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은 쑥이 아니라오
구수한 된장국 사이로 봄을 상징하는 쑥 잎이 떠다닌다. 쑥잎은 탁한 된장국 사이를 유영하며 구수함을 즐기고 있는 듯 보인다. 쑥국은 봄날의 참기 힘든 것 중에 하나다. 나의 봄은 늘 쑥국과 함께 시작되었다. 가끔 엄마의 마음이 후해지는 날에는 간장, 참기름이 함께 어우러진 달래장이 쑥국 옆에 자리했다. 향긋한 쑥국이 입에 들어가면 환절기의 나른했던 몸은 활기를 되찾는다. 봄마다 엄마의 쑥국을 먹었다.
몇 년 전 첫 아이를 임신하고 심한 입덧이 찾아왔다. 냉장고 문만 열어도 구역질이 났고, 흰 쌀밥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때 유일하게 생각났던 음식은 엄마의 쑥국이었다. 입덧으로 계절을 느낄 새가 없었지만, 봄은 내 옆을 지나고 있었고 내 몸은 본능적으로 쑥국을 원하고 있었다. 좀처럼 엄마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쑥국을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내심 반가웠는지 밝은 목소리로 알았다고 했다. 나는 다시 침대로 미끄러져 들어가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저녁 시간을 앞두고 엄마는 익숙한 검은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평생 일과 살림을 병행했던 직장 맘이었던 엄마에게 육수는 사치였기에, 맹물에 된장만을 풀고 야들야들한 쑥 잎을 넣은 엄마표 쑥국이 금세 완성되었다. 그날 밤 쑥국의 힘으로 속이 가라앉아서인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입덧뿐 아니라, 봄철 환절기에 몸이 으슬으슬할 때면 늘 엄마의 쑥국이 함께했다. 쑥국은 지독한 감기도 잘 몰아내어 주었다.
엄마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쑥을 사는 일이 없었다. 쑥은 돈을 주고 먹는 음식이 아니라, 들판에서 직접 캐어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는 논 밭을 따라 쑥들이 햇빛을 한아름 받고 있다. 엄마는 검은 봉지와 과도를 들고 논두렁을 걸었다. 봄이 되면 과도와 검은 봉지 세트를 출근하는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곧잘 엄마를 따라 나섰는데, 내 눈에는 다 비슷해 보이는 잡초 속에서 엄마는 쑥을 발견하여 검은 봉지를 가득 채웠다. 그 옆에서 논두렁에 개구리 알 같은 것들을 구경하다가 기다리기 지루해지면 나는 엄마에게 볼멘 소리를 했다.
“엄마, 시장가서 편하게 쑥 사면 안돼? 쪼그려 앉아서 힘들잖아.”
“지천에 널린 게 쑥이고, 이거 안캐면 그냥 사라지는데 아깝잖아. 조금만 기다려.”
나는 사춘기를 넘어서는 엄마를 따라가지 않았고, 다만 봄마다 엄마의 쑥국을 당연하게 먹었다. 그러다 엄마는 50대 중반에 난소암이라는 병을 얻었다. 엄마가 암투병을 하면서 맞이한 7번의 봄마다 엄마는 쑥 캐기를 멈추지 않았다. 점점 생기를 잃어가면서도 봄이 되면 검은 봉지와 과도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엄마에게 하루는 화를 내고 말았다.
“왜 그리 무리를 하면서 쑥을 캐는거야? 그냥 편하게 좀 있으면 안돼?”
“재미있어서 그래. 이제 봄에 쑥을 캘 수 있는 날이 얼마 없을 지도 모르잖아.”
아무리 화를 내도 엄마는 꾸역꾸역 논밭으로 나갔다. 뼈만 앙상한 엄마는 능숙하게 쑥을 캐어 우리에게 쑥국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해주었던 쑥국은 왠일인지 꽤나 질겼다. 엄마는 항암치료하러 병원에 입원하는 일정 때문에 어린 쑥을 캐지 못한 탓이라고 아쉬워했다.
얼마전,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온 전염병의 여파로 활기를 잃고 봄이 문 앞까지 온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잔기침이 수시로 계속될 때마다 엄마의 쑥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호된 전염병의 후유증이라도 구수한 엄마의 쑥국이면 홀가분하게 날려 버릴 것 같았지만, 엄마의 쑥국을 맛볼 곳은 전혀 없었다.
엄마의 쑥국없이 봄을 맞이한지 햇수로 3년. 나는 엄마의 쑥국을 따라할 자신이 없었다.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이 무척이나 간단한 엄마표 쑥국인데도, 엄마의 쑥국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쑥을 캐기 위해 쪼그려 앉아 어린 쑥잎을 골라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엄마의 사랑과 시간이 그것이었다.
고민 끝에 온라인 마트에서 쑥을 검색해보았다. 1kg 12,000원 남짓. 아. 커피 2~3잔 정도의 값이면 1kg의 쑥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마음이 복잡했다. 선뜻 구매하기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12,000원이면 문 앞까지 손 쉽게 배달해주는 쑥은 내가 원하던 쑥이 아니었다. 왠지 그렇게 손 쉽게 얻는 쑥을 먹는다면, 쑥에 대한 엄마의 태도를 훼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나는 “쑥 캐는 방법”, “쑥 캐기 좋은 곳”을 검색하며 눈으로 익혔다. 따스한 햇살 속에 쑥을 캐던 엄마의 가녀린 등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들판에서 쑥을 만나기 전에 이미 엄마의 쑥국 향이 내 코를 자극해온다. 이제서야 엄마의 쑥국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만 같다.