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18번, '개똥벌레'
이제 내가 부르는 노래
엄마는 상당한 음치였다. 박자는 꼭 반 박자씩 늦고 음 또한 불안정해서 고음 부분에서는 엄마가 울먹이고 있나 싶어서 얼굴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엄마에게 노래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하지만, 90년대의 가족모임은 노래방이 마지막 필수 코스이자 화룡정점이었다. 흥이 많았던 양가 친척 모임을 할 때면 한 명도 빠짐없이 노래방의 가운데로 나가 한번식은 노래를 열창 해야 했다. 엄마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곤혹스러워했던 엄마는 작전을 바꾸었다. 노래방을 가면 차라리 먼저 노래를 해버리고 말자 싶어 방을 배정받자마자 기계 앞으로 가서 늘 같은 번호를 눌러 노래를 시작했다. 항상 울리는 멜로디는 같았다. “개똥벌레”
“아무리 우겨봐도,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경쾌한 멜로디처럼 보이지만 가사를 듣고 있으면 개똥벌레의 외로움에 다같이 숙연해졌다. 한껏 달아올랐던 가족 모임은 조금 가라 앉는다. 엄마는 이때 확실히 물을 끼얹고자 중간에 간주도 뛰어넘지 않고 끝까지 완곡을 했다. 그러고 나면 후련하게 한 쪽 구석에서 편안히 관객모드로 가족들의 노래를 듣는 엄마였다. 개똥벌레를 부르는 엄마의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는 가족들은 엄마에게 노래를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개똥벌레’는 가수 신형원님의 노래가 아니었다. 개똥벌레는 엄마의 노래로 통했다. 어린 시절에는 가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엄마를 놀리기 위해 흉내를 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엄마와 뒹굴거릴 수 있는 일요일 오후가 되면 동생과 나는 엄마에게 개똥벌레를 불러 달라고 했다. 엄마는 이것들이 엄마를 놀린다며 거부했지만 사실 나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 꾸밈없는 밋밋한 음과 엄마의 숨결이 느껴지는 가녀리게 떨리는 목소리가 좋았다. 평소에는 일을 하느라 너무 바쁜 엄마인데 개똥벌레를 노래할 때면 엄마의 템포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하이라이트는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를 말아라.” 이 부분이었다. 항상 일로 바쁜 엄마를 찾을 때면 엄마가 손에 닿지 않고 멀리 있었는데 엄마가 우리를 꼭 붙잡아 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부분을 계속 불러달라고 졸랐지만 엄마의 노래는 한 번이 최대치였다.
이제 내가 이 노래를 혼자서 흥얼거린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핫하다는 'BUTTER'보다 이 개똥벌레의 노래가 더 내 입에는 붙는다. 막히는 퇴근 길에는 개똥벌레 노래가 절로 나온다. 노래방에서는 단 한번도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는데 웬일인지 가사가 모두 기억에 남아 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노라면, 화려한 조명이 엄마를 감싸고 있는 노래방에서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붙잡고 숙제를 하듯 노래를 했던 엄마의 모습이 내 눈 앞에 떠 오른다. 암 투병 환자의 마지막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야위고 핏기가 없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 깊이 박혀 엄마를 그리면 마지막의 고통에 신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생각을 실컷 하고 싶지만 이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엄청난 크기의 슬픔이 나를 압도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개똥벌레를 흥얼거리면 생기 있었던 엄마의 모습이 내 눈에 그려진다. 그러면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충분히 그리워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음치일지라도 꾸역꾸역 노래를 완주해준 그 당시의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노래방에서 가장 먼저 개똥벌레를 완창해주었기에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 저편에 담아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기 있던 엄마를 기억하게 해주는 개똥벌레는 이제 나의 노래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