지 않으면 아파서 그래

난소암 말기 환자였던 엄마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매일 출근을 했다. 출근했다는 걸 알게 되면 나는 엄마에게 불같이 화를 냈는데, 그때 마다 엄마는 ‘살기 위해 일을 한다’고 했다. 다정했던 엄마는 항암치료로 입원을 할 때면 같은 처지에 놓인 암 환우의 고충을 들어주었고, 그들의 보험 Q&A센터를 자처했다. 엄마는 자신의 일이 좋다고 했다. 특히 보험 설계사의 자유로움이 좋다고. 그래서 너희들이 어릴 때 준비물을 놓고 가서 엄마를 찾을 때 언제든 가져다 줄 수 있었고. 항암치료로 입맛이 없을 때 같이 밥을 먹어줄 동료들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세상을 떠나기 6개월전까지 엄마는 그렇게 보험설계사로 일했다.


나는 정반대로 일이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13년 차 직장인에 접어든 나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나에게 요구되는 일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성과를 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압박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마치 ‘나무에 오르려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고통의 임계치가 아슬아슬할 때면 마음 깊은 곳에 늘 담고 다니는 ‘퇴사 카드’를 들이밀고 싶었지만, 직장인 담보로 받은 대출이 나의 의지를 잠재웠다. 그러니 일을 살기 위해 한다는 엄마의 말을 내가 이해할 리 없었다.


작년 11월,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암 환자의 운명은 섣불리 예측하는 게 아니었다. 담당 교수님도 아직은 치료를 해볼 여지가 있다고 했고 1~2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예측했었기에 나의 충격은 상당히 컸다. 엄마의 부재를 잊기 위해 나는 많은 일을 벌였다.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엄마가 없다는 고통이 나를 찾아왔기에 일에 몰두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일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생각할 틈을 원천 봉쇄했다. 회사 일 외에도 SNS에 글을 쓰는 ‘나의 일’도 일상에 채워 넣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일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고통을 잊기 위해 일을 붙잡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 엄마가 그토록 일을 붙잡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홀로 견뎌야 하는 고통의 순간들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일이 필요했다. 진심으로 ‘살기 위해’ 일을 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지금 내게 일이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그때의 엄마처럼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똑같이 대답을 해줄 것이다. 비로소 온전히 엄마의 말을 이해 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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