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할머니가 부러워

그리움

by 고밀도

그날은 아무 날도 아니었다. 마트에서 가벼운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고, 초록 불이 되기를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세 분의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걸어오고 있었다. 같은 가발을 쓴 듯 모두 흰 백발의 머리는 강하게 곱슬곱슬 말려 있었고, 두 무릎은 싸는지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벌어져 있었다. 세 분 모두 뒷짐을 지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지만 좀처럼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은 굽은 허리고 걷기가 쉽지 않아 두 분이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뒤늦게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횡단보도 앞에 도착한 할머니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초록 불로 바뀌어 세 분이 다시 힘을 내어 반대편을 향해 걸었고, 그렇게 나는 세 분의 할머니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부럽다…’


우리 엄마도 꼬부랑 할머니가 된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엄마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기 전에 내 곁을 떠났다. 다행이라면, 가장 큰 손주가 8살이었고, 그 뒤로 한 살 터울로 3명의 손주를 보았으니 할머니라는 소리는 8년 정도 들을 수 있었다. 내 옆을 지나친 등이 굽은 할머니들을 보면서, 나는 그 할머니들의 자녀 나이를 가늠해보았다. 아마도 우리 엄마 나이겠거니 생각이 들어 마흔도 되기 전에 엄마를 잃은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집으로 오는 나머지의 길을 눈물과 함께 걸었다.


회사에서 자료 조사를 하다 보면, 사람의 평균 수명은 이미 80대로 진입했다는 자료가 넘쳐나는데 왜 나의 엄마는 20년이나 먼저 간 것인지, 화가 날 때가 있다.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윤여정 선생님을 볼 때도 대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어떻게 병도 없이 건강하게 70대까지 간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회사 게시판에 올라오는 부고를 보면 고인의 나이를 확인하게 되었다. 80세를 넘어 90세를 장수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그 가족의 슬픔을 가늠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몇십 년을 더 보낸 자녀들이 부러워지곤 한다. 그러다가, 아마 보낸 세월이 긴 만큼 떠나보내는 마음이 더 아플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마 길을 건너가던 꼬부랑 할머니들께서는 내가 이렇게나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실 것이다. 아직은 엄마가 너무 그리워 꼬부랑 할머니가, 그리고 꼬부랑 할머니를 바라볼 수 있는 가족들이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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